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싸인(sign)’과 주는 ‘사인’
받은 ‘싸인(sign)’과 주는 ‘사인’
  • 안홍진 (bushishi3@naver.com)
  • 승인 2022.05.10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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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주고받는 싸인이 주는 의미

[더피알=안홍진]요즘 젊은 청년 실업자가 많다고 아우성이다. 그들이 실업급여 타려고 식당에서 식사 후 주인한테 ‘면접받은 걸로 해달라’며 싸인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씁쓸한 뉴스가 나온다.

내가 싸인(sign)의 존재를 처음 특별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첫 직장에 입사해서 품의서를 올렸을 때다. 서류 오른 쪽 위에 나는 도장, 과장도 도장을 찍고, 부장, 사업부장은 싸인을 하는 걸 보았던 첫 순간이 생각났다.

원래 국어사전엔 사인(sign)으로 나온다. 사인하면 死因이 떠오른다.

영어발음은 싸인으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싸인’으로 쓴다.

팬 싸인(fan sign)은 콩글리시이고 팬 서명( fan signature)이 맞다.

 

내게도 매우 좋아하는 유명인이 있다. 내 마음의 영웅으로 삼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존경스럽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 그들의 팬이 되었다. 평소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대부분 업무를 하다가 만나게 되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할 때다. LPGA에서 활동하는 최나연 선수를 헤지스 패션모델로 쓴 회사(LF)의 홍보(Hazzys Brand )를 맡은 적이 있다. 바로 1미터 곁에서 그 선수 사인을 받아들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여성 팬이 된 남자의 마음은 표현하기 어렵다. 골프를 좋아하는 내가 앞으로 더 잘 칠 수 있다는 착각도 갖게 되었다. 참 신기하고 들뜬 감정이었다. 아마도 스스로 감정이입이 되어, 내 안의 잠재력을 자극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신성일 씨를 시청앞 프레스센터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싸인을 받은 적도 있다. 그분이 수많은 팬으로부터 받은 인기를 내가 순간적으로 몰래 훔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강 위에 있는 효성그룹이 운영하는 세빛섬에서 유명한 바둑대회가 열렸는데 내로라 하는 프로기사 16강전이 열린 적이 있다. 중국 바둑 애호가 수억 명으로부터 추앙받는 이창호 선수, 한때 인공지능 구글 AI를 이긴 이세돌 선수를 포함, 세계 타이틀 우승자인 최철한, 박영훈 등 여러 프로선수들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내가 갖고 있던 수첩을 내밀며 한 사람씩 싸인을 받았는데 모두 자기를 상징하는 싸인을 해주었다. 이창호 선수만은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본인 싸인 밑에 날짜와 ‘안홍진 님’이라고 내 이름을 적는 걸 보고 조용히 감명받은 적이 있다. 싸인에는 그 사람의 인간적 향기 즉 인품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명동에서 열린 ‘시 낭송 콘서트’에 300여 명이 모였다. 이벤트 ‘명동, 그리운 사람들’이 끝나고 국민배우 최불암 선생님께 싸인을 부탁드렸다. 내 윗 주머니에 수첩과 볼펜을 꺼내들고 싸인해 달라고 졸졸 따라다녔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사진 찍고 인사 나누느라 정신없는 상황이어서 그러신지

“ 에이, 내 나이에 무슨 싸인이야” 하신다. 그래도 조르듯

“최 선생님, 제가 동국제약 인사돌 홍보대행을 한 적이 있어요. 부탁드립니다” 하니까

“ 밝은 나날이 이어지시길... 최불암. 2019. 11. 2.” 라고 해주셨다. 싸인 도중 날짜를 쓸 차례에 볼펜이 안 나왔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얼른 왼쪽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더니 “오늘 날짜가 며칠이지?“ 물으며 싸인을 마저 해주는 것이었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더 들었다. 이날 함께 한 유머 넘치게 강연하신 나태주 시인에게도 싸인을 부탁하기엔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강남, 강북에 한 곳씩 초등학교 6학년 경제교육을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미국에 본거지를 둔 세계적인 비영리 자원봉사단체(JA Korea)의 한국지사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강의를 마친 후 학생들과 작별의 상호 인사를 했다. 이때 담임 여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이 분은 삼성전자에서 상무로 퇴직한 멋진 분이에요”라는 멘트가 나오자마자, 우르르 남녀 학생 30여 명이 자기 노트를 들고 교단으로 나오며 나란히 줄을 서는 것이었다. “노트에 싸인을 해달라!”라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던 것은 물론 당황스럽기도 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어린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팬이 되었다는 황홀한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 어린 학생들 가슴속엔 세계적인 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과 꿈이 가득 차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때의 내 가느다란 한 줄의 싸인이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거미줄 같은 끈끈함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명인에겐 팬이 몰리고 그들은 싸인을 해준다. 싸인에도 품격이 있다. 싸인해 주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 그 선수의 인품을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 분야 최고가 되기까지 철학과 신념이 있을 것이다.

유명 배우,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팬 수십 명이 싸인을 요구하면, 다음 스케줄 상으로 시간이 없어서 대강 바람에 흩날리듯 씨인 표시를 하게 되는 것을 가끔 보게 되는데 이해는 간다.

그래서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팬 싸사인회를 갖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 선수의 경우 모자에 하거나 볼(ball)에 하는 경우가 많다,

박인비 싸인 모자. 양준혁 야구선수의 싸인 볼을 소장하고 있다. 그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쏟은 각고의 노력과 경험과 자부심을 그들의 싸인에서 느끼고 보게 된다.

화가는 그림을 완성하면 낙관을 찍는다. 그들에겐 그것이 싸인이다.

대만이나 중국인들은 화가가 그린 작품을 구입하면 구매한 사람의 낙관을 그 그림에 찍는다. 당연히 한 그림에 낙관이 여러 개로 나타난다. 그 낙관 중에 더 유명인이 있으면 그 그림값은 더 높게 매겨진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컴퓨터 회사를 만들 때 작성한 계약서 싸인이 경매에서 약 2억 원에 팔렸고,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들의 싸인볼과 유니폼이 7억이 넘는 금액으로 팔려, 그 수익금이 불우이웃과 베트남전 피해자들을 돕는 데 쓰인 적도 있다.

싸인은 팬과 그 유명인(셀러브리티)사이에 있었던 짧은 소통의 증거이다.

싸인이란? 유명인에겐 의미심장한 선(線)으로 디자인된 심벌이며, 그들의 삶을 증거해 주는 또 하나의 아날로그 ‘도장’이나 마찬가지이다. 나 같은 팬에겐 그들이 보고 싶을 때 쳐다보게 되는 디스플레이 장치이다. 힘들거나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는 팬들에겐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부적 같은 힘을 줄지도 모른다. 싸인은 그들의 삶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싸인은 팬에겐 그 사람의 얼굴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심장이기도 하다.

감성이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 같은 골수 팬들에겐, 산모와 태아를 연결하는 탯줄 같은 선(線)의 의미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인기 배우나 스포츠 선수의 싸인은 생명만큼이나 소중할지도 모른다. 희귀한 장소와 의미를 갖는 디지탈 시대의 싸인은 가치가 남다를 것이다. 머지않아 미래엔 NFT(Non Fungile Token)로 만들어 많은 인기를 받을 것이다.

나도 물론 유명인의 싸인을 받아 간직하게 된 것만으로도 마음속 금광을 캔 것만큼 부자 된 야릇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싸인을 받아든 순간엔 그들의 능력과 기술과 경험을 한 번에 흡수해 마치 슈퍼맨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기쁨도 맛보게 된다.

내 부모님 세대는 별로 싸인이 유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싸인이라도 받아 놓고 바라본다면 그 싸인의 선(線)에선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각계에서 위대한 분으로 추앙받는 분의 싸인은 가치있는 조그만 유산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안홍진 발행인의 저서 ‘잊지 못할 밥 한 끼’ 책 내용을 일부 게재한 것입니다. 판매대금 전액과 추가 기부금을 합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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