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의 ‘암’ 그리고 갈라파고스 신드롬
삼성생명의 ‘암’ 그리고 갈라파고스 신드롬
  • 김경탁 기자 (gimtak@the-pr.co.kr)
  • 승인 2022.05.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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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김경탁 기자] 삼성생명은 삼성의 금융부문 그리고 국내 보험시장 전체에서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 2위와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선두기업이다.

그런 삼성생명이 최근 몇 년, 이상한 모습을 계속 노출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평판(reputation) 관리 노력 덕분인지 이미지를 훼손하는 부정적인 이슈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지나가는 경향은 있지만, 개별 사안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왜 이렇게 덮고 넘어가려고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삼성생명은 최근 금융당국의 암 보험금 미지급 관련 중징계(기관경고 및 과징금 1억5500만원)에 대해 불복절차를 포기하는 사안 종결 결정을 내렸다. 1월에 확정돼 2월에 통보된 이 사안에 대한 이의 제기‧행정소송 가능 시한 90일을 꽉 채운 마지막 날인 5월 4일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결과서를 수령한 날인 2월 4일로부터 2023년 2월 초까지 1년간 금융당국의 허가를 요하는 신사업 진출이 불가능하게 된다.

불복 포기 배경에 ‘더 늦춰지면 안된다’는 내부 판단이 있다는 분석이지만 만시지탄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마이데이타 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과 관련해 금융위원회가 허가 신청을 받기 시작한 게 2020년 8월인데, 이 징계가 금감위에서 의결된 것은 2020년 12월이었다.

더욱이 이슈가 불거진 2018년에 곧바로 적절한 대응을 했다면 가벼운 징계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고, 중징계를 받아도 빨리 받고 끝냈더라면 진작에 신사업 제한 기간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맏형 삼성생명이 벌인 사고 때문에 삼성금융네트워크 전체가 발목을 잡힌 꼴이 돼버렸다.

삼성생명이 리스크의 빠르고 적극적인 해결 대신에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2020년 3월 취임했다. 사진은 연세대학교 상경 경영대학 동창회포 연경포럼 130호 표지 이미지.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2020년 3월 취임했다. 사진은 연세대학교 상경 경영대학 동창회보 연경포럼 130호 표지 이미지.

어정쩡한 통합앱 ‘모니모’라는 미봉책

전영묵 대표이사 사장 취임 이듬해인 2021년부터 삼성생명은 계열 금융사들의 시스템을 일원화하는 삼성금융네트워크 구상을 공개하고 추진해왔다.

그리고 삼성생명은 지난 4월 12일 화재‧증권은 물론 삼성카드와 삼성자산운용까지 총괄한 그룹내 금융계열사들과 함께 ‘삼성금융네트워크’라는 공동 브랜드를 런칭하고, 이틀 뒤인 14일 통합앱 ‘모니모’를 출시했다.

생명·화재·카드·증권의 모바일 채널 고객 수가 단순 합산으로 3200만 명이고, 중복 가입자를 빼도 2000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단숨에 확보한 “대형 앱”이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했지만,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한 마디에 정리된다.

단적으로 말해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빅테크 앱은 물론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타 금융사의 마이데이타 앱에서 삼성 계열 금융사 계좌를 관리‧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모니모에서는 삼성 계열이 아닌 금융사 계좌를 관리‧사용할 수 없다.

모니모 앱에서는 삼성 계열 금융사 상품만 취급한다.
모니모 앱에서는 삼성 계열 금융사 상품만 취급한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내재한 상태에서 태동한 모니모는 출시 나흘 후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사후처리 과정이 역시나 뭔가 이상했다. 사고 사실에 대한 금융당국 보고 의무 여부 관련 논란이나 고객 고지 문제 등 몇가지 소소한 문제는 접어두고, 통합앱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해당 앱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가입해있는 맏형 삼성생명 측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故이건희 회장의 유훈으로 남아있는 198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의 한 구절을 꺼내보게 된다.

“나는 20년이 넘도록 '불량은 암'이라고 말해왔다. 위궤양은 회복되지만 암은 진화한다. 초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3~5년 뒤에 온몸으로 전이되어 사람을 죽인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암은 초기에 수술하면 나을 수 있으나 3기에 들어가면 누구도 못 고친다.” - 삼성에 만연한 양적 사고에 대해 경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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