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와 ‘샌프란시스코 영웅’ 사이에 놓인 승무원
‘감정노동자’와 ‘샌프란시스코 영웅’ 사이에 놓인 승무원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7.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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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아시아나 사고…요란한 언론보도를 접하며

[더피알=이슬기 기자]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머리가 더 명료해지고 매년 반복했던 비상상황 훈련덕분에 몸이 저절로 반응했던 것 같아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정리가 됐어요.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빨리 사람들을 구해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착륙도중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 기내에서 맹활약을 해 ‘샌프란시스코의 영웅’이라 불리고 있는 이윤혜(40) 최선임 승무원은 취재진들의 질문에 이같이 덤덤하게 소감을 밝혔다. 처참하게 파손된 기체에서 승무원들의 침착한 대처가 빛을 발했다는 언론의 찬사가 쏟아졌다. 긴박한 상황에서 ‘몸이 저절로 반응’하려면 얼마나 많은 반복 훈련이 있어야 하는가를 곱씹어 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항공기는 사고 빈도가 매우 낮지만 한 번 사고가 터지면 초대형 사고로 이어져서 위험성 또한 크다. 때문에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들 역시 입사 시 군대에 버금가는 고강도의 안전 훈련을 받는다. 모든 승무원이 국제항공안전평가 기준에 따라 설계된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고. 신입사원이 받는 504시간의 직무훈련 중 안전훈련이 179시간으로 약 40%에 해당하며 매년 승무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재교육도 받는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사고를 접하며 각종 언론들은 승무원이 갖는 이같은 직업적 특성에 주목하며 앞다퉈 그들의 전문성과 안전교육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문득 지난 4월, ‘을의 반란’에 도화선이 된 포스코에너지 ‘라면 상무’ 일화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당시 그 상무는 승객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승무원에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했고, 심지어 폭행까지 가했다. 해당 사건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묻혀왔던 을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사회적 촉매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감정노동의 희생자인 승무원이 있었다.

때마침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고객에게 자신의 실제 감정과 다른 거짓 감정을 표현하거나, 고객에게 보여주려는 상냥함, 친절함을 몸에 배도록 하는 행위 등을 기준으로 조사한 감정노동실태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항공기 승무원의 감정노동 정도는 203개 직업 중 가장 높아 각종 서비스직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 결과에 기대어 언론은 승무원을 철저히 을의 자리에 놓고 열악한 근무환경, 스트레스 등을 부각시켰다.

그런데 불과 두어 달을 두고 승무원은  ‘감정노동자’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영웅’으로 급격하게 재포지셔닝되고 있다. 여기에는 극과 극으로 분열된 이미지를 요란스럽게 묘사,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이 있다. 이 과정에서 오늘도 비상사고 발생 대비, 기내 안전 활동, 기내 서비스 제공 등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은 쉽게 왜곡되고 과장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오늘자 서울신문 사설에서 지적한 한국 언론의 5대 특징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문맥을 상실하고 필요한 단어만 짜깁기하는 거두절미, 일부를 전체인 양 과장하는 침소봉대, 뭐든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 문제제기는 창대하게 마무리는 흐리멍텅한 용두사미, 남의 주장에 우르르 몰려가는 부화뇌동.

승무원의 분열된 두 얼굴을 마주하며 위 언론의 특성이 떠오르는 건 비틀어보기 좋아하는 기자의 괜한 몽니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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