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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PR인 마가렛 키의 하루
‘푸른 눈’의 PR인 마가렛 키의 하루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3.03.12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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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슨마스텔러 대표 동행 취재…3시간 전화 미팅도 거뜬

버슨마스텔러코리아의 마가렛 키 대표가 지난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외신 담당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우리나라 대선 역사상 PR인, 그것도 외국PR인이 대변인에 임명된 사례는 처음인 만큼 PR업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개월여의 대변인 활동을 마치고 본업인 ‘PR 현장’으로 돌아온 키 대표를 직접 만나 그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봤다.

[더피알=서영길 기자]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푸른 눈의 외국인. 생애 첫 직장을 한국 기업에서 시작하고, 여느 한국인들만큼이나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구수한 한국음식도 좋아한다.

근 15년 동안 한국에 살며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책이 아닌 온몸으로 경험하며 한국을 체득했다. 그만큼 한국인의 정(情) 문화에 대해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지한파로도 통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국내 PR 업계에 정통하고, 세계 PR 시장에 ‘코리아’라는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전문 PR인이기도 하다.

PR회사 ‘버슨마스텔러코리아’ 마가렛 키 대표 이야기다. 그녀는 한국과 글로벌 PR을 두루 섭렵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지난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외신 담당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이는 정치권에서 PR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PR인들 사이에서 크게 이슈가 됐다. 2개월여의 외도(?)를 마치고 이제 다시 본업인 PR인으로 돌아 온 키 대표. 그녀의 하루 일과가 궁금했다.

지난 2월 15일. 전화를 걸어 정치계를 거친 최초의 외국PR인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키 대표의 일상을 스케치하고 싶다고 취재를 요청했다. 이에 “그거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키 대표의 호탕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3일 후인 같은달 18일 키 대표가 근무하는 서울 수표동 버슨마스텔러코리아 사무실을 찾았다. 깨끗한 내부 인테리어와 ‘외국계 회사’ 냄새를 물씬 풍기는 사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AM 9:00  출근
키 대표의 출근 시간은 아침 9시로 정해져 있지만 더 이를 때도 부지기수다. 본사를 미국 뉴욕에 둔 외국계 회사다 보니 다른 나라 지사들과의 회의 시간을 맞추려면 시차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주로 출근길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업무 이메일을 꼼꼼히 확인하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오늘 하루 자신이 마쳐야 하는 일들을 연습장에 빼곡히 적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업무 준비를 마친 키 대표는 “오늘은 컨퍼런스콜(전세계 지사와 업무 공유 전화 회의)이 많아 주로 사무실 스케줄이다. 활동적으로 보이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날 오셨어야 했는데”라며 재치 있는 말로 아쉬움을 표했다.

 

AM 10:00  내부회의
아침 10시에 맞춰 클라이언트들과 관련해 내부직원 박혜성 차장과 회의가 잡혔다. 정시에 대표실로 들어온 박 차장과 키 대표는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간간히 한국어를 섞어 가며 약 40분간의 회의를 이어갔다.

회의 중간 중간 키 대표가 한국말로 ‘대박~ 대박’을 외치는가 하면, 영어로 줄기차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박 차장이 ‘아 미치겠다 정말’ 하며 서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대표와 직원 간 경직된 ‘수직구조’보다, 격 없는 ‘수평구조’의 회의 스타일이었다.

 

AM 10:40  인터뷰

다음 스케줄까지 한 시간 가량이 비어 키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우선 가장 이슈였던 한국 정치에 입문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정치는 자신의 인생에서도 처음”이라던 키 대표는 “아는 분이 새누리당에 나를 추천했고, 그 쪽(새누리당)에서 먼저 제의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외신 대변인은 버슨마스텔러코리아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앞으로 정치 쪽 제안이 온다면 또 할 의향이 있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한국에서의 첫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키 대표는 외무고시를 준비하려다 1999년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국내의 한 대기업 해외 홍보팀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했던 2년 동안 한국의 기업 시스템에 한계를 많이 느꼈다고 했다.

키 대표는 “글로벌화를 위해 뽑은 외국인인 나의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때 한국은 글로벌화가 막 진행되던 시기라 직급별로 수직적인 시스템과 폐쇄적 기업 문화가 너무 강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와 함께 키 대표는 한국 여성에 대한 관심도 크다고 했다. 자신은 절대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강조하는 그녀는 “기업들이 여성들의 고용이나 승진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정책 등의 이유로 마지못해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지적하며 “한국 여성들은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에선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친구들도 한국 여성들에 대한 칭찬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문득 키 대표 책상 옆에 있는 게시판에 눈길이 갔다. 그 곳에는 업무적인 서류보다 그녀의 9살짜리 아들이 손으로 삐뚤빼뚤하게 써준 편지와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있어, 자식 사랑하는 여느 엄마와 다름없어 보였다.

또 그 옆으로 과자 브랜드인 ‘마가렛트’가 적힌 종이상자 일부분도 눈에 띄었다. 이 과자상자는 8년 전 직장동료가 마가렛 키 대표의 이름과 똑같다며 오려서 선물해 준 것이라고.

 

AM 11:50   점심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은 주로 샌드위치와 생과일 쥬스로 해결한다. 오전 중에는 직원들이 미팅이다 보고다 해서 수시로 들락거려, 키 대표에겐 혼자 샌드위치를 먹으며 조용히 일 할 수 있는 이때가 최고다. 샌드위치는 주로 회사 빌딩 지하에 있는 카페를 이용한다. 이날은 12시 컨퍼런스콜이 잡혀 있어 서둘러 샌드위치를 샀다.

 

PM 12:00   1차 컨퍼런스콜

자리에 앉자마자 샌드위치와 생과일 쥬스로 점심을 해결하며 첫 번째 컨퍼런스콜 미팅이 시작됐다. 이번 컨퍼런스콜은 뉴욕 본사 주재로 아태지역 지사들이 서로 간의 업무를 공유하는 자리로, 키 대표는 회의 내용을 컴퓨터로 꼼꼼히 적으며 자신이 할 말을 옆에 놓은 작은 메모지에 적어 넣었다. 

키 대표는 컨퍼런스콜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한국말로 “말도 안돼~”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타 지역의 브리핑을 듣던 키 대표도 5분에 걸쳐 한국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1시간 30분 가량의 마라톤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2차 컨퍼런스콜을 위해 임리라 차장이 대표실에 들어왔다. 임 차장은 키 대표와 에델만때부터 같이 근무해온 오랜 동료다.

 

PM 1:30   2차 컨퍼런스콜
키 대표는 임 차장과 ‘헬스케어’에 관련한 컨퍼런스콜을 함께 하며 의견을 나눴다. 중간 중간 지나치게 긴 한 지역의 브리핑에 키 대표는 머리를 감아쥐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전화 미팅이 끝나고 키 대표와 임 차장은 이에 대한 회의를 더 가진 뒤 약 1시간에 걸친 두 번째 컨퍼런스콜이 끝났다.

 

PM 2:30    클라이언트 미팅 준비
약 2시간 30분에 걸친 장시간의 전화 미팅에도 키 대표는 늘 그래 왔다는 듯 다음 스케줄을 위해 움직였다. 이날 하루의 공식적인 마지막 스케줄로,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위해 그동안 준비했던 프리젠테이션 발표자료 등을 검토했다.

 

PM 3:20   클라이언트 미팅
키 대표가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주차가 어렵고 길이 복잡하고 막혀 택시나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기에 아쉽게도 동행 취재는 여기까지.

지나가던 택시를 잡으며 키 대표는 “한국에 될 수 있으면 계속 머물고 싶다. 지금은 한국이 내 고향이다”는 말을 남기며 서양식의 ‘쿨’한 손인사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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