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처럼 흩어지는 홍보맨들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홍보맨들
  • 김광태 (doin4087@hanmail.net)
  • 승인 2013.04.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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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의 홍보 一心

[더피알=김광태] 최근 우연한 기회에 옛날 산업자원부 출입 기자들 저녁모임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덕분에 이병순 전 KBS 사장을 비롯해 평소 보고 싶었던 퇴직 기자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그 옛날 ‘홍보’와 ‘언론’ 간 추억을 되살리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언론계 기자들은 유대감이 강해 현직 기자 시절부터 서로 간 크고 작은 모임이 활성화돼 있다. 해당 모임은 언론계를 떠나더라도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소소한 모임조차 없는 우리 홍보계와는 사뭇 다르다. 2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지만 한결같은 우애 속에 나누는 정감 어린 대화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날 귀가 길엔 내내 부러움과 ‘왜, 우리 홍보맨들에게는 그런 모임이 없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올해 퇴직한 어느 홍보 임원의 말이다. “회사를 나오니 정작 홍보맨들은 찾아 주질 않고 언론사에서만 그동안 고맙다고 밥 먹고 운동하자는 러브콜이 많네요.” 실제 막상 홍보를 떠나 회사를 나오면 갈 곳도 없고 홍보맨 중에서 누구 하나 위로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없다. 각자 알아서 자기 길을 가야 한다. 은퇴자들끼리 모임이나 단체 등도 없으니 자연히 마음 기댈 곳도 없다.

홍보 관련 모든 모임은 철저히 현업 중심이다. 그것도 업무적 목적이지 홍보맨들끼리 친선을 도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사를 떠나면 그 순간 모임도 인간관계도 모두 끝이 난다. 참으로 냉정한 세계다. 그래서 누군가는 홍보맨처럼 정 없고 결집력도 없는, 어찌 보면 모래알과 같은 존재는 없다고 한다.

최근 모그룹 홍보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선배, 왜 우리 홍보는 퇴직한 사람들끼리 모임이나 단체 같은 게 없나요? 현업을 하다보면 은퇴한 선배들의 막강한 후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그렇다. 현업 시절 각자가 나름대로 쌓아온 경륜만 모아도 후배들에겐 아주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은퇴한 홍보맨들 대다수가 “지긋지긋한 언론인들 안보고 신문 안보니 정말 살 것 같다”고 한다. 은퇴한 어느 홍보 임원은 “의식적으로 언론인을 1년 동안 안 만나보니 언론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이 됐고,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편해서 좋다”고 한다. 홍보 임원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매일매일 겪는 ‘언론공포증’이다. 그러니 은퇴한 홍보맨들의 모임이 만들어질리 만무하다.

홍보맨들의 결집력이 약한 또하나의 이유는 바로 선후배 서열이 언론인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회사마다 규모의 차이가 있고 계급의 격차도 있고 해서 서로 간 마음의 벽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홍보 업무 성격상 개인플레이가 강하고 연대의식은 약하다는 점도 뭉치는 데 큰 장애 요소다.

이렇다보니 은퇴한 선배들의 생활을 보면 초라하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고 기껏해야 대학 강단에 서는 정도가 최선이다. 대부분 홍보와는 담을 쌓고 개인 관심사로 하루 하루 시간을 보낸다. 과거의 경험을 무(無)로 돌리기엔 그동안 쌓아 놓은 재능이 너무 아깝다.

다행히도 최근 몇몇 퇴직 홍보 임원들 사이에서 언론인 관훈클럽처럼 홍보인 협회라든지 단체라든지 설립해 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PR재단을 만들어 보자고도 한다. 우리도 한 번 뭉쳐서 홍보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보자는 것이다.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선배들이 앞서서 길을 내고 후배들이 그 길을 닦아간다면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는다. 은퇴 이후 홍보인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의 터전.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마도 100세 홍보인 시대를 여는 홍보 인생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김광태

온전한커뮤니케이션 회장
서강대 언론대학원 겸임교수
前 삼성전자 홍보 담당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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