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찍힌 사진 1장으로 이미지 실추…위기 상황 속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더피알=김세환 | 2021년 7월 17일 아르민 라셰트(Armin Laschet)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정부 총리는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했다. 당시 기민당의 연방정부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그는 피해 주민을 격려하고 재난 극복을 위한 긴급 지원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주정부의 행정수반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 동시에, 총선 과정에서 독일 시민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낼 주요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실제로 20년 전인 2002년 당시 총리 후보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는 홍수 피해를 입은 오데르브루흐(Oderbruch) 지역을 방문했을 때 고무장화를 신고 열정적으로 수해복구에 나서는 모습을 연출하여 미디어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정체되었던 지지율을 끌어올려 총선에서 승리한 바 있다.
하지만 아르민 라셰트의 전략은 실패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프랑크발터 슈테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 연방 대통령이 이재민을 위로하는 순간, 라셰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독일 전역에서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미디어는 위기 상황에서 인격이 드러난다고 언급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무감각하게 휘파람을 부는 유력 정치인을 무자비하게 비난했다.

SNS는 ‘#Laschetlacht’(웃는 라셰트)라는 해시태그로 도배되었다. 라셰트가 즉시 사과했지만 사태를 되돌리지 못했고, 기민당은 나락에 빠져들었다.
총리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묻는 당시의 여론조사를 보면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어보크(Annalena Baerbock)와 선두 경쟁을 벌이던 라셰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지지율이 급락하며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Olaf Scholz) 후보에게 역전을 허용했다.(그림) 그리고 이후 총선에서 독일 총리에 오른 사람은 숄츠다.
미디어가 전달하는 이미지는 여론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등락을 반복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특정 시점의 현재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미지는 인식에 영향을 미치며, 복잡한 설명이나 일련의 주장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은 소송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요제프 아커만(Josef Ackermann) 도이체방크 회장의 케이스가 그렇다. 그는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도착해 승리의 포즈인 V자를 보여주었다. 이 한 컷의 사진으로 그는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도이체방크에는 20여 년 지속되는 커뮤니케이션 재앙을 안겨주었다. 관련기사 : 법적 절차에 커뮤니케이션을 접목하는 방식, ‘소송 PR’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와 변호사는 요제프 아커만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었다. 무엇이든 미디어에 의해 기호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갈등을 해소하는 일만큼 대중의 심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루퍼트 슈타들러(Rupert Stadler) 아우디 전 회장은 디젤 게이트로 법정에 들어설 때 침착한 표정과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미디어에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미디어는 그의 침착한 표정을 무죄에 대한 확신으로, 낮은 자세를 경영자의 책임지는 모습으로 보도했다. 법원 출두와 관련해 슈타들러가 받은 비판은 변호사의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을 이용한 것인데, 이에 대해 미디어는 슈타들러의 고용주였던 아우디에 대한 비판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으며 논란을 부추겼다.
슈타들러는 미디어에 특정한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가령 최근 법정에서는 변호사들이 전문적으로 디자인된 파워포인트로 변론하고, 이를 현장의 저널리스트들이 쉽게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반대로 검사들은 주요 내용을 검정색으로 칠한 피고인의 증거 문서를 법정에서 종종 보여준다.
관련 정보는 기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하는 부분은 다르다. 이것은 피고인이 제공한 증거가 아니라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간주한다.
미디어는 피고인, 증인, 변호사, 검사의 표정과 몸짓 등 법정의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인다. 따라서 부적절한 순간 웃는 것도 중요한 취잿거리가 된다. 이것은 기업이 법정에서 왜 이미지를 제어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동시에 소송 PR이 왜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인지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