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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침묵으로 새 소통문화 열다
소녀, 침묵으로 새 소통문화 열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3.05.22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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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

2011년 12월 14일, 단발머리의 한 소녀가 거리로 나왔다. 추운 날씨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맨발의 소녀는 의자에 앉은 채 담담히 한 곳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주한 일본대사관. 굳게 다문 입술, 꽉 쥔 두 주먹은 수십여 년 간 말하지 못했던 가슴 속 그 무언가를 침묵으로 토해내는 듯했다.

소녀의 모습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오랜 외침을 대변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역사의 아픔을 사회적 소통으로 승화시킨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를 만났다.

▲ 평화의 소녀상 뒤로 김운성(사진 왼쪽)·김서경 부부가 나란히 섰다. 사진: 성혜련 기자

[더피알=강미혜 기자]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됐던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갖는다. 소녀상은 이 수요집회가 1000회(20년)를 맞은 지난 2011년 12월 14일에 건립돼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시민들은 봄이면 소녀상에 꽃을 가져다주고, 비오는 장마철엔 우산을 씌워주며, 추운 겨울엔 목도리를 둘러준다. 그렇게 소녀상은 상(像)을 넘어선 하나의 인격체가 돼 시민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이종혁 교수는 “사회적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소녀상은 위안부라는 우리의 아픈 역사, 어찌 보면 부담스러운 사회적 의제에 대한 국민 관심과 참여를 자연스레 이끌어냈다”며 소통라이브러리 첫 손님으로 김운성·김서경 작가를 초대한 의미를 밝혔다.

이종혁(이하 질문자 생략) 우선 소녀상을 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한데요. 

김운성 대학 시절부터(부부는 중앙대 조소학과 84학번 동기다) 사회 문제에 대한 미술적 활동들을 늘 고민해왔어요. 실제 작품에도 많이 반영했고요. 그러다 재작년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 찾아가서 먼저 제의를 했고, 그들과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했습니다. 마침 정대협도 수요집회 20주년을 기념해 평화비 건립을 추진 중이었고요. 저희가 수요집회 20주년을 알고 제안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서로의 생각이 잘 맞아 소녀상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비석과 같은 형태로 제작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하필 소녀의 모습으로 만드셨나요?

김운성 당초엔 비석도 염두에 뒀었죠. 하지만 비석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 내용들이 가슴에 와닿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선언적 의미가 크고,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거기에 담긴 깊은 뜻도 알기가 어렵고…. (정대협에) 여러 디자인을 드려봤는데, 협의 끝에 소녀상으로 확정했습니다.
김서경 사실 할머니로 할까, 소녀를 형상화할까 둘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 모습이 소녀였잖아요. 또 앞으로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할머니상은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소녀상으로 제작하게 됐습니다.

소녀상 크기가 실제 키보다 작은 것도 같아요.

▲ 김운성 작가 

김서경 아니에요. 일어나면 158cm 정도? 당시 소녀였던 할머니들의 실제 키보다 조금 더 크게 만들었어요. 너무 작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기 소녀상 앞에 무릎 꿇은 일본병사도 눈에 띕니다.(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내 소녀상 앞에는 무릎 꿇고 ‘잘못했습니다’라고 사죄하는 듯한 일본병사를 연상케 하는 조각품이 있다)

김운성 할머니들한테 사과하라는 뜻이지요. 아직까지 일본정부는 그러질 않고 있잖아요. 저라도 대신 사과하고 싶은 마음에 해학적으로 만들어 본 겁니다.

김운성·김서경 작가는 소녀상을 작업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던 당시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하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작품에 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김서경 작가는 “소녀지만 결코 어려보이지 않고, 약한 모습 가운데에서도 강인한 희망을 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얼굴과 입모양, 눈매 등 약간의 차이로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어 원하는 느낌을 살려내기 위해 얼굴을 수십번 고치고 또 고쳤다.

그런 만큼 소녀상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요소요소에 다양한 함의가 녹아있다. 단발머리는 예쁜 단발머리가 아닌 머리카락이 뜯겨진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김운성 작가는 “그 시대 머리카락은 대개가 땋은 머리였는데 타의에 의해 끌려가면서 조국, 친구, 가족들과 인연이 끊어져버렸다는 비극적 사실을, 그런 아픔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깨위 새는 평화와 자유를 상징한다. 또 새는 하늘과 땅을 오가는 ‘영매’의 의미가 있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아직 살아계신 할머니들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와 함께 소녀상의 꼬옥 쥔 두 손은 무례한 일본 정부를 향한 분노를, 땅에 딛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는 일본과 한국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던 삶을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불편함을 보여준다. 할머니 형상을 한 그림자 속 하얀 나비는 환생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운성 작가는 “많은 할머니들이 연세가 드시면서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고 있다”며 “부디 나비로라도 환생하셔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소녀상은 순수 예술이 아닌, 현실 참여형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두 분께서 현실 문제를 반영한 참여형 작품 활동들에 관심이 많으셨나 봅니다.  

▲ 김서경 작가

김서경 반드시 현실 참여형 작품을 만들겠다 꼭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현실을 반영한 작품 또한 조각가 삶에 있어 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람마다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른데, 저희는 소녀상을 통해 평소 간직해오던 생각들을 형상화한 것이고요. 

소녀상은 그 자체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여러 사람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맨발이 안쓰러워 양말을 신겨주고, 쌀쌀한 날씨엔 담요를 덮어주고 하는 식으로요. 마치 하나의 인격체로 다가선 느낌인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이라고 예상하셨습니까?

김서경 전혀요. 다만 작품을 만들면서 완성하고 나면 저희가 먼저 동참을 유도하려고는 했어요. 소녀상이 건립되고 난 열흘 후가 크리스마스여서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 하고요. 그런데 저희가 시작도 하기 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주셨어요. 정말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습니다.

예술 작가 분들 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보수적 성향의 분들도 계시잖아요. ‘눈으로만 보시고 절대 만지지 마시오’라는 이른바 접근금지형.(웃음) 그런데 두 분께선 소녀상에 행해지는 시민들의 다양한 ‘터치’를 기꺼이 수용하신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왜인가요? 사회적 소명 때문인가요?

김운성 글쎄요. 소명까진 아니라도 원래부터 작품의 문턱을 낮추길 좋아했습니다. 7~8년 전쯤엔 ‘작품에 손대세요’라는 타이틀로 활동을 한 적도 있고요.
김서경 저같은 경우 작품을 만들 때 소통을 제일 우선시해요. 주로 대중의 공감을 원하는 작품 활동들을 해왔고요. 소녀상의 경우 그게(소통·공감) 더 심한 케이스죠.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20년의 역사를 담아야 해서 또 다른 무게감이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소녀상은 개인 작품의 의미를 넘어 가급적 많이 알려지길 원했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큰 호응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요.(웃음)

소통 측면에서 바라볼 때 소녀상은 정말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보입니다. 혹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만들어 낸 콘텐츠(행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내 소녀상 앞에 무릎 꿇은 일본 병사.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께 사과하라는 의미를 담아 소녀상 앞에 전시돼 있다.

김서경 많은 감동적인 일이 있었지만 소녀상 앞으로 편지가 배달된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 초등학생이 ‘소녀상 앞’이라고 해서 편지 한 통을 보냈는데, 그걸 우체부 아저씨께서 정말로 배달해 주신 거예요. 주소도 소녀상 앞이라고만 적었다는데…. 정말 기분 좋은 놀라움이었습니다.

이종혁 교수는 소녀상을 통해 대중이 참여하는 새로운 콘텐츠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 크게 주목했다. 소녀상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베이스캠프가 돼 또 하나의 사회적 소통문화를 열고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소녀상이 갖는 이같은 상징성과 소통의 힘을 확산시키고자 즉석에서 깜짝 제안을 했다. 사람들이 소녀상을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소녀상을 들여놓자는 아이디어였다.

소녀상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일상의 손길 발길이 닿는 곳곳에 놓아두면 어떨까요?(실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는 원래 크기의 소녀상과 함께 미니어처 형태의 소녀상도 전시돼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갤러리가 될 수도 있고, 한적한 동네 어귀에 위치한 주택가 골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소녀상의 의미를 확산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김서경 아,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요?(웃음) 어차피 소녀상 자체가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으니까요. 분실의 위험이나 훼손의 우려가 없다면 대량으로 제작해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국경일에 태극기가 게양되듯, 소녀상이 문 앞에 놓여 있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지요.(웃음)

* 소통라이브러리는 우리 사회의 소통문화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협력하는 코너로, 이종혁 광운대 교수와 함께 진행하게 됩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문화를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숨겨진 인물들이 인터뷰의 주인공입니다. 일상을 움직이는 소통, 실천의 밑거름이 되는 소통을 꿈꾸며 소통라이브러리의 첫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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