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바겐세일? 대주주의 자격을 묻다
언론사 바겐세일? 대주주의 자격을 묻다
  • 이정환 (black@mediatoday.co.kr)
  • 승인 2022.05.23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환의 아레오파지티카]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아레오파지티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레오파지티카는 존 밀턴이 쓴 자유 언론 사상의 고전입니다. 이 연속 기고에서 이정환 대표는 저널리즘 전반의 이슈와 디지털 공론장, 뉴미디어 테크놀로지, 커뮤니케이션의 진화 등을 다룰 계획입니다.  ※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더피알=이정환]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존 캐리루가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의 뒤를 캐기 시작하자 홈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대주주 루퍼트 머독을 찾아가 만났다. 한때 실리콘밸리의 신데렐라로 불렸던 홈스는 피 한 방울만 있으면 200여 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해 9억 달러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사실은 전혀 입증되지 않은 기술이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폭로였다. 2015년 11월의 일이다.

캐리루가 쓴 ‘배드 블러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머독은 이미 테라노스에 1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였지만 기사 출고를 막아달라는 홈스의 부탁을 거절했다. 머독의 답변은 “나는 우리 기자들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머독은 주식 전량을 단돈 1달러에 처분하면서 손실 처리했다. 1억 달러를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캐리루는 “12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머독은 잘못된 투자의 대가로 1억 달러를 잃을 여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시니컬하게 평가했지만, 아무리 부자라도 1억 달러 손실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머독은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철저하게 편집국과 거리를 뒀다. 어떤 기사를 쓰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고, 캐리루에게 어떤 의견도 전달하지 않았다.

머독의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다시 구성해보면 기자가 반 년 이상 작정하고 취재해서 기사를 내보내려는 마당에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고, 이제 와서 기사 출고를 막는다고 테라노스의 몰락을 멈추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갈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어설프게 기사에 손을 댔다가는 월스트리트저널과 머독의 평판에 크게 금이 갔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