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 한 가족의 아픔을 코믹하고 능청스럽게 그려내
한 시대, 한 가족의 아픔을 코믹하고 능청스럽게 그려내
  • 윤정원 (kjyoung@the-pr.co.kr)
  • 승인 2010.07.08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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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짬뽕’

공연을 관람하려는 사람들 외에도 다양한 인구로 북적거리는 주말 대학로 거리는 주중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일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 데이트 삼매경에 빠진 연인들 등. 그들 역시 연극 ‘짬뽕’의 주인공들처럼 늘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소박한 꿈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일 것이다. 연극 ‘짬뽕’은 이렇듯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한번쯤 되돌아보게 해주는 공연이다.

윤정원극단 산 기획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맛깔스럽게 쏟아지는 중국집 ‘춘래원(春來園)’. 그곳에는 쉬는 날도 없이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중국집 주인 신작로와 다리가 조금 불편하지만 늘 웃는 얼굴에 구김살 없는 여동생 신지나, 오랜 세월을 그들과 함께 하면서 미운 정이 쌓여 가족이나 다름없는 배달원 백만식, 그리고 신작로의 약혼녀인 다방 레지 오미란이 있다. 평범했던 그들의 일상에 1980년 5월 17일 저녁에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파문을 일으킨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고장에 놀러가려던 만식은 늦은 시간 주문전화로 하기 싫은 배달을 억지로 나갔다가 군인 두 명에게 검문을 당한다. 배가 고파 짬뽕을 빼앗으려는 군인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중 이병이 총을 쏘자 만식은 혼비백산해 중국집으로 도망 온다.

신작로는 배달통을 잃어버리고 온 만식을 호되게 나무라는데, 때마침 TV에서는 광주 지역의 폭도들이 중국집 배달통으로 군인들을 공격했다는 뉴스 속보가 보도된다. 졸지에 빨갱이 취급을 받은 만식은 억울해서 어쩔 줄 모르고, 신작로는 그동안 지켜왔던 평화로운 일상이 깨질까 봐 안절부절못하면서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오는 7월 18일까지 대학로 아티스탄홀에서 공연되는 ‘짬뽕’은 짬뽕 한 그릇 때문에 5·18이 일어났다고 믿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다. 소재만으로 본다면 자칫 무거운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코미디라는 장르를 차용해 유쾌한 웃음을 주면서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작은 행복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소시민들의 모습을 그려내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한다. 2004년 초연 이후 매년 5월이면 어김없이 대학로를 찾아 5·18 30주년을 맞은 올해에 이르기까지 11만 관객들과 만났다.

우리는 30년 전 ‘그날’을 기억해야 한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층은 친구, 연인 외에도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비록 동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평생 잊지 않고 살다 후손에게 전해주고 이야기해줘야 할 것들이 있다. ‘짬뽕’은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고마운 연극”이다. 한 관람객의 관람 소감처럼 ‘짬뽕’은 과거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면서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심각하지만 무겁지 않은 ‘허벌나게’ 웃기면서도 가볍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과 꼭 닮은 소시민들의 삶을 그려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연을 보고 난 뒤 “5·18은 군인들한테 짬뽕을 안 줘서 일어난 거야”라고 또박또박 설명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른이 되면 그날을 기억할 것”이라는 부모들을 보면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연극 ‘짬뽕’에는 전채 요리와 후식이 있다!

공연 시작 전 30년 전 가격으로 관객에게 제공되는 자장면과 짬뽕을 맛보고 싶다면 잔돈을 미리 준비해두는 센스를 발휘해 보자. 순발력은 물론이고 거기에 약간의 용기를 보탠다면 자장면을 250원에, 짬뽕을 300원에 맛볼 수 있다.

아깝게 기회를 놓쳤지만 공연 내내 짬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공연이 끝난 뒤 나눠주는 ‘상하이짬뽕 1+1 쿠폰’을 가지고 매장을 방문해 답답한 가슴을 맵고 얼큰한 짬뽕 국물로 속 시원하게 풀어보는 것도 공연의 여운을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좋은 방법!

‘짬뽕’은 무엇보다 코미디 연극의 진수와 감초 같은 스크린 연기로 주목받아 온 배우 김원해와 최재섭이 요리하는 두 가지 맛의 메인 요리가 일품이다. 2008년 올해의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김원해는 현란한 칼쇼를 시작으로 공연 내내 진솔한 웃음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열연으로 ‘짬뽕’의 열혈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배우 유해진을 떠올리는 외모로 관객들에게 기억되는 최재섭은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의 모습을 코믹하고 능청스럽게 그려내 찬사를 받고 있다.

가볍게 웃고 즐길 만한 소재를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았다가 조금 난감해할 관객들이라도 ‘짬뽕’이라는 연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서민들의 애환을 통해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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