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앞 뒤 사정 몰라~ 돈 낸 만큼 보여줘!"
PPL, “앞 뒤 사정 몰라~ 돈 낸 만큼 보여줘!"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2.07.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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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은 제품 불쑥불쑥…광고 카피가 드라마 대사로

▲ ppl이 허용되며 돈만 있으면 광고주가 프로그램 제작에도 충분히 관여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

<지난기사(막 들이대는 PPL, 시청자는 피곤해)에 이어 계속>

PPL 광고주·제작사 법적 규제 범위 교묘히 피해

[The PR=서영길 기자] 유철종 중앙전파관리소 전파보호과 팀장은 “정해진 PPL 규제법에 따라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은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도 “체감적으로는 과다 노출 등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프로그램도 정작 모니터링 해보면 규제 범위를 교묘히 지켜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2010년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에 따르면 PPL은 오락,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에 한해 허용되며 방송 프로그램 시간의 5%, 전체 화면의 4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광고주와 제작사가 이를 교묘히 지키며 법망을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 sbs '고쇼'는 화장품을 활용하는 코너가 전혀 없음에도, 게스트들 뒤에 생뚱맞게 화장품이 진열돼 있다.
얼마 전 ‘80분짜리 화장품 광고쇼’라는 비아냥을 들은 SBS ‘고쇼’가 대표적인 경우. 배우 고현정이 메인 MC로 진행을 맡아 하는 토크쇼인 고쇼에서는 화장품을 활용하는 코너가 전혀 없음에도, 80분 내내 고현정이 광고모델로 나서고 있는 화장품이 당당히 화면을 장식했다.

게스트들이 앉아 있던 자리 뒤에는 이 화장품 브랜드 로고와 제품들이 방송 내내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혔고, 특히 두 게스트가 ‘투샷’으로 잡힐 때는 로고와 화장품이 더 잘 보이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흡사 홈쇼핑 광고로 착각할 정도. 하지만 이는 합법적 PPL로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또 지난 5월 종영한 MBC ‘더 킹 투하츠’도 ‘막무가내식 PPL’의 대표사례로 빼놓을 수 없다. PPL 광고주가 ‘던킨 도너츠’인 이 드라마는 방송 초반부터 남자 주인공 이승기가 도너츠를 좋아한다는 설정 하에 수시로 도너츠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군사훈련을 위해 북한으로 건너갈 때도 도너츠를 챙겨가고, 상견례 자리에까지 도너츠를 등장시켰다. 또 해당 업체의 주력상품인 하트모양 도너츠까지 클로즈업 해주는 과잉 친절도 베푼다. 이걸로 부족했는지 이승기 대사를 통해 아예 ‘도너츠는 커피와 함께’라는 내용의 CF 카피를 부각시킨다. 이로 인해 더 킹 투하츠는 ‘20부작 던킨 도너츠 CF’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20부 내내 과도한 PPL로 지적을 받았던 이 드라마가 방송심의위로부터 받은 제재는 ‘주의’ 조치다. 그나마 종영된 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고, 주의 조치는 방송심의위에서 내리는 제재 조치 중 두 번째로 약한 솜방망이 처벌에 속한다.

이에 대해 심인섭 방송심의위 방송심의기획팀 주임은 “시청자들의 민원과 모니터링 요원들의 확인에 따라 즉각적으로 심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사안, 제재 조치 수위, 방송제작자 의견 진술 등에 따라 심의가 적시에 이뤄지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PPL 허용범위가 넓어 이런 ‘꼼수’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영수 방통위 방송진흥기획과 사무관은 “방송광고시장의 활성화와 투명화를 위해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다. (광고주와 제작사는)이를 악용하면 안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현재 대다수 방송사들이 이 기준을 지키고 있다. 충분히 수용할 만한 규제 범위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고주 ‘돈 낸 만큼 나와야’…제작사 ‘받은 만큼 보여줘야’

이처럼 몰입을 방해한다는 시청자들의 항의에도 노골적인 PPL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출 단계와 횟수 등을 사전에 정하는 PPL 계약 방식 때문이다.

▲ mbc '더 킹 투하츠'는 방송 초반부터 도너츠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수시로 보여주며 ppl에 충실했다.
예컨대 드라마가 제작되기 전에 광고주에게 제안서가 가고, 광고주는 ‘총 몇 회 브랜드를 노출한다’는 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여기에 제작사도 과도하게 늘어나는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어 PPL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PPL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코바코)에 따르면 PPL 비용은 드라마 급수와 노출 수위, 노출 횟수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미니시리즈가 가장 비싸며, 주말극, 일일극 순이다. 노출 수위는 총 3단계로 구분되는데, 배경 속 브랜드만 노출되면 1단계, 출연자의 직업이나 의상으로 등장하면 2단계, 극 전개상 에피소드로 들어가 있다면 광고료가 가장 비싼 3단계로 나뉜다.

이는 돈만 있으면 광고주가 프로그램 제작에도 충분히 관여할 수 있는 구조다. 돈을 낸 만큼 요구하고 돈을 받은 만큼 만들어 보여줘야 하니 앞뒤 사정 다 무시하고 뜬금없는 PPL로 이어지기 일쑤다. ‘60분짜리 드라마 광고’ ‘80분짜리 예능 광고’란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연기자들이 극 전개상 불필요한 보안업체 경비설정 사용방법을 자세히 얘기하는 장면이나 한 오디션 프로에서 방송 중 마시는 것이 금기시 되는 콜라를 심사위원석에 버젓이 올려놓은 장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광고주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경쟁적으로 드라마 대사나 흐름에 자사의 제품이 들어가길 원하고, 제작사는 ‘마케팅PD’라는 직책을 따로 둘 만큼 PPL 유치에 공을 들이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레 광고 단가는 높아졌다.

실제로 코바코에서 밝힌 PPL 판매실적(SBS·KBS·MBC 기준)을 보면 2010년에 47억원에 불과하던 PPL 판매가 2011년 211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고, 올 상반기까지 71억원(SBS 누락 실적)이 팔린 상태다. 특히 MBC의 경우 2010년 26억원이던 판매실적이 2011년 123억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코바코에 따르면 현재 PPL 단가는 브랜드 로고와 상품 노출에 따라 100만원에서부터 5000만원까지 금액이 책정돼 있다. 하지만 주 시청시간대의 드라마 1회 노출당 1단계가 1000만원, 2단계 2000만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드라마 한 편의 PPL로 쓰는 비용이 1억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 2010~2011년 매체 별(sbs,kbs, mbc) ppl 판매실적.

이같은 현상은 지상파 방송은 물론 케이블 방송의 몇몇 인기 프로그램에서도 발생한다. 지난 4월 한 케이블 채널이 자사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고 지난해 600~1500만원이던 PPL 단가를 최고 7600만원으로 5배 가량 인상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노골적 PPL’ 피해…고스란히 시청자에게

합법화가 이뤄진 지 2년여 만에 PPL 시장은 급성장했다. 부족한 제작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제작사들은 프로그램 만들기에 열중할 수 있고, 광고주들 입장에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PPL 만큼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도 없다. 실제로 코바코가 지난 2011년 PPL 광고효과조사를 벌인 결과 시청자 3명 중 1명이 광고된 상표를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PPL 대행업체 한 관계자는 “자사의 인지도 제고 혹은 신규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PPL 마케팅이 가장 좋다. 이 때문에 인기 드라마에 여러 광고주가 몰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드라마 장면마다 경쟁적으로 PPL이 삽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골적 PPL 문제에 대해선 “이는 광고 전략 부재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모든 PPL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다”고 잘라 말하며 “PPL은 극 상황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느냐’ 하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덧붙여 “제작비가 부족한 제작사가 마케팅PD를 통해 광고주에게 이것, 저것 주문하며 제작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며 제작사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이렇듯 광고주들 간 과다한 노출 경쟁과 제작사의 제작비용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불러온 노골적 PPL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요즘 PPL은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대사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PPL은 말 그대로 간접광고여야 하는데 이는 명백히 직접광고”라고 지적하며, “이런 행태의 PPL은 시청자들의 광고에 대한 취사선택을 박탈하는 행위로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윤 처장은 지난 2010년 개정된 시행령을 문제 삼으며 “광고주와 제작사가 법 제재를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 애매하게 개정된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PPL에 대한 세밀한 법 조항을 주문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과도한 PPL은 결국 시청자들의 자정 능력으로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상훈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PPL이 너무 지나치면 시청자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고,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PPL로 노출된 브랜드에 역효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하며, “시청자들의 자정 능력과 광고주들의 전략적 PPL이 밸런스가 맞으면 궁극적으로 몇몇 무분별한 PPL은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2년여 간 폭발적인 ‘양적성장’을 해온 PPL.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광고주, 제작사, 시청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질적성장’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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