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립하는 정치 현수막과 시민의 한숨
난립하는 정치 현수막과 시민의 한숨
  • 김영순 기자 (ys.kim@the-pr.co.kr)
  • 승인 2023.03.17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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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제한 조치 필요성 제기

더피알타임스=김영순 기자

 얼마 전에 종로 거리를 나가봤다. 우리공화당에서 내건 ‘박근혜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도심 곳곳에 그야말로 깔려 있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공화당과는 정반대 스탠스로 ‘윤석열 정권 때문에 못 살겠다’는 진보당의 현수막 또한 그에 못지않은 숫자로 발견할 수 있었다.

종로뿐만이 아니라 요즘 서울 시내에서 사거리만 나가면 나무와 가로등 들 사이에 현수막들이 걸려 있는 것을 곧잘 보게 된다. 서울 외 지역에서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현수막이 벽처럼 쌓여 있는 등 더 심한 경우들도 많다. 대부분이 정당들이 내건 정치적 목적의 현수막이다. 아직 다음 총선을 치르려면 1년이 넘게 남았는데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전국적으로 도심 거리에 무분별하게 내걸린 정치 현수막.  사진= 뉴시스.
전국적으로 도심 거리에 무분별하게 내걸린 정치 현수막. 사진= 뉴시스.

그 이유는 법령 개정에 있다. 원래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현수막은 허가나 신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작년 12월 11일부터 옥외광고물법이 개정, 시행됐는데 정당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광고물 등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옥외광고물법의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게끔 됐다.

한마디로 정당이면 허가나 신고 없이 마음대로 현수막을 걸 수 있다. 단 현수막에 반드시 정당 명칭과 연락처, 설치 업체의 연락처, 그리고 15일의 표시 기간을 기재해야 한다.

현수막 전쟁의 장이 된 거리

이렇게 되자 선거 기간이 아님에도 거리는 정쟁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정당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현수막을 거리에 걸고 있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뿐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보당, 우리공화당 등 군소 야당들의 현수막들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내용은 주로 정부 비판, 야당 비판, 정책 비판, 정치인 업적 자랑, 심지어 현수막끼리의 비판(?)까지 다양한 모양새들을 보인다.

특정 정당의 지지자라면 현수막 내용을 보고 흐뭇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유를 유난히 강조하는 대통령의 시대이니 자유로운 현수막 경쟁이 시대정신에 부합되지 않느냐는 평가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자유의 형평성에는 완전히 어긋난다는 점이다. 당장 소상공인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 소상공인들은 정당처럼 자유롭게 현수막을 걸 수 없다. 대부분 지정된 장소에 있는 지정 게시대에 신고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건다. 이것부터가 차별인데, 지자체에 따라선 기간도 10일 내외로 제한된다.

집단이기주의에서 무소불위

당연하지만 무분별하게 걸린 정치 현수막들은 시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정치 성향에 따라 흐뭇해지는 현수막도 있겠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현수막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현수막들이 서로 대화하듯 거리를 차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교통상으로나 미관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보행자가 현수막 게시용 끈에 목이 걸려 바닥에 넘어지는 안전사고까지 발생했다고 전해졌다.

애초에 옥외광고물법은 무분별한 옥외광고물을 규제하기 위해 정해진 법령이다. 그런데 개정법은 옥외광고물법의 본질을 해하고 되려 무분별함을 부추기며 현수막 쓰레기까지 늘리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법 개정은 정치인들만 좋을 뿐인, 자유를 빙자하며 시민의 삶을 무시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다. 각 지자체에는 난립하는 현수막에 대한 민원이 급격히 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와 구청장,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법령이 정한 정당 활동은 보장하면서 시민 피로도를 낮추고 보행 안전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경기도 광명시는 행정용 현수막 총량제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으로 정해졌기에 지자체에서 조정할 폭은 넓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의견들을 수렴하여 옥외광고물법령 개정안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쏟아지는 불만에 행정기관들이 제대로 대응할지 감시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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