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 상장 추진, 시작·중단 모두 삼성바이오에피스 자체 판단이었다
나스닥 상장 추진, 시작·중단 모두 삼성바이오에피스 자체 판단이었다
  • 한민철 기자 (kawskhan@naver.com)
  • 승인 2023.11.15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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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철 기자의 법정 취재파일] 이재용 삼성 재판 ③

검찰, 삼성그룹 미전실에서 진두지휘해 조종했다고 볼 증거 못찾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위한 ‘허위 이벤트’라는 주장 근거 없어

더피알=한민철 기자 |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 사장은 2014년 10월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계획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전략 2팀 김용관 당시 부사장에 보고했다. 관련 증거들을 통해 미전실과 상장 관련 커뮤니케이션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고 사장은 바이오젠과 상장 협의를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실제로 그는 10월 20일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젠 본사에서 바이오젠의 CEO 조지 스캔고스와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에 관해 논의했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2015년 7월 1일 기업설명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2015년 7월 1일 기업설명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시 에피스 내부에서 미팅 준비를 위해 작성한 설명자료 <IPO 아웃룩>(2014.10.15. 작성) 문건과 미팅 중 오간 이야기를 정리한 <바이오에피스-바이오젠사 미팅 결과>(2014.10.26. 작성) 문건에 따르면, 고한승 사장은 바이오젠 측에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을 제안하며, 성공적 상장을 위해 바이오젠이 상장 전 콜옵션을 미리 행사해 대주주 지분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확인된다.

또 <바이오에피스-바이오젠사 미팅 결과> 문건에는 ‘2015년 하반기 상장 작업에 착수해 2016년 상반기 완료’라는 일정과 함께, 당시 조지 스캔고스 대표의 태도에 대해 “상장에 반대하지 않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현”이라고 기재했다.

실제로 바이오젠은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고, 상장 전 콜옵션 행사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이후 2014년 11월 17일 가진 2차 미팅에서도 바이오젠은 상장 시기와 옵션 행사 시기를 삼성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허위라고 하기에 너무 진지했던 상장 추진 계획

이후 1년여간 에피스는 바이오젠 등과 수차례 만나 나스닥 상장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특히 2015년 3월 초, 향후 상장 관련 자문을 맡게 될 씨티증권 미국 본사와 아시아 본부 헬스케어 분야 담당 임원들이 에피스 본사를 방문해 고한승 사장 및 임직원들과 나스닥 상장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다 2015년 5월 말부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이슈가 됐고, 이미 수개월 전부터 추진되고 있었던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계획이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맞추기 위한 의도적 이벤트라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2015년 7월 1일 IR에서 고한승 사장은 기자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고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가 작년과 올해 출장만 150일 다녔습니다. 원래 저희가 한국 증시에서 제대로 된 회사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고, 그래서 IB들을 수도 없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게(합병) 맞물려 이야기가 나왔고, 모직-물산 합병 때문에 IPO를 계획한다고 하시는데, 그런데 나중에 지켜보세요. 이 사람들이 언제 이런 준비를 했는가, 에피스에서 IPO에 대해 굉장히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결론을 내실 것입니다.”

- 2015.7.1. 고한승 사장 삼성바이오에피스 IR 질의응답

상장 추진 당시 에피스 측 자문을 맡았던 씨티증권 관계자는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상장과 합병 시기 등에 대해 묻는 삼성 측 변호인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문 : 에피스는 2014년부터 실제로 나스닥 상장의 검토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고, 증인 말씀하신 것처럼 나스닥에 충분히 상장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2015년 7월 1일 상장 계획 발표가 이례적이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은데요.

답 :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었습니다.

문 : 씨티증권도 에피스의 상장 계획 발표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식의 자문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 보이는데요.

답 : 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 : 증인이 자문하면서 없는 상태의 계획을 허위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추진해 온 상장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해, 그런데 발표 무렵 모회사나 관계사가 합병 등을 추진하고 있었거나 상장 계획 발표가 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경우를 보거나 그런 식으로 자문한 적 있습니까.

답 : 없습니다.

문 : 2015년 7월 1일 삼성바이오에피스-애널리스트 간담회 녹취서를 제시합니다. 당시 에피스 고한승 대표가 답한 내용인데요. 여기 보면 바이오젠이 지금 50% 콜옵션을 가지고 있는데, IPO에 대해서는 벌써 협의가 끝났고, ‘그들은 찬성하고 있다’ ‘IPO 시점에 맞춰 옵션 행사하는 걸로 협의가 돼있다’ ‘IPO 후에도 (바이오젠은) 전혀 경영 참여 의사가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증인이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자문하면서 알고 있는 사실관계에 비춰봤을 때 고한승 대표가 이와 같이 답변한 것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까?

답 : 제 이해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 2022.8.18.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증인 김○○ 신문 내용

에피스 측은 직후인 7월 27일 상장 업무의 주관사 선정을 위해 10여 개의 글로벌 증권사 소속 IB에 제안서 제출 요청을 내용으로 하는 RFP(Request For Proposal)를 발송했다.

검찰 측은 이 RFP 역시 허위라고 하지만, 재판에서 공개된 증거와 정황상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당시 골드만삭스와 씨티증권, 크레디트스위스, 모건스탠리 등 4개사가 상장 주관사로 선정됐는데, 약 3주 동안 1차 서류 심사와 2차 대면 심사 및 PT가 철저히 이뤄졌다. 해당 심사에는 고한승 사장 등 에피스와 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 인원이 참석했을 뿐,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8월 27일 인천 송도의 한 호텔에서 삼성 측과 4개 주관사, 법무법인, 회계법인이 참석한 가운데 상장 관련 킥오프 미팅을 가졌다. 그러면서 이들은 2016년 1월 상장 추진이 중단될 때까지 에피스의 상장 TF 사무실에 상주하며 업무를 이어갔다.

검찰 주장처럼 허위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시간과 돈과 인력을 쏟았고, 일반적인 상장 추진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심지어 이 무렵 바이오젠은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절차에 필요한 각종 실사 작업을 위해, 이들 주관사와 법무법인 등에 로직스와의 비공개 합작계약서를 공개하는 것에도 동의했다. 또 상장 전 콜옵션 조기 행사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삼성 측에 제시한 상황이었다.

상장 보류 결정의 계기인 대외적 요인은 무엇이었나

결과적으로 따지면,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은 아직까지도 현실화되지 못했다. 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완료된 직후에 이 상장 추진 보류가 공식화된 것에 대해 ‘정황’을 의심하는 검찰 측 입장에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검찰 공소사실대로 당시 상장 추진이 시세조종을 위한 허위의 이벤트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상장 추진을 중단할 정도의 ‘합리적 사정’이 있어야만 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이 제시한 ‘합리적 사정’을 짚어보자.

우선 로직스와 함께 에피스 합작의 한쪽 파트너인 바이오젠에 입장 변화가 있었다. 상장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던 바이오젠은 2015년 10월 6일 콜옵션 행사 및 지분 매각 시점에 대해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이후로 연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갑자기 밝혀왔다.

심지어 바이오젠은 11월 1일 “상장과 동시에 콜옵션 행사 계획이 있었지만, 벨류에이션이 충분치 않으면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옵트인 프로포절(Opt-in Proposal)’을 삼성 측에 보낸다.

이때부터 바이오젠은 더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11월 11일에는 상장 전 콜옵션을 행사하는 대가로 에피스가 개발할 후속 7종 시밀러 제품에 대한 마케팅 권한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오젠이 사실상 상장에 비협조적 방향으로 돌아선 만큼, 만약 상장이 허위의 이벤트였다면 여기서 중단할 명분도 충분했다. 하지만 에피스 측의 상장 추진은 이어졌다.

2015년 10월 26~29일 에피스는 미국 뉴욕 및 보스턴에서 12개 투자회사를 대상으로 1차 투자자 사전 미팅을 진행했다. 이어 11월 9~11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9개 회사에 2차 투자자 사전 미팅이 있었다.

특히 에피스는 바이오젠의 입장과 관련 없이 상장을 예정대로 추진할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5년 11월 16일 에피스 내부에서 작성한 <상장 관련 주요 현안 보고> 문건에는 바이오젠 콜옵션 행사 여부가 상장 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콜옵션 행사 여부와 무관하게 상장을 추진하는 방안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미전실에도 보고됐고, 재판에도 증거로 현출됐다.

이렇게 내부적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어떻게든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대외적 환경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2015년 3분기부터 나스닥 시장에서 바이오주가 맥을 못추고 있었던 것이다.

2015년 9월 유력 대선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약값이 폭리를 취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며 대형 제약사를 겨냥하는 발언을 했고, 이에 나스닥 바이오 기술주 지수는 무려 5% 가까운 급락세를 보였다. 이후에도 나스닥 생명공학 지수는 10월까지 큰 폭으로 하락했고, 2016년 1월에도 반등하지 못했다.

결국 2016년 1월 말에는 중국발(發) 악재로 인한 뉴욕 증시 폭락세 및 주가의 급변동으로 미국 내 신규 상장을 계획한 기업이 이를 보류하거나 철회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관련 언론보도에도 ‘연초 이후 증시에 입성한 새내기 종목이 전무’ ‘시장 전문가들은 IPO 시장이 회복되기까지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 ‘주가 바닥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트위터 등 상장 기업 대부분 공모가 아래로 추락’ 등으로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에피스로서는 이처럼 상당한 대외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상장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었다. 이런 사정은 고한승 사장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2015년 10월 이후 나스닥 증시가 폭락했고, 특히 IPO 시장이 더욱 악화됐습니다. 높은 기업 가치를 받는 것이 중요한데 시장 상황이 나쁘다 보니 계속 고민을 하던 중에 2016년 1월 6일 주관사와 실무진을 소집해 상장을 연기한다고 제가 직접 공식 발표했습니다.”

“2015년 12월경 상장 일시를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김용관 부사장에 여러 차례 전달했습니다. 12월 말에 용인 인력개발원에서 개최된 사장단 회의 때 최지성 실장에 상장 진행 중인데 최근 IPO 시장이 악화해 우리가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 안 선다고 말했습니다.”

- 고한승 검찰 진술

결국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은 추진 시작과 중단도 에피스 자체적인 판단 아래 이뤄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미전실에서 진두지휘해 에피스를 조종했다고 볼 만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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