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보이는 모순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보이는 모순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2.02.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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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작은 성화대’로 탄소중립 의미했지만 불꽃놀이에 대규모 인공설
‘함께하는 미래’ 슬로건에도 편파판정 논란 이어져
레토릭‧명분 보단 개최국 진정성 발현되야
베이징 겨울 올림픽의 성화. 뉴시스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성화.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모순(矛盾)’.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의 저서 ‘한비자’에 등장한 표현이다.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를 함께 일컫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듯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 상황을 함께 이야기할 때 사용하곤 한다.

굳이 2000여년이 넘은 고서까지 언급해가며 모순에 대해 설명하는 건. 한비의 후손들이 개최중인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대회는 점차 열기를 띄고 있지만 모순이라 부를만한 커뮤니케이션 포인트들이 계속해서 엿보이는 까닭이다.

우선 개회식이 그랬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역대 대회 사상 가장 작다고 해도 무방한 성화대가 사용됐다. 개회식장에 봉송된 성화를 최종주자가 눈꽃모양의 조형물에 바로 꽂는 것으로 성화대가 완성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존의 커다란 성화대를 대회 기간 내내 밝히려면 적잖은 탄소가 배출되기에 탄소중립을 의미한다는 명분이다.

개회식의 클라이맥스인 성화점화가 단출해진 탓에 김이 샐 수도 하지만 지구환경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을 감안하면 일견 수긍이 갈만한 대목. 하지만 ‘소박한 성화대’와는 달리 행사 중간중간 대규모 불꽃놀이가 진행된 것은 아이러니했다. 게다가 커다란 경기장 바닥을 거의 덮다시피 한 LED 패널은 탄소배출과 무관한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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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설상종목을 개최하는 장자커우의 경우엔, 강설량이 적은 탓에 인공눈밭에서 경기가 진행 중이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인공눈을 만들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양의 물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식수마저 부족한 물 부족 국가에서 본다면 뒷목을 잡을만한 장면이다. 이미 환경단체의 우려도 제기된 바 있다.

불꽃놀이도, LED 패널도, 그리고 인공눈도 원활한 행사와 경기진행을 위해선 필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성화대가 주는 의미를 전 세계인들이 수긍하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이 정도면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ESG 경영이 대세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수박 겉핥기’식 환경보호에 나서고 이를 과도하게 홍보하는 일부 기업들이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모순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 올림픽의 슬로건은 다름아닌 ‘함께하는 미래(Together for a Shared Future)’. 하지만 함께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석연치 않은 판정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것도 개최국 중국에 유리한 판정들이 말이다.

쇼트트랙 종목이 여기에 해당된다. 경기 첫날 혼성계주에서 선수간 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른바 ‘블루투스 터치’ 논란에도 중국은 금메달을 가져갔다. 7일 열린 남자 1000m 경기에선 별문제없이 결승에 진출한 것으로 보인 한국선수 두 명이 실격당했고 이들 대신 중국선수가 결승에 나섰다. 결승에서도 중국선수와 막판 몸싸움 끝에 1위를 차지한 헝가리 선수가 실격당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중국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논란이 없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동계올림픽 종목에는 기록경기가 많은데 쇼트트랙은 순위경기에 가깝다. 작은 경기장에서 여러명의 선수가 순위를 다투는 탓에 몸싸움이 벌어지기 쉽다. 다시 말해 판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인지, 그리고 논란이 된 경기에 실제 작용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심증만으로도 편파판정이 의심되는 분위기다. 슬로건 ‘함께’의 의미가 과연 참가국들과 함께인지, 아니면 개최국 국민들끼리의 함께인지 궁금해진다.

베이징 겨울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고 기뻐하는 중국 선수들과 코치진. 뉴시스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고 기뻐하는 중국 선수들과 코치진. 뉴시스

안 그래도 이번 올림픽은 논란이 많은 대회다. 신장 위구르와 티벳 등에 대한 중국의 인권상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고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은 ‘외교적 보이콧’을 선택했다. 이런 탓에 올림픽 파트너 나선 글로벌 기업들조차 마케팅 특수를 누리기 어려운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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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면 개최국인 중국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는 ‘진정성’일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세계인들을 맞이하고 슬로건에 걸맞는 축제를 치르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야 할 터다. 그리고 열린 자세로 해외 여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건 개인적인 생각만은 아닐 듯싶다. 기업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진정성 없는 화려함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부디 남은 기간, 중국이 내세운 올림픽의 긍정적 의미가 실제로도 발현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올림픽은 ‘레토릭’만 거창했던 대회로 기억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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