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나팔수’ 자처하는 한국 언론
정부 ‘나팔수’ 자처하는 한국 언론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2.12.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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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북한 로켓 발사 둘러싼 정부와 언론의 '네 탓' 공방
국가 안보 문제에 팩트 확인 언론사 부재 아쉬워

[The PR=서영길 기자] 북한이 오늘(12일) 오전 평안북도 동창리 로켓 발사장에서 급작스럽게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 “로켓이 수리에 들어간 관계로 발사가 지연될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접했던 시민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함은 ‘발사 지연’ 사실을 철썩 같이 믿고 오늘자 조간을 찍어낸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본의 아니게 ‘줄오보’의 쓰나미를 맞은 것이다. 얄궂게도 북한이 오늘자 신문이 전국으로 배포된 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로켓을 쏘아 올렸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하나같이 ‘정부 고위 관계자’ ‘정부 소식통’이라는 익명의 관계자 말을 빌어 북한 장거리 로켓의 해체와 발사 지연 소식을 가감 없이 전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발사 취소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북한은 비웃기라도 하듯 은하3호를 쏘아올렸고,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접한 정부와 언론은 국가 안보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책임전가식의 진실게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는 로켓 발사 직후 국방부가 마련한 브리핑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언론들은 자신들의 오보를 전적으로 정부에 미루며 “어제 해체 분리한 로켓을 어떻게 발사할 수 있나. 우리 정부의 대북 정보력과 국가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식의 의견을 쏟아냈고, 정부는 “북한 로켓의 해체와 발사 지연에 대해 언론에 확인해준 바 없다”며 언론에 책임을 떠넘겼다.

정부 측에선 로켓의 해체·지연에 대해 확인해준 사람이 없는 상황이고, 국내 대부분의 언론은 이 알 수 없는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나온 잘못된 정보로 대량 오보만 쏟아낸 꼴이 됐다.

언론이 모든 사실(팩트)을 100% 확인할 수는 없다. 특히 정부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나온 정보인지라 다른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은 다르다. 국민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미사일인지 위성인지 알 수 없는 로켓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 알 수 없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 한 마디가 정부도, 언론도 그리고 국민들까지 모두 혼란에 빠뜨렸다. 이 민감한 사안에 어느 한 언론이라도 제대로 팩트 확인을 했더라면 상황은 분명 달라질 수 있었다. 그 ‘한 언론’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우리에겐 언론이 정부의 ‘나팔수’ 역할 밖에 할 수 없던 아픈 역사가 있다. 그래도 그땐 ‘불가항력적 무력으로 인한 비자발적 참여’라고 언론인들 스스로 자위 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이런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번 오보 사태를 보며 우리 언론이 정부의 나팔수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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