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피알=신아연 | ‘예(禮)’라는 글자를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제단 위에 음식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형상. 그 음식이란 바로 제사음식, 즉 예의 근간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것에 있다.
유교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예로 빚어진 통치 이념이자 문화 전통이다. 예가 빠진 유교는 속된 말로 앙꼬 빠진 찐빵이요, 제사 빠진 예는 김빠진 콜라 정도가 아니라 유교 자체의 몰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의 맥을 이어온 유교가, 콕 집어 말하자면 제사 문화가 견고한 어금니 흔들리듯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어서 고질적 치통처럼 명절 때마다 고약한 사회 통증을 유발한다. 명절 끝에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공공연히 떠돈다.
만들어진 제사음식을 사서 상에 올리는 일은 더 이상 흉이나 탓할 일도 아니다. 그렇게라도 제사를 지내는 집안은 되레 기특하단 소리도 곧 나올테니. 지금과 같은 급물살 변화 속도라면 말이다. 명절, 특히 추석 차례는 전형적인 농경사회의 산물이니 그럴 만도 하다.
지금이 어느 땐가. 과감히, 과격히 말한다면 이제 없앨 때도 되지 않았나.

고물가에 제상 차리는 비용이 허리를 휘게 하고, 그나마 그 음식을 다 먹기라도 하면 모를까, 버리는 일이 허다한 현실에서 전통문화와 조상에 대한 존중마저 빠져 있으니 누구를 위한 일일까 말이다.
올 추석은 지내냐, 마냐의 과도기 현상에서 좀 더 나간 느낌이다. 이제 명절 차례는 바야흐로 선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내거나 안 지내거나 각자 집에서 결정할 문제가 된 것이다. 더구나 올해는 안 지낸 사람이 지낸 사람들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수치는 점점 더 차이를 내면서 안 지내는 쪽으로 완만히, 어쩌면 급격히 기울 것이다.
조상 잘 둔 사람은 명절 때 해외여행가고, 조상 덕 없는 사람은 제사 지낸다는, 우스개지만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말도 있다. 명절에 달갑지 않게 제사 지낸 사람과 그 비용과 시간으로 해외여행 다녀온 사람, 또 다른 양극화 풍경을 낳고 있다. 명절 금수저와 흙수저 논란도 나올 판이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는 시대, 그나마 차례도 안 지낸다면 무엇을 구심점으로 가족이 모일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시대착오적이다. 차례가 아니어도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다. 차례를 없애면 훨씬 부담 없이, 명절다운 명절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차례는 이미 구심점으로서의 힘을 잃었다. 명절날, 가족 구심점이 필요하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기록에서처럼 추석의 유래는 신라의 가배(嘉排)에서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