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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기의 실패한 ‘퍼포먼스’와 시뮬라크르의 세상
성재기의 실패한 ‘퍼포먼스’와 시뮬라크르의 세상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7.30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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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생명 건 예고 앞에 관망하는 사람들, 생중계하는 언론

[더피알=이슬기 기자] 학교 친구들의 따돌림에 게임 속으로만 파고들던 자폐아 벤은 어느 날 망망대해에 몸을 던지는 영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그를 기록한 영상을 보며 학생들이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을 쯤 벤은 살아 돌아왔다. 가족과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그런 장면을 연출해 현실을 뒤집으려 한 것이었을 뿐, 그는 죽지 않았다.

벨기에 영화 <벤엑스(Ben X)>의 한 장면이다. 어쩌면 이와 유사하게 진행될 수도 있었던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투신 사건이다. 성 대표는 지난 25일 남성연대 홈페이지에 “남성연대 부채 해결을 위해 1억 원만 빌려달라”며 “내일 한강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예고한 뒤 이튿날 투신했다. 그의 시신은 4일이 지난 어제 발견됐다.

성 대표는 이 영화와 유사한 효과를 노렸을 수도 있다. 자신의 퍼포먼스로 남성연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재정적 부담도 좀 더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말대로 성 대표는 자살이 아닌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하다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실제 성 대표가 투신 전 강태호 KBS PD와 주고받은 문자내용은 변 대표의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투신 전날 “위험한 결정 안하실거라 믿습니다. 오죽 했으면 그러셨겠나하는 생각뿐입니다”라며 투신을 만류하는 강 PD에게 성 대표는 “고맙습니다. 꼭 살아남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와중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나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좀 더 심각하게 접근했다. 표 교수는 한 라디오에 출연해 성 대표가 정신상담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며, 스스로도 사망 가능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상당히 진지한 말이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진 교수 또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가 잘못될 경우 누구를 후임으로 임명한다’는 말을 남긴 것은 죽음의 위험을 모르지 않았음을 의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자살? 2억2천의 빚은 남성연대라는 단체의 공적 활동으로 인한 것이나, 고스란히 성재기라는 개인의 사적 채무로 남았죠”라며 그가 죽음의 가능성을 알고도 ‘퍼포먼스’를 강행했을 것이라고 봤다.

성 대표가 어떤 의도로 벌인 일이건 간에 목숨을 걸고 벌인 그의 ‘퍼포먼스’를 대하는 우리사회의 상황은 살벌하기 짝이 없다. 그가 난간에서 손을 놓는 장면이 트위터에 올라왔고, KBS 취재진을 비롯한 3명이 난간을 붙잡고 위태하게 서있는 그를 촬영하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그는 적어도 4명이 보는 앞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렸다.

이 자극적인 장면 앞에 우리 언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속성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클릭수 따먹기에 정신없는 수많은 인터넷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국정원 규탄 촛불문화제에는 일언반구도 없던 주요언론들도 끊임없이 성 대표와 관련한 자극적 기사를 쏟아냈다. 그가 투신한 날부터 오늘까지 60건의 온라인 기사를 내놓은 조선일보, 57건을 다룬 동아일보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말로 ‘죽어버린’ 한 사람에 대한 진지한 시각은 찾기 어렵다. 어떤 이유에서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사회를 향해 비장하게 울렸을지도 모를 경고음이 여느 연예인의 스캔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소비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우려를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실재와의 관계가 끊어진, 실재를 모사한 이미지인 ‘시뮬라크르’ 만이 남아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미디어가 앞장서 파생실재를 생산해내 사람들의 판단을 어지럽히는 세태는 이제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다. 그 자리에 있던 KBS의 카메라는 앞다퉈어 하이퍼리얼리티(극실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오늘날 언론의 자화상일 것이다.

성재기 대표가 정말로 어떤 의도로 투신을 했는지는 알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예고됐음에도 결국 죽음을 막지 못한, 아니 이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를 생중계하려 했던 언론에게 언론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인 걸까. 

한 사람의 죽음을 그저 가십거리로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냉정함이 시리도록 차갑고, 그것을 뉴스거리로 소비하고 마는 이 나라의 언론이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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