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마라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마라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2.10.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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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The PR=정용민] 기업이나 조직들 중 인사(人事)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려 하는 곳들이 있다. 책임자나 실무자들을 정리해버리면 위기가 관리된다고 믿는 듯 하다. 일부 경영자 입장에서는 가장 쉽고 간편한 위기관리 방식일 수도 있겠다. “당신은 홍보임원씩이나 돼서 이런 위기 하나 관리를 못합니까? 책임지고 물러나세요!” 하는 식이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말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나 조직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이 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위기를 미연에 방지했다면 가장 좋겠지만, 부득이 위기가 발생했다면 제일 우선순위는 해당 위기를 관리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물론 실무책임자들이 사전에 정교하게 위기를 모니터링하고 대응방안들을 잘 짜놓고, 지속적으로 훈련해 위기의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런 준비와 대비에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실무책임자들을 인사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아니다.

신상관리만 있는 위기관리

모 기업에서 위기가 발생해 자문에 들어가 임원들을 만나보니 상당히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때문에 요즘 임원들간에 신경전이 날카롭습니다.” 앞다투어 위기를 관리해야 할 일선 임원들이 인사조치를 두려워하면서 의사결정이 진척되지 않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기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없다.

또 어떤 기업에서는 이런 반응도 나온다. “막상 위기가 발생하니, 누가 주도권을 쥐고 위기관리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고 상당히 민감합니다. 오너께서 부재하신 상태에서 함부로 리더십을 가져가는 것 자체가 반란이죠.”

평소 기업 오너가 의사결정의 리더십을 쥐고 있던 기업들은 막상 오너가 여러 이유로 유고 상황을 맞게 되면 누가 그 주도권을 이어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결정이 나지를 않는다. 오너가 “OOO부사장이 위기관리 위원회를 이끌어 주세요”하는 하명이 없는 이상 임원들간 지루한 논의만 계속될 뿐 위기관리를 위한 의사결정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어차피 크게 벌어진 일, 일부 유관 임원들은 벌써 다른 회사를 알아본다는 이야기도 돌아요. 걱정이 많습니다.” 사후 책임을 추궁 당할게 뻔한 임원들의 마음이 벌써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위기를 관리해야 할 임원들의 마음이 다른 회사로 향해 있으니 위기관리가 성공할 리가 없다.

회사의 핵심가치가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

위기에는 항상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책임이 따라야 하는 위기에 대한 사내 차원의 재정의도 필요하다. 회사의 핵심가치가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무임원들이 회사의 핵심가치에 기반한 의사결정들을 차곡차곡 잘 해 왔다면, 위기의 대부분은 미연에 방지되거나, 최소화 될 수 있는 법이다.

심각한 위기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회사의 핵심가치들을 무시하고 내린 의사결정 때문에 발생한 경우들이 많다. 회사의 범법행위, 제품 품질이나 안전의 문제, 직원들의 불법적인 행위들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에 대한 갈등 문제들도 그렇고 환경이나 커뮤니티 관련 위기들도 핵심가치들을 도외시 한 의사결정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기발생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회사의 핵심가치에 대한 관리 및 강화, 공유의 책임은 분명하게 CEO 및 오너에게 있다. 이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CEO와 오너가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문제는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내적으로는 이에 대한 책임이 CEO와 오너에게 있다는 것을 모두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CEO와 오너의 책임을 누군가는 대신 짊어져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한 그 와중에 벌써부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누가 인사조치를 당해야 마땅한지 등에 대해 언급이 나오게 되면 위기관리는 이미 물 건너 가게 된다.

모든 직원들은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게 되는 불안한 일은 하지 않기 마련이다. ‘아무리 다급한 위기라 해도 굳이 나서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쩝니까, 조용히 몸을 사리고 다른 임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게 보신책이죠’ 라는 생각들이 팽배하게 된다.

위기 시 채찍보다는 당근을

절대적으로 CEO나 오너는 위기 시 책임론을 부각시키거나, 인사조치를 의미하거나 실행하는 등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대신 이미 발생한 위기를 협력하여 잘 관리한 실무임원들을 포상하는 것이 더 낫다. 그 과정에서 그들을 치하하고, 지원하고, 격려해 주는 편이 위기관리 성공을 위해 더 나은 전략이다.

위기 시 인사에 손을 대는 기업은 평소 위기관리 실무에 복지부동(伏地不動)하고, 위기 시에는 정치적으로 복지부동(伏地不動)하는 임원들만 남게 된다. 위기는 반복되고, 위기관리는 실종된다. 기업들이 크나큰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인 위기관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이 인사에 대한 문제에 기인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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