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꽃중년들이 ‘팝아저씨’가 된 이유
한국 꽃중년들이 ‘팝아저씨’가 된 이유
  • 김지헌 세종대 교수 (admin@the-pr.co.kr)
  • 승인 2013.08.29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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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의 브랜딩 인사이트] ‘경험적 혜택’ 제공의 좋은 예

▲ 최근 크레용팝을 좋아하는 중년남성 팬을 일컫는 '팝저씨'(크레용팝 + 아저씨)가 늘어나고 있다. 한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한 크레용팝을 응원하고 있는 팝저씨.(출처=방송사 화면 캡처)

[더피알=김지헌] 최근 크레용팝(Crayon Pop)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빠빠빠’라는 노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츄리닝 복장에 헬멧을 착용한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키치패션(Kitsch fashion)을 한 5인조 걸그룹의 재미있는 춤, ‘직렬 5기통 댄스’는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녀시대나 2NE1과 같은 기존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표현해 구분이 어렵지 않은 반면, 크레용팝의 멤버들은 매우 유사해 보이고 가슴에 이름표까지 달고 있어 촌스러움을 더해준다.

필자가 크레용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독특한 패션도 재미있는 춤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크레용팝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무대 뒤편에서 헬멧을 쓰고 열광하는 30-40대 중년들의 모습이었다. 팝저씨(크레용팝 + 아저씨의 합성어)라 불리는 이들의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마치 우정의 무대에서 군인장병들이 걸그룹에 열광하는 모습처럼 비춰졌다.

왜 중년들은 크레용팝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적 혜택(experiential benefit)을 추구하는 소비자 심리의 관점에서 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경험적 혜택은 우리가 흔히 펀(fun)이라고 얘기하는 오감의 즐거움(sensory pleasure)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소비자들은 눈, 코, 귀가 즐거운 브랜드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추구는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vice)으로 여겨져 개인에 의해 통제돼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압력에 놓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여가의 대부분을 게임으로 보내는 직장인은 사회적 눈을 의식해 당당하게 자신의 취미활동을 밝히지 못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경험적 혜택을 제공하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와 소비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형태(socially desirable response)로 바뀌어 제한적으로 표출되거나 감춰지는 경향이 있다.

아이돌 그룹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주 혜택이 오감의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이들도 경험적 콘셉트의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30대 후반의 지인과 식사를 하던 중 소녀시대의 팬을 자칭하던 그가 최근 크레용팝의 팬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걸그룹 '크레용팝' 공연 모습.

크레용팝 열풍, ‘눈치’ 안 봐도 되기 때문?

그 이유가 궁금해 크레용팝이 소녀시대보다 매력적인 이유 10가지만 얘기해보라고 했다. 그가 얘기한 여러 이유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농담 섞인 얘기일 수 있으나 소녀시대를 좋아했던 그는 늘 아내의 눈치를 봐야했다고 한다. 소녀시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면 아내의 질투 어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면 왠지 어리고 섹시한 여성에 집착하는 좋지 않은 성적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크레용팝은 아내와 함께 유튜브에서 공연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팬이라는 것을 밝혀도 오해가 없어서 좋다고 했다. 그제서야 팝저씨가 그처럼 공공연하게 크레용팝을 열광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다소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소녀시대의 어리고 섹시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크레용팝을 선호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용의 폭이 더 넓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중년남성들의 이같은 ‘크레용팝 열광 현상’은 경험적 혜택을 제공하는 브랜드들이 브랜드 콘셉트(brand concept)를 설정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즉, 브랜드의 핵심 이미지가 소비자들의 브랜드에 대한 선호와 소비를 제한할 수 있는 사회적 압력을 유발시킬 가능성은 없는지 사전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서양의 소비자들보다 동양의 소비자들이 브랜드 선택과 소비에 사회적 압력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김지헌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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