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뷰스] 마중물을 만드는 사람들
[신아연의 뷰스] 마중물을 만드는 사람들
  • 신아연 (thepr@the-pr.co.kr)
  • 승인 2024.01.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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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 100주기, 이를 기억하려는 사람들
김태영 감독의 다큐 영화 〈1923 간토대학살〉
김태영 감독의 다큐 영화 〈1923 간토대학살〉

더피알=신아연 | 어떤 일이 100년쯤 지나면 없었던 일이 되거나 변질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터. 그러려고 시간 끌기를 하는 게 아닌가.

1923년 관동대학살이 꼭 그렇다. 100년 전 9월 1일, 일본 간토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희생자 10만 명에,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참사 복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정부가 엉뚱하고도 망령된 발상을 했다.

불난 데 부채질한다고, 지진 난 김에 재일조선인들이 일본 사람들을 몰살시키려고 한다는 유언비어를 조작한 것이다. 그 말을 믿고 광분한 일본 사람들이 떼지어 일어나 조선 사람들을 7천 명 가까이 학살했다.

100년이 흐르는 동안 일본인들은 그때 진짜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 것으로 믿게 되었고, 정부는 학살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정작 독을 탄 것은 일본 정부였던 것이다. 그것도 우물 정도가 아닌, 일본 사회 전체에 유언비어의 독을 서리서리 풀었으니.

이제 생존자도, 목격자도, 유가족도 다 세상을 떠났다. 더 세월이 흘러 150~200년쯤 지나면 그게 진실이 된다. 너무나 억울하고 섬뜩한 일이다.

작년 8월 간토학살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작년 8월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간토학살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관동대학살 진상 규명에 한 조각의 의지나마 가진다면 서광이 비치겠지만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현재로선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2023년 9월 3일, 관동대학살 6661명 희생자들을 위한 첫 추모제이자 100년 만의 추모제를 주관한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사안을 가지고 갈 계획을 세웠다. 관동대학살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의 유권해석을 기대해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 길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일뿐더러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인들이 동참해야 하는 일이다.

최소 100만 명이 서명으로 함께 해야 국제사법재판소가 움직여 줄 이 일은, 단지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거나 보복하고자 하는 동기에서가 아니다.

관동대학살이 지진 난리 중에 우연히 일어난 불가항력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철저히 조작되고 공교히 저질러진 조선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제노사이드였음을 판명받아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마중물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인류 평화’라는 말이 나와는 무관한 거창한 구호처럼 들리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 각자가 마중물을 만드는 데 물 한 방울씩만 기여하면 되는 매우 구체적이고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마중물을 조심스레 바가지에 담아 국제사법재판소를 향해 펌프질을 하러 가는 것은 씨알재단이 할 일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인류 평화로의 길도 내 할 일만 하면 누구나 도달하게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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