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슬로건의 좋은예, 나쁜예, 이상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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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익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3.07.1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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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번져나간 영어슬로건…“어색하고 우스운 표현 많아”

[더피알=이동익 기자] 기업슬로건은 해당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고, 대중적 이미지와 친밀도를 심는다는 측면에서 기업브랜딩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 새 많은 기업들 사이에서 영어 슬로건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하지만 이같은 영어 슬로건이 어색하고 우스운 콩글리쉬로 만들어져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며 내건 슬로건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기업의 홍보자료를 영어로 번역해온 전문번역가 네이슨 드보아(Nathan A. DuBois)는 ‘마음을 흔드는 한 문장’이란 책에서 “한국에서 사용하는 영어 슬로건들은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볼 때는 가히 충격적이다”고 평가하며, “슬로건은 기업과 상품의 얼굴이자 국가 이미지다. 잘못된 슬로건은 한번 웃고 끝날 일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과 정치적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 현대제철이 사용하고 있는 'steel inovation'이 본 뜻과는 다르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훔쳐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드보아는 책을 통해 기업슬로건의 잘못된 영어표현으로 오션월드 ‘Feel the Climax(클라이막스를 느껴라)’, 현대제철의 ‘Steel Innovation(철의 혁신)’ 등을 꼽았다.

우선 오션월드의 경우, ‘클라이막스’라는 단어가 주는 이중적 의미가 문제로 지적됐다. 오션월드는 지난해 여름부터 워터파크 물놀이기구의 짜릿함을 표현하며 ‘Feel the Climax’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데, 클라이막스가 해외에선 성적인 쾌락, 절정을 뜻하는 성적인 표현으로 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드보아는 “오션월드는 클라이막스라는 슬로건과 함께 핫팬츠를 입고 허리까지 드러내는 모델들을 내세운 광고를 선보이고 있다”며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광고물로만 기억된다”고 꼬집었다.

야심차게 내건 슬로건이 ‘아이디어를 훔쳐라?’

현대제철이 사용하고 있는 ‘Steel Innovation’은 비슷한 발음으로 인해 의미가 왜곡될 수 있는 사례다. 기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steel(철)’과 세계적으로 유행어인 ‘innovation(혁신)’이란 영어단어를 조합해 ‘스틸 이노베이션’이라고 만들었지만, 이중 ‘steel’이 ‘훔치다’는 뜻의 ‘steal’과도 발음이 같다. 드보아는 “제철분야에서 혁신을 꾀한다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훔친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평가했다.

발음상 오해는 롯데제과의 ‘위즐’ 아이스크림에서도 나타난다. ‘We’(우리)와 ‘즐’(거움)의 합성어로 한국에서는 창의적이고 성공적인 브랜딩일 수 있지만, 영어권 소비자들에게는 ‘Weasel(족제비)’과 발음이 유사해 거부감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즐 아이스크림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팔기 쉽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족제비라는 표현으로 인해) 아이스크림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직접 먹어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참신한 영어표현으로 호감을 산 슬로건들도 있다. 금호건설의 ‘Home, Smart Home’, 현대전자의 ‘Investing Today, Leading Tomorrow’, 매일유업의 ‘Everyday Choice, Everyday Fresh’ 등이다. 드보아는 이들 슬로건을 꼽으며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참신한 슬로건으로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호평했다.

금호건설의 ‘Home, Smart Home’은 “기존의 유명한 노래 제목인 ‘Home, Sweet Home(즐거운 나의 집)’을 사용해 아늑하고 포근한 집을 연상시키면서도 ‘Sweet(달콤한)’를 ‘Smart(똑똑한)’로 바꿔 첨단 기술로 무장된 최신식 건축물을 떠오르게 한다”고 평했다.

현대전자의 ‘Investing Today, Leading Tomorrow(오늘을 투자, 내일을 선도)’에 대해서는 “한국어 슬로건인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도 훌륭하지만 영어 슬로건도 직역이 아니라 유연하게 번역하면서 리듬감과 스타일 모두 살렸다”며 “1997년 첫 선을 보인 이 슬로건은 지금 사용해도 효과적이고도 눈에 띄는 슬로건”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 영어 의미보다 느낌만 좋으면 영어슬로건 사용해”

▲ 오션월드가 지난해 손담비를 내세우며 광고했던 'feel the climax' 광고 슬로건. 놀이기구의 매력보다는 성적인 표현이 더 강조되고 있다.
매일유업의 ‘Everyday Choice, Everyday Fresh(매일 선택, 매일 신선한)’는 “매일유업의 기업명을 간접적으로 슬로건에 노출하면서도 매우 창의적이다”고 평하면서, “매일유업의 뜻을 이해하는 소비자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재치 있고 재미있는 영어 슬로건”이라고 치켜세웠다.

사실 영어로 표현된 기업 광고나 슬로건은 영어권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세련된 언어로 인식되기 때문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기업들은 이국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고 글로벌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영어 표현을 많이 사용해왔다.

네이슨 드보아는 이점을 지적하며 “한국기업들이 국내시장에만 너무 치중해 영어 의미보다는 느낌만 좋으면 사용한다. 해당 표현이 세계인에게는 어떻게 보일지는 생각하지 못한다”며 “한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려면 한국인 외에 전 세계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올바른 영어 슬로건을 사용해야한다”고 충고했다.

한국기업들의 ‘영어 선호’에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좋은 슬로건을 만들고 싶다면 한국어를 사용해라. 굳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자국의 정체성과 문화, 언어의 가치를 낮출 필요는 없다”면서, “그래도 영어를 쓰고 싶다면 번역보다는 처음부터 실력 있는 영어작문가를 찾아 더 자연스럽고 멋들어진 영어 슬로건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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