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을 보면 위기관리를 안다
타이밍을 보면 위기관리를 안다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2.09.13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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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개인이나 조직이 빨리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한 경쟁력이다. 단순하게 속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 시 거대한 조직이 빨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일 때에는 그 안으로부터 여러 인사이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평소에도 일정규모 이상의 조직은 빨리 움직이기 힘들다. 상황파악과 의사결정을 위해 상당히 지루한 시간들을 조직은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목격하려면 긴 세월이 흐르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하나의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길게는 일 년에서 적게는 수 주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광고, 프로모션, 영업, 마케팅, HR 등의 활동에 있어서 물리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기업 간 대부분 비슷해 보인다. 이를 건너뛰거나 생략하고서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없다고도 생각들을 한다.

위기대응이 빠른 기업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위기 시 빨리 움직이는 기업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단순히 조직전체가 본능에 의한 반사 신경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한,두 명의 의사결정자에 의해 군대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조직 구성원들이 타고난 위기관리 전문가들이기 때문일까?

위기가 발생했을 때 빨리 움직이는 기업은 대부분 미리 그 위기를 예상하고 준비했던 기업이다. 상당히 구조화 된 모니터링 시스템과 센서링 역량을 보유한 기업이다. 전사적으로 해당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감지해 공유하고, 이에 대한 발생 시나리오를 개발해 충분히 사전 공유했던 기업이다. 어느 누군가가 해당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조직의 장을 맡고, 해당 위기에 대한 대응 주관과 유관 부서들을 통합해 리드하면서 발생 시기를 ‘기다려왔던’ 기업인 것이다.

즉, 빠른 기업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많은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매번 반복적으로 조언한다. “준비하라, 준비하라, 준비하라.” 발생하는 위기를 100% 사전에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렇기에 위기 발생을 전제로 여러 상황들을 예상해 준비하는 업무를 하는 게 위기관리다. 그러나 실제 기업들의 위기관리 현장은 어떨까?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적절한 대응준비가 선행되고 있을까?

불행히도 많은 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대기업이면 대기업일수록 그런 부분에 있어 사전 협업이나 통합된 시나리오를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보는 것처럼 당연히 준비해 타이밍을 맞출 것이라는 예상을 어이없이 비켜나간다.

반복되는 위기, 위기관리 대응도 10년 전 방식 그대로

물론 기업 내부에서 실제 위기관리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여러 현실적 사정들을 이야기한다. “홍보팀만 하는 게 위기관리가 아니라서요” “조직은 큰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어느 한 부서가 튈 수는 없어요” “오너 분이 관련된 위기라서 실무팀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거든요” “우리라고 위기관리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들의 사정을 듣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현실을 무시한 채 ‘이래야 한다’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실질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이해한다.

하지만, 좀 더 솔직히 기업 내부를 되돌아보자. 10년 전에 같은 위기를 겪었지 않나? 몇 년 전에도 이런 이슈는 있었지 않나? 당시에도 우리 부서가 이렇게 움직이면 안 된다, 사후 개선을 약속하지 않았었나? 당시 로펌과 홍보팀이 협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그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내부 워크샵에서 이야기 나누지 않았었나? 당시 위기관리를 지휘하시던 부사장이 퇴임을 하신 직후 사내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조속한 강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지 않나?

물론, 그때마다 위기관리가 잘 안 되는 현실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하거나 동일한 위기에 있어 매번 비슷한 현실적 이유를 대는 것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윗분들이 보실 때에도 매번 비슷한 현실적 이유를 제기하는 실무자들을 ‘우리는 위기를 관리 할 수 없어’라고 보는 사람들로 보일 수밖에 없다. 위기와 위기관리를 반복하면서 개선되고, 향상 강화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더 나은 대응과 관리방식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준비된 기업만이 타이밍을 잡는다

시스템상 문제가 있는 기업들은 매번 위기가 발생하고 나면 그 때부터 허둥지둥 위기대응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위기 발생 직후부터 상황이 변하고, 주변의 의견들이 변하고, 전체적인 여론이 흘러간다. 그에 대한 혼란 속에서 해당 기업은 회의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보고서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물리적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이윽고 내부적으로 모든 타이밍을 이미 놓쳐버렸다는 공감대가 슬슬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미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 시기가 지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거나 연장되면 우리에게도 더 이상 좋을 게 없으니 그냥 이대로 상황을 종료하도록 합시다” 당연히 때를 놓치고 불안해하던 내부인력들은 그 제안에 박수를 친다. 위기관리가 끝나는 순간이다. 위기관리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고, 내부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의 혼란과 난상토론만 있었을 뿐이다. 혹시 이런 경험에 익숙하지는 않은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타이밍에 기다렸다는 듯이 위기관리를 하는 기업들은 분명히 준비된 기업이다. 위기는 어떤 기업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위기관리는 모든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주변의 조직들과 기업들에게는 ‘위기는 존재하지만 위기관리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 더 이상의 현실적 핑계나 실패의 반복은 그만둬야 할 때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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