허술한 계약이 분쟁을 부른다
허술한 계약이 분쟁을 부른다
  • 양재규 (eselltree92@hotmail.com)
  • 승인 2021.09.27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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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규의 피알Law] 기업이 미디어가 된 시대의 언론법(11)
광고모델 계약시 초상권 분쟁 빈번, 권리 판단 꼼꼼히 살펴야
복합적인 내용의 계약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모델계약시 초상권 분쟁은 빈번하다. 

[더피알=양재규] 온라인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회사 A는 2016년 6월, B와 피팅모델 계약을 체결했다. 촬영은 A사가 판매 중인 액세서리를 착용한 B의 상반신 모습을 대상으로 이듬해 6월 1일까지 근 1년간 총 아홉 번에 걸쳐 이뤄졌다. 사진촬영의 대가로 B가 A사로부터 받은 돈은 회당 45만원, 도합 405만원이었다. A사와의 사진 작업이 끝나갈 무렵, B는 한 연예매니지먼트 회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A사와 B 사이에 송사가 시작된 것은 2018년 11월, B가 온라인쇼핑몰에서의 사진 사용 금지를 통보하면서부터다. 물론, B의 요청에도 A사는 사진을 내리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문제된 사진의 저작권이 A사에 있다는 점이 한몫했다. 이에 B는 A사를 상대로 초상권 침해금지, 다시 말해 쇼핑몰에서의 사진 사용 중지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초상권 침해를 인정하고 B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 이르러 결론이 뒤집혔다. B가 A사에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동안에는 기간의 제한 없이 사진 사용을 허용했다’고 보아 A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결론이 다시 뒤집혔다(대법원 2021. 7. 21. 선고 2021다219116 판결).

대법원은 “사진에 포함된 상품을 판매하는 동안이면 기간의 제한 없이 피고(A사)에게 이 사건 사진의 사용권을 부여”했다고 보는 것은 “초상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보았다. 이에 “원고(B)가 이 사건 사진의 사용을 허용하였다고 볼 수 있는 합리적인 기간을 심리·판단”하라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상이 최근 ‘기한 없이 광고에 쓰인 배우 사진…대법 “초상권 침해”’ 제하의 기사 등으로 보도된 사안의 현재 진행상황이다. 광고모델 관련이기도 하고 초상권 문제여서 광고주들의 눈길을 끌 만한 사례다.

그런데 이 경우 통상적인 초상권 침해 문제와는 다르다. 흔히 초상권 침해는 불법행위의 결과로 발생하는데 여기서는 계약의 문제가 있다. 시선을 살짝 돌려 계약의 관점에서 이번 사안이 기업 PR이나 마케팅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상적인 기업 활동의 상당수가 ‘계약’으로 이루어진다. 계약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매매나 고용, 위임, 임대차, 소비대차 같은 전형적인 계약 외에도 딱히 무엇이라 정의하기 힘든, 비전형적인 계약들이 많다. 이번 사안의 발단이 된 모델 계약의 내용은 어떠한가. 매매도 아니고, 고용도 아니며, 임대차라 부르기도 어려운, 매우 특수한 형태의 계약이다.

광고주인 A사의 계약상 주된 의무는 약속된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스케줄에 맞춰 정상적으로 촬영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용계약’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 계약의 궁극적인 목적은 촬영 작업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촬영의 결과물인 사진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데 있다. 실제 A사는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결과, 사진에 대한 정당한 권리(저작권)를 획득했다. 계약을 통해 영구적이며 전에 없던 권리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매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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