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에 대한 소통을 지겹게 늘리자
‘공존’에 대한 소통을 지겹게 늘리자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21.12.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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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팬데믹 2년 동안 개인·타자화 삶에 길들여져
위드코로나 속 어색한 ‘함께 살기’…공동체 회복 위해 주어진 과제는

[더피알=유현재] 다들 그렇겠지만 세상 뻔한 소리하는 걸 참 싫어하는데, 이번 칼럼에서는 제목도 내용도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용기를 냈다. 도덕 같은 단어이자 주제인 ‘공존’에 대한 소통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공존과 헬스커뮤니케이션(이하 헬스컴)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필자부터 약간 혼란하긴 했지만, 조금만 거시적으로 보면 지금 우리 현실에 이만한 헬스컴 주제가 또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코로나가 터진 지난 2020년 1월 20일 이후, 약 1년 10개월 동안 정말로 줄기차게 공존에 반(反)하는 각종 지침과 방법을 공유하며 살아왔다. 쉬운 예로 “사회적 거리두기!” “만나도 말하지 않기!” “접촉하지 않기!” “아예 만나지도 말기!” “마스크를 써서 최대한 얼굴을 가리기!” 등의 규칙은 모두 뭐든 함께 하면 안 된다는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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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에 언급한 일련의 원칙과 규범의 궁극적 목적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방역이었으며, 감염 가능성을 최소화해서 개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개별적 개인이 살아남아야 하니 예전에는 스스럼없이 함께 지내던 ‘남’과의 관계를 최대한 끊으라고 독려하는 메시지로도 이해될 수 있다. 지침의 속 의도야 전혀 그렇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과 담 쌓고 매우 ‘개인적으로’ 살아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온 국민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말이다.

가족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타자화’해 멀리하는 것이 긍정적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교육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규칙이나 지침의 속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종 관계의 ‘단절’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차단’이 자연스레 마음과 몸에 매우 익숙해진 상태가 돼버렸다.

지난 11월부터 우리는 단계적 일상회복 즉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젠 코로나라는 엄청난 괴물을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하면서, 조금씩 코로나 이전 우리가 살아가던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새로운 흐름이다. 일단 백신이라는 변수가 이 같은 국면을 가능하게 했다. 비록 주요 백신 생산국은 아니지만 접종을 마친 비율이 국민의 과반수를 넘었으며, 맞지 않은 분들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의 준비가 이뤄졌다.

물론 위드 코로나를 개시하며 상당한 수치인 하루 수천명대 확진자가 예외 없이 기록되고는 있지만, 당국도 국민도 코로나 초기처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와 기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필자를 포함한 국민들과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과연 ‘안정적’ 위드 코로나 시대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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