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으로 본 올림픽과 정치의 패러독스
베이징올림픽으로 본 올림픽과 정치의 패러독스
  • 김주호 (thepr@the-pr.co.kr)
  • 승인 2022.02.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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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주호 KPR 사장 (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을 추구한다는 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때론 국제 관계 속 갈등의 골이 드러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팬데믹과 인권 문제에 대한 지탄 등 여러 정치·사회적 의제를 껴안고 출발한 베이징동계올림픽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올림픽 시작도 전부터 외교적 보이콧을 당하며 말 많고 탈 많게 시작했지만, 대회의 말미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이 스포츠제전의 본질인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이기도 하다. 스포츠 마케팅PR 전문가이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을 역임한 김주호 KPR 사장이 이번 2022 베이징올림픽에서 주목한 지점들을 연재한다. 

① 올림픽과 정치
② 베이징 동계올림픽 vs 평창 동계올림픽

중국 베이징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려한 폭죽이 터지고 있다. 뉴시스
중국 베이징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려한 폭죽이 터지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김주호]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2월 4일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막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베이징올림픽에 132명의 선수단과 함께 정부 대표로 문화체육부 장관이 개막식에 참가했다.

또 정부 대표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개막식에 참석한 것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 속에 외교적 수위를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의 인권 문제 등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른바 ‘외교적 보이콧(diplomatic boycott)’을 선언했다. 선수단을 올림픽에 보내지만, 정부 대표는 파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91개국이 베이징에 선수단과 정부 대표를 보냈지만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10여 개국은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해 정부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미중 관계가 정치, 외교, 경제 등 분야에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올림픽의 부분적 불참을 통해 중국 정부에 외교적 타격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과거처럼 선수단의 올림픽 참가까지는 막지 못했다.

이미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소련(현 러시아)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서유럽, 한국 등 서방국가들이 선수단 불참을 포함해 올림픽 자체를 보이콧했다. 소련을 포함한 동구 공산권, 북한 등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년 LA올림픽에 불참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올림픽이 연이어 정치적 이유로 반쪽 올림픽으로 열린 것이다. 인류 화합과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 자체가 정치적 제물이 된 셈이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올림픽이 열린 이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1916년 제6회 올림픽은 열리지 못했다. 이후 제7회 대회인 벨기에 안트베르펜 올림픽에 전쟁 주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터키의 참가가 금지됐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0년, 1944년 하계 올림픽은 물론 동계 올림픽도 열리지 못했고, 1948년 런던올림픽에는 독일과 일본의 참가가 불허됐다.

일찍 항복한 이태리의 참가는 허용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이 나기 전에 히틀러가 한창 나치 독재정권 시절에 개최된 동·하계 베를린 올림픽(당시는 동하계 올림픽을 같은 시기에 개최함)에서 개막선언을 했다는 점이다. 1972년에는 ‘검은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하는 테러가 일어나 충격을 주며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기도 했다. 이처럼 올림픽이 취소되거나, 테러가 일어나거나, 선수단 자체를 보내지 않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오늘날 외교적 보이콧은 선수단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 주었다는 점에서 올림픽 정신의 존중으로 볼 수도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당시도 우리 정부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평화를 개최목적의 하나로 내세웠으며, 북한의 위협 속에 국제사회의 우려가 있었지만 12년 만에 거의 모든 회원국인 159개국이 참가한 대회가 됐다. 우리나라는 성공적인 서울올림픽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또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92개국이 선수단은 물론 정부대표단을 파견했으며, 특히 21개국 26명의 정상급 인사가 참여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역대 최다 국가, 최다 선수, 최다 관중 등으로 성공적인 대회가 되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공연단의 강릉공연. 필자 제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공연단의 강릉공연. 필자 제공.

무엇보다도 북한 선수단의 올림픽 참가는 물론 북한 최고위층인 김영남, 김여정 등이 참가하고, 올림픽 이후 남북한 정상회담, 트럼프와 김정은 정상회담 등으로 이어져 올림픽이 정치적, 외교적 통로가 되었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로 뉴욕, 워싱턴 등 심장부가 공격을 당하면서,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의 개최취소나 개최지 변경 등에 대한 여론도 있었지만, 미국이 올림픽을 잘 치르면서 오히려 국가적 재난 극복과 미국인들의 애국심 부각 등의 계기로 삼았다. 솔트레이크 개막식에 등장한 9.11 테러 현장의 성조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세계적 문화강국으로 위상을 되찾는 계기로 활용했다. 특히 개막식에는 영국의 문화자산과 세계적 아티스트들을 총동원했다. 특히 국가원수인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나는 제30회 근대 올림피아드를 축하하면서 런던 올림픽 대회의 개회를 선포합니다”라는 단 한 문장만 읽을 수밖에 없음에도 연출을 통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영국의 대표작 007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를 등장시켜 버킹검 궁으로부터 여왕을 안내해 헬기로 이동하고 개막식장에 고공낙하 하면서 큰 인상을 남겼다.

쿠베르탱의 근대올림픽 100주년 기념올림픽을 개최하려던 그리스 아테네는 상업주의의 희생물로 평가받는 미국의 애틀랜타에 1996년 올림픽 개최권을 뺏기고, 환경올림픽을 내세운 시드니에게 2000년 올림픽도 넘겨주었다. 그리스는 27개국 34개 도시 성화 봉송을 개최하는 조건으로 108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했는데, 최초 올림픽 개최도시의 명분보다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에 작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들은 당연히 올림픽을 국가발전이나 국제적 위상 강화, 정치지도자의 입지 강화 등에 활용했다.

올림픽이 비록 도시가 주최하는 행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개최국 정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 없이 열릴 수는 없다. 더구나 올림픽은 경제, 문화, 기술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막대한 경기장, 도로 건설 등 인프라 투자가 병행될 수밖에 없어 올림픽을 단순히 스포츠 축제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글로벌 리더십을 갖고자 하는 중국은 이미 스포츠 분야에도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등 근래 14년간 4개의 올림픽 및 아시아 경기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2010년에는 상하이 엑스포도 열었다. 국제적 스포츠제전은 스포츠뿐 아니라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시진핑의 정권 연장, 문화공정과 함께 심판판정의 불공정성 등으로 여느 때보다 큰 잡음이 끼었다. 중국의 올림픽을 활용한 정치적 목적이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으로 빛이 바래기도 했다.

그러나 91개국 스포츠 스타들이 경쟁을 펼치는 스포츠의 장으로서 의미는 퇴색될 수 없다. 정치는 때로는 올림픽 뒤에 숨어서, 때로는 앞에서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기도 하지만, 더이상 스포츠의 최고를 가리는 경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세계 평화와 인류애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도 더 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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