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뷰스] 90 노인의 육체 자랑
[신아연의 뷰스] 90 노인의 육체 자랑
  • 신아연 (thepr@the-pr.co.kr)
  • 승인 2024.04.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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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나이 들어갈 때, 외모에 신경 쓰는 것만큼 내면도 가꿔줘야 한다.
몸과 마음이 나이 들어갈 때, 외모에 신경 쓰는 것만큼 내면도 가꿔줘야 한다.

 

더피알=신아연 | “내 나이가 올해 90살이요, 무려 90살이라고요!”

얼마 전 지하철 안에서 내 옆의 옆자리 남자 노인이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본인 일행과의 대화인 줄 알고 소리를 듣고도 모두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자신의 나이가 90세라고. 그제야 함께 탔던 사람들이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했고, 뭐라고 대꾸해야할지 난감해하던 차에 대표로 내가, 앉은 자리에서 목을 빼고 “정말 젊어 보이시네요!”라며 짐짓 감탄했다.

그러나 그분은 나 하나의 반응 정도로는 성이 안 찼는지 다시금 지하철 안 사람들에게 나이를 확인시키며 치아조차 틀니나 임플란트가 아닌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입을 벌려 자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분은 90 연세에 비해 족히 20년은 젊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90 노인이 70대로 보이는 것이 그토록 큰 소리로 떠벌릴 자랑거리란 말인가.’ 나는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렸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있었더라면 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불현듯 노인이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육체적으로 남보다 좀 덜 늙어 보인다는 것에 어떻게 저렇게까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말이다. 노인의 허한 마음이 딱하고 서글펐다.

현대인은 너나없이 외모를 가꾸고 유지하려는 생각이 거의 강박적이다. 남녀 구분 없이 ‘동안(童顔)’이란 소리를 듣길 원한다.

이 같은 외모에 대한 집착은 90 노인조차 비껴가지 못했던 것이니, 외모에 신경을 쓴다고 해서 모두 마음이 허하고 내면이 빈약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내세울 것이 외모밖에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90 고개를 넘기면서는 나를 위해 남기고 싶은 것은 다 없어진 것 같다. 오직 남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뿐이다. 아직 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 최고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올해 104세가 된 김형석 교수가 97세에 쓴 에세이 ‘100년을 살아보니’에서 한 말이다. 90에 이르러 얻게 된 노교수의 지혜에 비춘다면 여전히 육체를 자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민망하고 천박하기조차 한 일인가.

건강에 초점이 아닌, 육신 자체에 집착한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이 듦의 두려움은 육체의 노쇠보다 마음과 정신의 강퍅함과 고착된 미성숙일 터. 지하철 노인의 육체 자랑이 볼썽사납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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