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생활’ 접고 제2의 인생 준비합니다~”
“‘이중생활’ 접고 제2의 인생 준비합니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3.02.19 1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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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로 나눔 실천한 유형곤 삼성테크윈 선행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

사회적 책임, 자원봉사란 말도 낯선 시절이었다. 그냥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함께 해보자고 시작했던 일이 지금에 와선 재능기부가 되고, 어느새 번듯한 학교가 되어 결실로 맺어졌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선생님으로 살았던 ‘이중생활’. 유형곤 삼성테크윈 선행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부장.52)의 삶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경기도 부천시 공장지대.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 곳엔 ‘학교’가 들어서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엔 공부하는 야간학교 ‘부천실업고등학교’다. 100명 남짓한 학생에 13명의 선생님이 동고동락하는 공동체. 그곳은 유 부장의 열정이 일부분 녹아든 곳이기도 하다.

“1989년 개교 때부터 뜻을 같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후원만 하다가 몇 년 지나고서 직접 야학선생으로 뛰어들었죠. 저야 직장에 한 발 걸치면서 학교에 몸담은 케이스지만 정말 열정적으로 학교 하나만 바라본 훌륭한 분들이 많으세요. 그 인연으로 지금 있는 교장 선생님 이하 대부분의 교사들과도 20년 이상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요.”

부천실업고는 유 부장이 한양대 기계공학과 재학 시절 동아리 차원에서 선후배, 동기들과 함께 했던 봉사활동이 모태가 돼 설립된 학교다. 지금이야 건물도 있고 정식으로 학력도 인증 받는 학교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초창기엔 여러 가지로 참 열악했다. 임대건물에 책상 놓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교사들도 대부분 자원봉사자였다.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없었다면 지속되기 힘든 일이었다.

“제 나이 때만 해도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어요. 시골에서 올라와서 주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공부하면서 자기 꿈을 향해 나가는…. 개인적으로 공업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현장 실습하면서도 그런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요. 근로 청소년들의 어려운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미리 경험해 봤기에 같은 처지의 후배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잘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라도 할 수 있으니 하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죠.”

아이들과 함께 한 8년의 주경야독

▲ 부천실업고등학교 동료선생님들, 제자들과의 생생한 추억. (사진제공=부천실업고)
유 부장은 학교가 세워지고 난 후 5년 뒤인 94년부터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다. 삼성테크윈 창원 공장에 있다가 서울로 옮기게 된 그 즈음부터다. 전공을 살린 공업 입문, 기계 재료, 기계 동작법 등이 그의 몫이었다. 처음 4년간은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맡다가 이후엔 토요일 하루 수업만 나갔다. 물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주중 수업 진행이 더 이상은 어려웠기 때문. 그렇게 해서 만 8년을 부천실업고 학생들과 함께 했다.

“일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초창기 4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하루 강의 준비하고, 하루 수업 진행하고 하다 보면 일주일이 눈코 뜰 새 없이 그냥 휙 지나가버려요. 당시 회사가 태평로에서 강남으로 이전했는데 퇴근하고 수업하러 부천 갔다가 밤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한테 욕도 많이 먹었죠.(웃음) 회사일이다 학교일이다 해서 매일매일 늦었으니까요. 당시 제 아내가 부천 쪽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을 정도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그때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에게 참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첫 수업 당시를 잊지 못한다.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단단히 혼쭐이 났던 탓.

“제가 원래 준비를 잘 안하는 타입입니다. 일이든 공부든 큰 골격은 갖추되,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나가는 성격이거든요. 해서 첨에는 학교 수업 준비도 제대로 안 하고 지식 나눠준다는 생각에서 그냥 갔습니다. 근데 어찌나 당황했던지…. 45분이란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웃음)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강의 초반에 관심도 끌어내고 기승전결에 맞춰 짜임새 있게 진행하다 중간 중간 에피소드 등도 한 번씩 쏴줘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그때 처음으로 준비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봉사나 재능기부도 철저한 책임감과 준비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것을요.”

그 결과 이제는 아무리 작은 목표라도 체계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 습관화 됐다. 야학선생으로서의 경험이 그 자신에게도 일생의 교훈을 가져다 준 셈이다. “늘 계획이나 룰을 생각하다 보니 어쩔 땐 제가 교장, 교감 선생님이 된 것 같아요. 딱딱하고 고지식해 보인다는 얘기도 듣고요. 이게 소위 말하는 직업병인 걸까요?(웃음)”

나누는 삶, 스스로를 변화시키다

개인적 관심으로 시작한 봉사지만 유 부장이 연결고리가 돼 그가 속한 삼성테크윈도 부천실업고와 연을 맺었다. 삼성테크윈은 십수년간 학교에 물품과 장학금 지원 등으로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제가 과장 때였을 거예요.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인사팀 상사가 어떻게 전해 들으시곤 중고PC를 지원해주셨어요. 당시엔 컴퓨터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도 않고 상당히 고가여서 학교에 비치가 안됐는데 덕분에 아이들이 컴퓨터 실습을 할 수 있었답니다. 이후에도 테크윈은 농구골대 설치, 장학금 지원, 식비 보조 등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건넸습니다. 학교가 기숙사 형태로 운영되다보니 먹고 자고 하는 것들이 모두 필요했는데 여러 모양으로 채워준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삼성테크윈의 후원이 끊어진 상태다. 회사 사정으로 약 1년 전부터 식비 지원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 부장은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연속성과 지속성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기게 됐다. 사회공헌은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지를 갖고 계속해서 추진해나가는 자세가 필수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기업들이 기부다 사회공헌이다 하면서 많은 활동들을 하는데요. 무엇보다 일관성 있고 꾸준하게, 또 예측가능하게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회성 이벤트로 가져가서도, 경영상황에 따라 움직여서도 안됩니다. 기업도 해당 커뮤니티의 일원이 아닙니까? 공유가치를 구현해나간다는 맥락에서 각자 영역에서 최적화된 방식으로 지속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SR이 강조되는 요즘과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세월 꾸준히 이어져오던 부천실업고에 대한 삼성테크윈의 후원이 끊어져 버렸다는 점은 참 아쉽습니다.”

8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제자들도 꽤 늘었다. 졸업해서도 스승을 잊지 않고 종종 찾아오는 고마운 제자들도 많다. 마냥 철없을 것 같던 얼굴들이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 되고, 성숙한 부모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보람이다.

“각자 자기 밥벌이하면서 결혼하고 애기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그저 기특하죠. 얼마 전에도 조그맣게나마 자기 사업을 하는 제자가 연락이 와서 한 번 봤는데요. 이제는 뭐 제가 도움 줄 일도 없고 그저 인생 선배로서 사는 이야기나 서로 합니다.(웃음)”

사회공헌의 핵심은 ‘일관성과 지속성’


유 연구원은 지난 2011년 오랜 교사생활을 접고 2선으로 물러났다. 판교에 있는 회사와 부천에 있는 학교, 용인에 있는 집을 도저히 오갈 수 없어서다. 그래서 현재는 후원만 하고 있다.

“젊은 시절엔 젊음 하나로 버텼는데 지금은 체력적으로 많이 무리가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세월 탓이겠지요.(웃음)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 학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고, 후원자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소속된 선생님들은 여전히 최저 생계비만 받고 사명감으로 일하고 계시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부천실업고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힘이 되고 싶으신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도움의 손길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제 야학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제2의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 제1의 목표다. 이를 위해 최근엔 사회복지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지금까진 도와준다는 개념에서 봉사해왔던 것 같은데요. 앞으로 회사를 나오게 되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새롭게 해보고려고요. 늦깎이 대학원생이 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된 건 없지만 나눔으로 인생 2막을 열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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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 2013-02-20 11:17:08
정말 좋은 일 하신 분 같습니다. 어떤 게 진짜 나눔을 말하는 것인지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