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가 앞당긴 ‘소셜뉴스시대’ 올드 미디어의 살 길은?
트위터가 앞당긴 ‘소셜뉴스시대’ 올드 미디어의 살 길은?
  •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 승인 2010.08.04 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트워크 저널리즘 급부상

최근 한나라당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1년 전만 해도 이 정도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지난 7월 20일 20면에 배치했는데 이 정도면 딱히 이 뉴스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침 출근길에 트위터에선 벌써 난리가 났다. 점심시간 이전에 국민들 대부분이 알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트위터에선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 한나라당이 신속하게 강 의원을 출당 조치했던 것도 엄청난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날 같으면 다음날 아침 신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겠지만 언론사들도 하루 종일 기사를 쏟아냈고 계속 새로운 이슈가 터져 나왔다. 여론의 폭발적인 반응이 언론을 추동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사건이 돼 버렸다.

뉴스를 만드는 건 신문과 방송이지만 그 뉴스를 선택하는 건 이제 뉴스 소비자들의 몫이다. 언론이 띄우려고 하는 뉴스가 빛을 못 보고 사라지기도 하고 언론이 숨기려고 하는 뉴스가 엄청난 화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름 없는 블로거의 포스트가 주류 언론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폰카로 찍어 올린 사진 한 장이 특종을 만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소셜 뉴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트윗 한줄로 세상이 ‘흔들’

지난해 홍보 대행사 에델만이 발표한 신뢰도 지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정보 소스를 묻는 질문에 62%가‘친구 또는 동료들과의 대화’라고답변했다. 중복 응답으로 TV 뉴스는 60%, 신문 기사는 58%로 나타났다. 전문가 설문에서는 70%가 기업과 관련한 어떤 정보를 충분히 믿으려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3~5번 이상 들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10번 이상 들어야 믿을 수 있다는 답변도 13%나 됐다.


이런 통계는 트위터가 어떻게 뉴스의 유통 채널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트위터에 떠도는 뉴스는 내 팔로워들, 내 믿을만한 친구들이 추천해 주는 뉴스다. 나는 그들이 나와 비슷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추천한 뉴스 링크가 내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뉴스를 선택하고 추천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의사표현이고 주장이고 넓게 보면 거대한 의식의 공유가 된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훑고 있으면 같은 뉴스가 반복해 떠오르는 걸 발견할 수 있다. 1천명 이상을 팔로잉하면 잠깐 사이에 수천개의 트윗이 올라오는데 그걸 모두 읽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이슈는 여러 차례 리트윗되기 때문에 잠깐씩만 열어봐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주변에는 트위터를 하고 난 뒤 뉴스를 아예 안 보게 됐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 대부분은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뉴스를 더 열심히 읽는다.


트위터는 뉴스의 유통 채널이기도 하지만 직접 뉴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방송인 김미화씨는 최근 KBS에 특정 연예인들의 출연을 금지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폭탄 선언을 트위터에서 했다. 기자들은 김씨의 트위터를 받아 적는 수밖에 없었다. 옛날 같으면 기자회견이라도 열었겠지만 이제는 트위터에 한 줄 걸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뒤흔들 수 있게 됐다. 김씨의 폭로 이후 쏟아진 논쟁은 대부분 트위터에서 진행됐다.


지난 6·2 지방선거 때도 선거 막바지에 트위터에서 20대의 투표 독려 캠페인이 벌어졌지만 상당수 기자들은 이를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선거가 끝난 뒤에야 트위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고 뒤늦게 정치부 기자들이 우르르 트위터로 몰려가기도 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물론이고 소설가 이외수씨나 김주하 MBC 앵커, 박용만 두산 회장,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등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뉴스가 된다.


취재 현장에서 트위터로 올린 속보가 뉴스를 앞지르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정보 보고를 받은 다른 부서 기자가 이를 트위터에 올리는 바람에 엠바고가 깨져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기자들을 피해 도피성 출국을 했을 때 한 여행객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김 이사장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린 일도 있었다. 공항 출국장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모두 물을 먹었다.


지난달 인천 서해대교에서 관광버스가 가드레일을 뚫고 추락하는 사고가 났을 때 연합뉴스에 한 줄짜리 속보가 올라왔는데 그때 이미 트위터에는 현장 사진이 나돌았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에 화재가 났을 때 트위터 속보는 연합뉴스보다 1시간 이상 빨랐다.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탤런트 장진영씨가 사망했다는 소식도 트위터에 먼저 떴다. 나로호 2차 발사가 실패했다는 소식도 역시 트위터가 더 빨랐다.

낡은 출입처 시스템에 묶여 변화 둔감

트위터는 주류언론의 기자들에게 너무 가까이 할 수도 그렇다고 멀리 할 수도 없는 새로운 경쟁상대가 되고 있다. 주류언론의 기자들이 트위터에 의존하면 할수록 주류매체의 영향력은 줄어들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전략기획국 최진순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결국 웹의 등장 이후 뉴스를 둘러싼 기자들과 이용자들의 광범위한 소통은 언론사의 논조나 의사결정 구조까지 위협하고 있다” 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최 기자는 “저널리즘의 영역이 견고한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최소한 이용자들의 의견을 첨삭, 반영하는 개방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면서“소셜 네트워크를 껴안기 시작한 뉴스룸의 젊은 기자들은 뉴스룸의 고압적이고 위계적이며 폐쇄적인 조치들에 불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트워크 저널리즘 시대에는 이용자들이 호명하는 기자가 중요하지 뉴스룸에 복종하는 기자는 가치가 없다” 고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성규 매일경제 뉴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이제 콘텐츠 다양성을 높이지 않으면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위터에서 사용자들이 어떤 뉴스에 반응하는지 살펴보라는 이야기다. 이 연구원은 “뉴스도 이제 소비자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면서도 “낡은 출입처 시스템에 묶여 있는 올드 미디어는 변화의 여지가 많지 않고 의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완성품이 아니면 유통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될 것” 이라면서 “1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2보와 3보, 종합기사가 그때 그때 쏟아지게 된다” 고 전망했다. 객관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형식적인 균형을 맞춘 완결된 형태의 뉴스도 여전히 가치가 있지만 오히려 주관을 선명하게 드러내되 소통 과정에서 완성돼 가는 형태의 뉴스가 주목받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NHN 김상헌 대표는 지난 4월 미디어경영학회 학술대회에서“소셜 네트워크와 인터넷 발달이 기존 미디어에 더 좋은 기회가 될 것” 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김 대표는“소셜 네트워크는 미디어 이용자들의 관심을 빼앗아 오기보다는, 사람들이 정수기 옆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이른바 ‘워터쿨러 이펙트(정수기 효과)’를 통해 미디어 소비를 촉진시키고 이슈를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언론사들은 사실 아직까지 이런 변화에 둔감하다. 무엇보다도 정부 부처와 기업 중심의 출입처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해외에서도 디그나 슬래시닷, 레딧 같은 집단 지성을 활용한 뉴스 추천 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보면 과거처럼 언론이 여론을 주도하는 시대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집단지성이 뉴스 형성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결과적으로 여론이 언론을 추동하는 형태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경제팀장
black@mediatoday.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