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보러 극장 찾은 아이, 울며 뛰쳐나간 사연은…
‘랄프’ 보러 극장 찾은 아이, 울며 뛰쳐나간 사연은…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1.09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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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관람가 보러 갔다가 수위 높은 예고편에 ‘화들짝’
…극장업계의 과도한 홍보 경쟁, 관객의 볼 권리 외면당해

#. 지난 주말 서울 성북구에 사는 주부 김모씨는 아이와 애니메이션 영화 ‘주먹왕 랄프’를 보러 시내 C극장을 찾았다. 김씨와 아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격렬한 총격전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2월에 개봉을 앞둔 ‘다이하드-굿 데이 투 다이’의 한 장면. ‘전체관람가’가 선명한 티켓과 실감나는 폭발신이 압도하는 스크린을 번갈아보며 눈살을 찌푸린 것도 잠시, 영상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 한 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가면서 상황은 머쓱하게 종료됐다.

[더피알=이슬기 기자] 기준 없는 극장 예고편 관행이 관객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극장에 거는 작품이나 광고는 연령등급이 있는 데 반해, 예고편은 별다른 심의기준이 없어 무방비로 노출되는 데 따른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전체관람가인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아도 예고편은 전체관람가가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분위기를 풍겨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들도 심심찮다. 통상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예고편은 본편이 완성되기에 앞서 대중에 공개돼 예고편의 등급은 본편의 등급과 별개로 정해진다. 이런 이유로 ‘주먹왕 랄프’를 보러 간 어린이들까지 원치 않는 ‘다이하드’ 예고편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관객들의 ‘불쾌함’은 극장이 예고편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문제가 된 C 극장의 경우 ‘주먹왕 랄프’에 보통 ‘파이스토리’(전체관람가), ‘몬스터호텔’(전체관람가), ‘명탐정 코난’(전체관람가) 등의 유사한 성격의 예고편을 주로 붙인다.

하지만 이는 하루 종일 한 관에서 같은 영화만 상영하는 ‘온관’의 경우고 교차상영이란 변수가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영되는 영화들이 각기 등급이 다른 만큼, 예고편에 대해서도 한 등급으로 일관하기가 힘들다는 것.

이에 대해 해당 극장 홍보팀 관계자는 “한 상영관에서 회차에 따라 영화가 다른 경우 예고편을 각각 프로그래밍하기에는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부분이 많다”면서 “편의상 많이 상영하는 영화를 중심으로 예고편을 배치한다”고 말했다. 또 주먹왕 랄프에 다이하드 예고편을 붙인 것과 관련해선 “당시 교차상영관에서 주로 튼 영화가 ‘라이브오브파이’(전체관람가)였는데, 이에 맞춰 ‘마이리틀히어로’(전체관람가), ‘몬스터호텔’(전체관람가), ‘박수건달’(15세관람가), ‘다이하드-굿 데이 투 다이’(등급미정) 등의 예고편을 내보내게 됐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도 “관련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5:2, 엄격한 본편 등급에 비해 옹색한 예고편 등급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현행법상 영화 본편의 등급은 전체관람가, 12세관람가, 15세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그리고 제한상영가로 나뉜다. 이에 비해 예고편 등급은 전체관람가와 청소년관람불가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어 관객에 따른 선별적 노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관련 법이 시장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에, 즉 규정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일인 셈이다. 

▲ 일반적으로 극장은 상영영화에 맞춰 예고편을 편성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관계자는 “예고편의 등급은 본편의 등급과는 관계없이 예고편의 영상만으로 결정된다”며 “그나마 기존에는 모두 전체관람가로 일괄 적용하던 등급기준을 지난해 8월 보완해서 두 가지 등급으로 나눈 것이다. 전체관람가 등급은 선정성, 폭력성 등의 요소가 없거나 매우 약하게 표현돼 있는 경우로 모든 연령층이 관람하기에 부적절한 요소가 없도록 분류한다”고 심사기준을 밝혔다.

또 “지난해 관련 법률 개정 시 예고편 등급도 본편과 마찬가지로 4개 등급으로 분류하도록 입법예고 됐었으나, 입법과정에서 예고편을 4개 등급으로 할 경우의 본편 등급과의 시차로 인한 혼선과 영화관 내에서 관리, 영화 홍보방법 제한 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제도의 효율성을 고려해 축소 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련 법에 따라 전체관람가 등급의 예고편은 전체 연령층에서 유해한 내용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기에 조금 더 세심하고 신중하게 등급을 분류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선 극장업계의 과도한 홍보 욕심이 무차별적 예고편 관행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예고편은 전체 촬영이 거의 끝난 시점에 심의를 받기 때문에 제작사도 본편의 등급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한다”면서도 “하지만, 본편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예상된다고 해서, 예고편까지 청소년관람불가로 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전체관람가 등급으로 예고편의 수위를 조절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알린다”고 귀띔했다.

예고편, 집중도 높은 효과적 홍보수단으로 각광…비용은 ‘0원’

영화 예고편의 시스템적인 부분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평이다. 집중도가 높은 상영 전 예고편은 매우 효과적인 홍보수단임에도, 4대 멀티플렉스 중 단 한곳을 제외하고는 비용이 없다. 관객이 예고편을 보고 극장을 다시 찾는다면, 이는 결국 극장의 매출로 이어지고 이는 자기 홍보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비용이 없는 탓에 대부분의 예고편은 개봉일이나, 기대정도 등을 고려해 극장에서 임의로 선정하게 된다.

이 홍보사 관계자는 “제작사 입장에서도 전체관람가 등급의 예고편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배급사가 각 상영관의 상황을 일일이 계산할 수는 없는 때문”이라며 “겨울방학인 요즘 같은 시즌엔 애니메이션 상영관이 부쩍 늘어났기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예고편을 내놓으면, 그만큼 사전 홍보의 기회도 줄어들게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극장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극장은 관객이 비용을 지불하고 찾는 곳이기 때문에, 광고 규정이 까다롭다. 특히 청소년에게 금지된 주류광고 등은 엄격하게 다룬다”면서 “사전 홍보를 목적으로 내보내는 영화 예고편을 무차별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극장업계의 자성이 이뤄지거나 관련 규정이 좀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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