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천재, 뱀파이어의 매력을 탐하다
순진한 천재, 뱀파이어의 매력을 탐하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3.2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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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로망, 그 이상…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더피알=이슬기 기자]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의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V는 뱀파이어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당하고, 그 아름다움을 탐한다. 프로페서V의 간청을 들어주는 뱀파이어, 그것이 계약의 시작이다.

뱀파이어를 만난 후 프로페서V는 확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 짝사랑하던 그녀에게 한마디 건네기도 쉽지 않던 그는 눈길 한 번에 상대를 매혹시키는 마성의 매력남으로 다시 거듭난다. 아, 물론 뱀파이어는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마’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겼다.

2010년 모노극으로 사랑받았던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가 2인극으로 정비돼 돌아왔다. 비교적 간결한 스토리의 ‘마마, 돈 크라이’는 극 중 인물만큼 매력적인 배우로 완성된다. 20여곡의 노래를 소화하며 극을 끌어가야 하는 만큼 가창력, 연기력에 자신만의 매력까지 갖춘 송용진, 허규, 임병근이 프로페서V로, 장현덕과 고영빈이 뱀파이어로 나선다. 모두 뮤지컬계에서 인정받은 실력파로 저마다 팬층도 두터운 배우들이다.

서숙진 무대디자이너의 노련한 무대배치와 다양한 방식의 조명 연출은 극을 풍성하게 한다. 락을 기본으로 다채롭게 변주하는 넘버들도 귀에 쏙쏙 박힌다. 넘버들만 봐도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속도감이 남다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 어느새 대표 넘버 ‘마마 돈 크라이’를 웅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배우들은 중극장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자신의 매력을 맘껏 발산하며 관객과 ‘놀아준다’. 수줍은 천재 학자에서 자신감 충만한 눈빛을 번뜩이는 바람둥이로, 등골을 시리게 하는 뱀파이어에서 농염한 무희로 변신하는 그들은 무죄, 볼거리가 그득하다. 뱀파이어, 천재, 달빛에 나비까지 젊은 여성이라면 혹할만한 장치들도 빠짐없이 동원됐다.

이쯤 되면 눈치를 채야한다. 극은 당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간다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배우와 연출과 넘버는 당신의 로망, 그 이상을 충족시켜줄 준비를 갖췄다. 작품의 미덕은 겨냥하는 바에 솔직하다는 점, 그리고 그만큼 어설프지 않게 준비했다는 점이다.

배우의 역할이 큰 만큼 대결구도를 이루는 두 인물의 조합도 관전 포인트다. 공연은 여러 번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을 위해 ‘마돈크 홀릭카드’도 내놨다. 4회 관람하면 30% 할인권, 7회 관람하면 40% 할인권, 그리고 10회 관람 시 초대교환권을 증정한다.

듣다보니 왜 제목이 <마마, 돈 크라이>인지 의아한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작품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집요하게 캐고 들어가는데, 기존의 ‘나’라는 존재의 특질들은 부모, 엄마에게서 기원한다는 인식에서 제목을 정하게 됐다는 김운기 연출의 변이다. 또 순진한 천재 프로페서V에게 짙게 드리워져 있는 엄마의 그림자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를 벗어버리는 인물의 변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로도 해석될 수 있다.
 

송용진, 허규, 임병근, 고영빈, 장현덕. 이들의 유혹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


다른 삶을 동경하시나요?

다섯 배우들의 어떤 매력에 캐스팅을 결정했나?
송용진은 무대카리스마가 뛰어난 배우로 프로페서V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펼쳐 보일 것으로 믿었다. 프로페서V의 엉뚱하면서 순수한 면, 지식인으로서의 열정을 표현하는 데 그만한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허규는 작품의 음악극적 성격을 백분 살릴 수 있는 락커다. 최초에 이 작품이 락의 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맑고 슬프고 즐거운 락의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할 줄 아는 배우다. 임병근은 연기, 노래, 춤 등 뮤지컬 배우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겸비했다. 프로페서V는 고독한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인데, 그의 고독한 내면을 온몸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배우다.

프로페서V에게 뱀파이어는 완벽한 남자다. 나는 그 완벽한 아름다움을 신체적으로 보여줄 배우로 고영빈 이상을 알지 못한다. 장현덕은 순수하면서 절망적인 인상, 나약하면서 강렬한 눈빛, 차가운 미성의 목소리면서 따뜻한 음률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의 배우다. 그의 뱀파이어가 보여주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이런 배우를 만난 것은 작품의 가장 큰 행복이다.

모노극이었던 지난 공연을 2인극으로 정비했다. 계기나 의도가 있나?
무대는 관객을 향한다. 관객의 기호를 고려해 2인극으로 변화를 줬다. 결과적으로 작품의 인과구조나 갈등구조가 단단해지고 풍성해져 두 가지 버전의 <마마, 돈 크라이>가 탄생했다. 연출자로서 기분 좋은 일이다. 2인극으로 바꾸면서 일대기적 관점을 두 인물의 관계적 대립으로 만들어 낸 것이 가장 큰 변화인데, 뱀파이어는 프로페서V의 어떤 심리세계를 대변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의 드라마를 살리고 싶다고 밝혔는데, 극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성격을 회의하고 때론 극복하고자 하는 존재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마음대로 타인의 성격에서 수혈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지금 그런 대상이 내 앞에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인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형중독자가 추하게 변한 얼굴을 보며 후회하는 것처럼 다른 인격을 갖춘 인간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후회하게 될 거다. 이게 인간의 한계고 그 지점에 보편성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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