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이란 말이 없던 시절의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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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인섭 (admin@the-pr.co.kr)
  • 승인 2013.04.08 10: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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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前 단성사의 전단지 엿보기

[더피알=신인섭] PR과 광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지난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급격한 변화 속 이제 PR인과 광고인은 모두 각자의 본업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실력을 쌓고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엔 어땠을까? 85년 전인 1928년에는 이런 걱정이 전혀 없었다. 아래 그림은 한국 최초 영화관 단성사에서 발행된 영화잡지 ‘단성위클리’(Dansung Weekly. No. 290)다.

▲ 단성위클리 표지. 왼쪽 밑에는 문일(文一)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보인다.(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자를 추적했더니 1928년 12월 21일. A4 절반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표지만 컬러다. 분량은 모두 8페이지. 제목이 영어인 것으로 보아 단성사 프로그램은 그 당시 영어를 아는 신사(?)를 타깃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프로그램 소개다. 표지 그림이 멋지다. 클레오파트라인가? 이듬해에 개봉할 영화에 대한 소개가 즐비하다.

이중에서도 특히 3 페이지와 6 페이지의 내용이 재미있다. 6 페이지 밑에는 단성영화구락부 창립기념식(團成映畵俱樂部創立記念) 소개가 있고, “단성사 개관 만10주년(團成社 開館 滿10週年)을 마지면서”라는 사장 박승필(朴承弼)의 인사말이 있다. 기념식 식순은 개회(주악), 개회사, 축사, 축문 낭독, 폐회사, 폐회(주악) 그리고 여흥(음악과 영화)으로 돼 있다. 그 무렵으로서는 서울 멋진 신사들의 소문난 이벤트였을 것이다.

같은 6 페이지에는 새 봄에 상영할 영화 ‘벤허’가 있는데 그 소개 일부분은 ‘명문장’이다.

“‘뻰하’! 映畵(영화)가 잇슨 후 처음으로 人類(인류)가 映畵中(영화중)의 最高位(최고위)로 推漿(추장)하고야 말 이‘뻰하’는 全十二卷(전 12권)으로 엇더한 最高(최고)의 찬사(讚辭)로도 能(능)히 本篇(본편)의 偉大性(위대성)을 드러 說明(설명)하기는 어려웁겟다는 宣傳子(선전자- 선전하는 사람)의 誇張(과장)이 넘어컷다는 말을 公開時(공개시)의 여러분께서는 아니 하실것갓습니다…” <원문 그대로 사용>

▲ 단성 위클리 내지. 6페이지 위에는 영화 벤허('뻰하'라 표기)에 대한 소개가 있고 아래는 단성사 영화 구락부(클럽) 창립기념식순이 있다.(왼쪽) 3페이지에는 사장의 만 10주년 기념사, 그리고 밑에는 해설자의 이름이 들어간 금주의 프로그램이 나와 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 페이지는 만 10주년을 맞은 사장의 재치 있는 인사가 눈에 띈다.

“해마다 마저오는 기념식이 한번두번 가는 줄 모르게 십년을 맛게 되엿습니다. 녜- 그저 제가 무슨 재됴(재주)가 잇고 실력이 잇겟습닛가. 여러 손님께서 한결갓치 단셩사를 사랑하여주신 은택이외다 (…중략) 압흐로도 기리기리 우리 團成社(단성사)가 엇더한 파란과 굴곡이 잇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게신 다음 꾸준히 나아갈 것을 밋을 뿐이외다.” <원문 그대로 사용. 없는 활자는 생략>

1928년식 CSR 문장이라고나 할까. 당시는 무성영화 시대로 해설인이 있던 때라 ‘금주의 프로그람’ 다음에는 해설자의 이름이 반드시 들어갔다. 이름난 해설자(대개 변사(辯士)라 불렸다)는 서울 장안 기생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영화 외에도 여흥이 있었던 듯 바이올린과 하모니카 연주가 있었다. 한 가지 기특한 일은 이 인사말은 모두 한글이라는 점이다.

여성 독자를 염두에 둔 때문일까? 단성사는 단순한 영화관만이 아니었고 사교 클럽이었으며 문화 공간이었다. 진작 이 프로그램을 보고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잠깐! 이 작은 종이조각을 PR로 봐야 할까, 광고로 봐야 할까. 이미 1928년 12월 21일에 단성위클리는 290호가 나온 사보요 회보였고 그 뒤에도 계속됐다. 다만 언제까지인지는 모른다. 자료가 없으니까. 
 


신인섭 교수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전)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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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2013-04-08 14:49:53
재밌네요. 이런 거 시리즈로 해도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