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 화재, 제일모직에 정말 악재였을까
물류창고 화재, 제일모직에 정말 악재였을까
  • 한민철 기자 (kawskhan@naver.com)
  • 승인 2023.11.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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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철 기자의 법정 취재파일] 이재용 삼성 재판 ④

검찰, 삼성물산과의 합병 과정이 ‘불법’이라는 정황 증거로 등장
“대형 화재가 주가에 반영되지 않도록 양사 합병 이사회 강행”
삼성 내부에선 제일모직의 주가에 영향 줄 이슈 아니라고 판단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3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재판의 1심 판결이 내년 1월 26일 내려집니다. 검찰수사심의원회의 불기소 결정을 누르고 강행된 2020년 9월의 검찰 기소로부터 구형이 나온 결심공판까지 총 106차례의 재판을 빠짐없이 참관한 한민철 기자는 ‘그간 많은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했지만 대부분 검찰 발표 중심이었고 실제 재판 현장의 이야기들은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현장기자가 3년 2개월간 직접 쌓아올린 법정 취재파일을 통해 핵심 쟁점과 주요 증언을 짚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2015년 5월 25일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 제일모직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 및 인명 확인을 위해 건물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5년 5월 25일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 제일모직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 및 인명 확인을 위해 건물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피알=한민철 기자 | 석가탄신일이던 2015년 5월 25일 새벽 2시경,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제일모직 물류창고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는 창고의 총 면적 6만2518㎡ 중 약 3만㎡를 태웠고, 내부에 적재돼 있던 의류 상품도 대부분 소실되는 등 상당한 재산 피해를 입혔다.

당시 소방당국은 화재로 인한 피해액을 약 280억 원으로 추정했는데, 이후 제일모직 측은 무려 2400억 원의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고 밝힐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고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3명에 제기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약칭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사건 재판에서 ‘불법 합병의 정황’ 증거로 검찰 공소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재 발생 바로 다음 날,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결의하는 이사회를 진행했다는 것이 이유다.

“피고인 이재용, 피고인 최지성, 피고인 김종중 등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결의 이사회 전날인 2015년 5월 25일 새벽 무렵 모직의 대형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의류 1600톤이 소실되는 등 대규모 손실이 발생, 다음 날 모직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물산 주주의 입장을 고려할 경우 그 다음날 이후 합병 상대 회사인 모직의 주가 추이 및 그에 따른 합병비율의 변동 상황 등을 지켜본 후 이사회를 개최하는 것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물산 및 모직을 상대로 예정된 일정대로 이사회를 강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피고인 최치훈, 피고인 김신 등은 위 모직의 대형 화재가 모직 주가에 반영되지 않고 그 결과 합병비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주식시장 개장 전인 2015년 5월 26일 오전 7시 30분경 예정대로 양사 합병 이사회를 개최했다.”

- 검찰 공소장

제일모직-삼성물산 불법 합병 의혹에 관한 검찰 공소는 당시 합병이 이재용 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으로, 이 회장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에는 유리한 동시에 삼성물산에는 불리한 합병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상장회사 간의 합병에서 합병비율은 합병 시점의 주가로 결정되는데, 주가가 상대적으로 높을수록 유리한 합병비율을 받게 된다. 실제로 두 회사는 제일모직이 1, 삼성물산이 0.35의 비율로, 모직에 유리한 합병이 이뤄졌다.

검찰은 당시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라고 불리고 있던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을 필두로 계열사를 총동원해 ‘1:0.35’라는 제일모직(이재용 회장 측)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한 인위적 작업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 전제대로라면 당시 삼성 측의 목표는 모직의 주가 부양 및 물산보다 높은 수준의 주가 유지였다. 앞서 언급한 검찰 공소사실대로 제일모직 물류창고 화재 사고는 모직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벤트로 볼 수 있었다.

얄궂게도 사고가 합병 결의 이사회 전날 발생했지만, 모직과 물산 두 회사에 공정한 합병이었다면 해당 이벤트를 반영한 주가 상황에서 합병비율을 결정해야 옳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예정대로 이사회를 감행했고, 특히 화재 사고 이벤트가 모직 주가 하락 그리고 모직 측 유리한 합병비율에 악영향을 줄 수 없도록 5월 26일 장이 열리기 전 이사회를 마무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재용 회장 등 경영진이 당시 합병 이사회 개최를 강행하도록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하고 있다. 검찰 측은 이 사건 재판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도 이 부분 공소사실이 명백한 유죄의 정황이 된다고 강조했다.

“피고인들은 제일모직의 물류창고 화재에도 이사회를 강행한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피고인 측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모직 화재가 주가 악재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증권에서 미전실에 보고한 이메일을 보겠습니다. 주가 하락에 따른 합병비율 시뮬레이션 결과, 이사회 연기 시 모직에 불리한 사실이 분석됐습니다. 유사 사례인 SK하이닉스 화재 사고 이후 이틀 동안 주가 하락이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분석을 보고받은 미전실이 이사회 연기 시 모직 추가 하락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모직 입장에서는 화재의 영향이 주가에 반영되기 전 이사회를 개최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물산 주주의 입장을 고려함 없이 이사회를 강행했습니다. 피고인들은 화재가 주가에 부정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2022년 언론 보도 및 공시된 대형 기업의 시설 화재는 예외 없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이중 화재 후 이틀간 약 14%가량 주가가 하락한 크리스에프앤씨는 모직과 사업 현황, 화재 장소, PF, 보험 여부 등을 볼 때 가장 유사한 사례입니다. 이 사건 결과, 근접한 시점에 화재 발생 사례를 들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연구 자료에 따르더라도 기업의 대형 사고는 주가 하락으로 이루어졌다는 분석입니다.”

- 2023.10.27.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검찰 쟁점 PT

“2015년 5월 26일 19시 22분 이메일입니다. 삼성증권에서 미전실 김○○ 등에게 화재로 인한 모직 주가 하락률에 따른 합병비율, 피고인 이재용 일가의 지분율 변화 등을 보고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합병비율이 1:0.356에서 1:0.379까지 변화하는 사실 관련입니다.”

- 2022.10.27.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검찰 서증조사

앞선 쟁점 PT와 서증조사에서의 언급대로 이 부분 쟁점에 관해 검찰 측이 주목하고 있는 증거는 당시 미전실에서 화재 사고에 대해 보고받은 내용이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추진 당시 삼성증권 소속이자 물산 측 합병 TF(Task Force)에서 업무를 담당했던 이○○ 팀장이 2015년 5월 26일 미전실 소속 직원에 보낸 이메일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모직의 물류창고 화재를 고려한 이사회 일정 변경 검토 그리고 화재로 인한 모직의 주가 하락 시 바뀔 수 있는 합병비율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검찰은 2015년 5월 25일 모직 물류창고 화재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삼성 경영진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결의 이사회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2015년 5월 25일 모직 물류창고 화재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삼성 경영진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결의 이사회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이는 검찰 측 주장대로 화재 사고가 주가에 반영된 후 이사회가 열린다면, 직전까지 형성해 놓은 모직에 보다 유리한 합병비율이 무산될 수 있음을 미전실과 경영진에서도 인지했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었다.

이○○ 팀장은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검찰 측 신문에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문 : 2015년 5월 26일 증인 발신 이메일 제시합니다. 증인은 이날 미전실 김△△와 최□□에게 모직의 물류창고 화재를 고려해, 이사회의 일정 변경 검토 내역과 해당 화재로 인한 모직의 주가 하락 시 변경될 수 있는 합병비율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내준 사실이 있습니까.

답 : 네.

문 : 증인은 미전실 측 요청에 따라 이와 같은 검토를 한 것이 맞습니까.

답 : 이메일 상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문 : 모직 물류창고 화재로 인해 증인의 시뮬레이션 결과처럼 실제로 합병비율이 구(舊) 삼성물산 측에 유리하게 변동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면, 구 삼성물산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예상되는 주가 하락에 관여함으로써 자신들에 보다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 이사회 일정 변경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 내부적으로 검토하셨을 것 같습니다. (시뮬레이션에 나온) 하락률인 5%와 15% 등은 그냥 시나리오상 한 것이고. 영향이 그리 크진 않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미 이사회 결의가 통지된 상황이었고, 이를 전반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2021.7.8.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증인 이○○에 대한 검찰 주신문 내용

이처럼 당시 화재 사고에 따른 영향을 삼성 내부에서 주목한 것은 명백했다. 특히 미전실에서 화재 사고로 인한 모직의 주가 변동의 가능성을 인지했던 것도 사실로 보인다.

다만 검찰 측 주장과는 반대로 결과적으로 이를 모직 주가와 합병비율에 큰 영향을 줄 정도의 심각한 이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정황도 여럿 드러났다.

이○○ 팀장의 이어지는 증인신문 내용에서도 이와 같은 당시 삼성 내부의 인식을 알 수 있다.

문 : 증인은 삼성물산 TF에서 물산 쪽을 자문했습니다. 합병 상대의 회사인 모직에서 큰 화재가 있었는데, 모직의 주가가 개장됐을 때 어떤 반응이 있을지 모르니까, (삼성물산 측에) 물어보고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는 식의 조언을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답 : 제가 조언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조언할 위치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죄송하지만 바이오로직스 공장에서 난 화재도 아니고, 패션 저장 창고에서의 화재라서 개인적으로 그것에 대한 주가 영향보다는 당장 이사회 결의를 앞두고 합병 정보가 샜을 때 주가의 변동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고 봤습니다. 조언했다면 화재보다는 정보가 샜을 때 주가 변동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서 이사회를 예정대로 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을 것 같습니다.

- 2021.7.8.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증인 이○○에 대한 검찰 주신문 내용

당시 모직 물류창고 화재 사고가 모직의 주가와 합병비율에 큰 영향을 줄 이슈는 아니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사회 일정을 연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기사 : 불타서 소실된 패션 재고, 보험금은 원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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