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KT 분쟁에 ‘시한폭탄 제거반’이 없다
삼성전자-KT 분쟁에 ‘시한폭탄 제거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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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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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TV 분쟁 ‘첩첩산중’, 방통위 ‘수수방관’

 

▲ 최훈길 미디어오늘 경제·뉴미디어팀 기자
스마트TV 분쟁이 일단 봉합됐다. KT는 지난달 14일 삼성전자의 스마트TV의 인터넷망 접속차단을 해제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KT의 접속제한 행위 중지 등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이 결과 지난 10일 오전 9시부터 단행됐던 차단 조치가 닷새 만에 풀렸고, 양측의 갈등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스마트TV 플랫폼 사업자와 가전회사와의 다툼이지만, 방송을 비롯해 콘텐츠 업계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망 사업자가 망을 이용하는 업체나 이용자에 대해 대가를 부가하는 것이 맞는지를 두고, 망 중립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KT가 스마트TV를 “민폐 TV”라고 부를 정도로, 삼성전자와 충돌한 지점을 살펴보는 것은 향후 시장의 판도를 전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 타깃은 이용자가 분쟁 당사자 될 수 있다

양측이 가장 크게 대립한 쟁점은 트래픽 부분이었다. KT는 스마트TV 동영상은 평상시 IPTV 대비 5~15배, 실시간 방송중계 시 수 백배 이상의 트래픽을 유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스마트 TV에서 사용되는 ‘현재’ HD급 용량은 IPTV와 유사하거나 더 낮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KT는 실제 측정해 보면 25메가까지 트래픽이 올라가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계산한 평균치가 아니라 상위 최대치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재반박했다. 통신사가 깔아 놓은 고속도로(인터넷망)에 거대한 화물 차량들(삼성전자)이 톨게이트 비용도 내지 않고 고속도로 정체를 빚고 있는 것을 가만둘 수 없다는 게 KT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KT가 삼성전자만을 겨냥해 접속차단을 한 점이다. 삼성전자는 ‘KT와 같은 논리라면 글로벌 업체인 애플, 구글의 스마트 제품에도 똑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이외의 애플, 구글 같은 ‘거대한 화물 차량들’과 비교해 ‘이중 잣대’를 대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동안 KT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보급 과정 등에서 갈등을 빚은 것이 이번 사태에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KT의 불분명한 잣대가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KT가 과다한 트래픽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을 상대로 접속차단을 한다면? KT가 과다한 트래픽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방송사의 동영상 서비스를 접속차단한다면? 이 물음은 향후 시장 판도를 묻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첫 번째 의문은 KT가 이번에는 삼성전자라는 사업자를 상대로 했지만, 추후에는 이용자가 분쟁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KT가 이용자들의 망을 접속차단하지는 않겠지만, 대신에 이용 요금을 인상할 수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출입기자들이 KT쪽에 ‘삼성전자가 망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경우 대가를 이용자가 지불하는 것 아니냐’, ‘KT가 인터넷 종량제로 가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기됐던 이유다.

방통위가 사과요구를 구걸하듯 하는 양상

두 번째 의문은 이미 일어난 적이 있었고, 곧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대한 것이다. 지난해 말 KT가 MBC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화질을 낮춰 달라고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KT는 트래픽이 폭증하는 연말에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릴 것을 우려해 MBC에 고화질 서비스를 일시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고, MBC는 이를 받아 들였다. KT와 삼성전자 간의 분쟁 과정과는 다르지만, 사업자 간의 트래픽 문제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인 셈이다.

문제는 최근 방송사들이 N 스크린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KT 등 플랫폼 사업자와 방송사 등 콘텐츠 사업자 간의 분쟁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 여부다. 당장 트래픽이 유발되는 것에 대한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논란이 주목되는 이유는 플랫폼 사업자, 콘텐츠 사업자, 단말기 사업자와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 되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이용자를 두고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용자를 자신의 플랫폼에 머물게 하려고 시도하고, 콘텐츠 사업자들은 N 스크린을 통해 플랫폼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단말기 사업자들은 단말기 구입 고객이 자사 단말기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게 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결국 이들 사업자들이 한정된 시장에서 ‘파이 뺏어가기’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싸움판은 피 튀기는 살벌한 현장일 수밖에 없다. 최근 지상파와 케이블 사업자가 재송신 분쟁으로 갈등을 빚자, 케이블이 지상파 재송신을 전면 중단해 1500만 명의 시청자들이 피해를 당했다. 이 같은 사태가 앞으로는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중재할 수 있는 방송통신 주무 기관의 책임이 무거워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방통위가 중재를 제대로 할지는 미지수다. 방통위는 지상파 재송신 분쟁을 비롯해 KT와 삼성전자의 스마트TV 분쟁에서도 제대로 된 중재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고, 시청자(이용자)들은 피해를 당했다. 특히, 방통위는 KT와 삼성전자가 일단 합의를 하자, 이용자에 대한 피해 대책과 피해를 준 양 사업자들에 대한 사과 및 제재에 긴급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양문석 상임위원이 “방통위가 (삼성전자, KT에)사과요구를 구걸하듯 하는 양상”이라고 말할 정도다. 더군다나 차기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방송 분야에 일한 적이 없는 ‘문외한’이어서, 중재 능력이 더욱 의문시 된다. 곧 터질 ‘시한폭탄’을 제거해 줄 대책반이 없는 게 현재 방송·통신 시장의 우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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