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부암동을 걸어보셨나요?”
“5월의 부암동을 걸어보셨나요?”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5.0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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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인 부암동, 동적으로 즐기면 매력이 무궁무진

 [더피알=이슬기 기자] 살랑이는 바람과 따스한 볕이 나들이를 충동질하는 5월, 구석구석 정겨운 풍경이 가득한 서울 부암동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이제는 유력상권으로 자리 잡은 삼청동이나 그 옆 서촌마을보다 조금 더 불편해 아직 제 모습을 간직한 골목이 남아있는 곳. 부암동에서 3평짜리 카페 ‘유쾌한 황당’을 운영하는 여행작가 박상준을 만나 부암동 나들이 팁을 구했다.

“부암동은 서울에서 드물게 산을 볼 수 있는 동네예요. 원래 서울이 산이 많은 도시거든요. 서울성곽도 서울을 둘러싼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 능선을 따라 연결된 거잖아요. 근데 높은 빌딩들이 올라가면서 시각이 막혀 급격히 삭막해진 거죠. 부암동은 그나마 산도 보이고 구석구석 카페와 갤러리도 있는 귀한 동네예요.”

▲ 자하미술관에 오르면 소담한 부암동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부암동에 닿으려면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한번 타야한다. 3호선 경복궁역 앞에서 초록색 버스(7212, 1020, 7022)를 타면 다소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보통 그 꼭대기 윤동주 시인의 언덕부터 상명대 앞 하림각 사이를 부암동이라고 칭한다. 동네는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 위치해 지대도 높고 사방이 오르막길이다. 말랑말랑한 데이트코스를 생각하고 하이힐을 신고 오면 곤혹스럽기 십상이고, 역세권 평지에 익숙한 이들은 다소 번거롭게 여길 법하다. 실제로 부암동이 번잡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은 이 불편함에 희망을 건다.

이 불편함은 동네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근방에 대형마트가 없어도 묵묵히 오래 사는 이곳 주민들은 산이 있으니 그러려니, 그저 이곳에 적응해 산다. 그들의 무던함은 그대로 골목풍경에 드러난다.

“부암동의 진짜 매력은 골목에 있어요. 보통 담이 사람 키를 넘지 않는데, 오래된 나무가 담 안쪽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잖아요. 담 밖으로 가지를 쭉 내밀면 나무를 자르는 게 아니라, 나무가 자라는 모양을 살려 그 부분의 담을 헐어낸 집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이게 소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거든요. 거기서 동네의 정서가 단편적으로 드러나죠.”

보통 부암동을 찾는 사람들은 ‘맛집검색’으로 자주 나오는 치킨을 먹고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이선균네 집으로 유명한 산모퉁이카페와 백사실 계곡 등 북악산 자락을 주로 돌아본다. 거기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 정도를 들르면 ‘부암동을 다 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기에 부암동은 숨은 매력이 너무나 많다.

“봄엔 특히 집집마다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비어져 나오거든요. 또 인왕산 쪽에는 양쪽이 막힌 골목이 이어지다가 한 순간 탁 트여 산이 이어지는데 그 맛도 느껴보시고요. 어디서든 재미를 잘 찾는 친구들은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죠. 목적 없이 걷다보면 숨은그림찾기 같은 풍경들이 많아요. 부지런히 발품 파는 만큼 자신만의 비밀스런 장소를 발견할 수 있는 동네거든요. 굉장히 정적인 장소가 많으니, 동적으로 즐기면 그 매력이 무궁무진 하달까요?”

▲ (왼쪽)부암동 사진명당 자하미술관. (오른쪽 위)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서울미술관이 개관하면서 공개됐다. (오른쪽 아래)환기미술관, 올해가 수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사진제공=웅진리빙하우스>

에둘러 말하는 박 작가에게 몇 군데 추천을 부탁했다. 그는 자연에 스며드는 건물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환기미술관을 첫째로 꼽았다. 건축가가 기존 지형을 최대한 살려 지은 곳으로 산기슭의 경사를 타고 올라가는 담이며 물길 따라 설계해 빼뚜룸한 사선들이며 풍경을 이루는 요소들이 아름답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부암동의 몽유도원’이라 표현한 자하미술관도 추천할 만한데,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모습을 드러내는 미술관 앞마당에서 부암동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곳은 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이 있는 서울미술관이다. 문화재로서 빛을 보지 못하던 공간을 한 기업가가 매입해 복원했는데, 19세기와 21세기가 고즈넉하게 포개져 있다. 세 곳 모두 미술품만큼 주변 경관과 어울림이 탁월하다.

흔히들 가는 백사실 계곡은 도롱뇽도 사는 청정수역이다. 큰 바위가 주변에 있어 앉아 쉬기도 좋고, 최근엔 추사 김정희 별장터가 발견돼 앞으로 더 많은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 시문학관도 좋은데 우물을 테마로 지은 건물이 이색적이다.

마지막으로 부암동을 찾는 이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일단 하이힐은 참아주세요. 편한 신발을 신고 골목을 누비는 만큼 이곳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흔히 가는 벚꽃길에서 사람에 치였다면, 인왕산을 수놓는, 소박한 들꽃다발 같은 풍경을 보러 오세요. 지대가 높은 우리 동네 꽃은 5월초쯤에 만개한 답니다.”

“일단, 한번만 떠나보면 되요”

부암동 정거장 앞의 노란카페 ‘유쾌한 황당’의 주인장이자 여행작가다. <한눈에 쏙 제주도 올레길/스타일북스> <엄마 우리 여행 가자/앨리스> <오 멋진 서울/웅진리빙하우스> <서울 이런곳 와보셨나요?100/한길사> 등의 책을 냈다. ‘유쾌한 황당’은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축제도 하고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는, 그야말로 황당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 유쾌한 공간이다. 한 달에 한번, 공연자와 관객이 숨을 맞댄 채로 진행되는 ‘숨결콘서트’는 이미 입소문이 자자하다.

어린 시절, 경상북도 영주하고도 풍기 출신인 그에게 서울은 로망이었다. 서울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서울은 여전히 그에게 매력적이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어서 소개해 온 그는 이제 부암동에 찾아오는 서울 사람 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여행서 작가인 그에게 여행은 밥벌이 수단이기도 하다. 하나하나가 자료로 여겨져 흔적을 남기느라 바쁘게 다니다보면 좀 속상하기도 하다고. 그에게 진짜 여행이란 “머물고 싶은 자리에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무는 것”이다. 언젠가 무심코 걸터앉은 자리에 저 멀리서부터 밭을 흔들고 나무를 흔들고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늘 여행을 꿈만 꾸는 사람들에게는 “한번만 해보면 된다”고 당부했다. 첫 걸음이 무섭고 돌아온 후가 두렵지만 긴 여행 다녀온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보탰다. 오히려 그들은 ‘떠날 수도 있다’는 것 하나는 알고 산다. 일단 주말에 어디라도 가볍게 가보길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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