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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고만한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고만고만한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9.06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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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유기농펑크포크가수 사이(Sai)

‘나만 빼고 니네들은 모두 우물 안 개구리 /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믿는 것만이 진실 / 나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서, 착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 게다가 나는 인격 또한 아주 고매해서 / 그런 너희들을 모두 감싸 안는다 / 는 착각’<착각>

우크렐레를 튕기며 무심한 듯 명랑하게 뽑아내는 ‘사이(Sai)’의 노래는 툭툭 내뱉지만 가볍지 않다. 귀촌해 생태주의를 고집하다 어느 날 기꺼이 ‘타락’을 선택하면서 만든 곡이라는데, 그의 삶도 노래만큼이나 담백할 것만 같았다.

▲ ‘유기농펑크포크의 창시자, 슈퍼백수이자 떠돌이 뮤지션’ 사이. 포크는 형식, 펑크는 태도를 이른다. 유기농은 그냥 트랜드라서 붙였다. 참고로 ‘슈퍼’는 영화 <인투더와일드>의 주인공이 쓴 가명 ‘슈퍼트램프(supertramp)’에서 따왔다.

“이거 보셨어요? 저 원래 여기에 살 생각이었어요, 아내 만나기 전까지.”
그가 가리킨 기사는 행복지수 1위라는 덴마크의 ‘스반홀름(Svanholm)’이라는 공동체를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월급의 80%를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면서 소득 격차를 거의 없앴고 100% 유기농 식품으로 자급자족을 하면서 모두가 주인이며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사회주의 시스템을 표방하면서도 개인이 존중받는 자유로운 분위기, 그곳에서 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고 기사는 전했다.

그는 서울에서 길거리밴드를 하던 시절,  그곳에 직접 가봤다. 지율스님이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 보내줬던 여행은 그의 삶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동안 책으로만 접했던 몇몇 공동체, 마을을 직접 돌아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게 된 계기가 됐다.

사이는 ‘유기농펑크포크의 창시자, 슈퍼백수이자 떠돌이 뮤지션’이다. 공연 전에 스스로를 소개하는 인사말인데, 어쿠스틱 악기를 주로 사용해 형식은 포크고 단순한 멜로디에 약간 저항적인 가사를 담는 펑크의 태도를 따왔다는 뜻이란다. 유기농은 요즘 트랜드라서 쓴다고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내 손으로 일구는 삶 위해 시골로

부산에서 태어난 사이는 20대 중반에 락스타를 꿈꾸면서 서울에 올라왔다. 예비 락스타는 서울에서 국립극장 기관실, 출판사, 환경시민단체 등 서로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길거리밴드를 계속 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석유문명의 종말을 다룬 다큐 영화를 한편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제 손으로 뭐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도시의 삶은 얼마 못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를 만나 산청에 갔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자 귀촌을 결심한 것이다.

▲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은 그의 음악을 두고 “뮤지션이 혼자 건축하는 사운드로 사유하며 만들지 않고 함께 나누는 수다처럼 체득하고 만든 것이 특징이며 미덕”이라고 평했다.
그곳에 살면서는 ‘돈 없어도 시골에서 팔자가 늘어진 걸 /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전기세 천 육백 원 / 텔레비전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없어도 좋아’<아방가르드개론 제1장>라는 가사처럼 전기도 거의 안 쓰고 집도 직접 지었다.

“거기 살면서 이웃 분들한테 많이 배웠어요. 대부분 생태주의자였는데, 제가 생각만 하던 것들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많이 가르쳐주셨죠. 지금은 핸드폰도 쓰고 그러지만 돈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건 알죠.”

한 3년쯤 지속하던 생태근본주의에 가까운 삶, 그는 어느 날 기꺼이 그만뒀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인투더와일드>를 감명 깊게 봤다며 얘기를 이어갔다. 그는 이 작품들을 모두 ‘인간은 어떻게 미신에 빠지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했다.

“<장미의 이름>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편이 신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호르헤라는 노수도사가 사람들을 죽여요. 그게 뭐라고. <인투더와일드>도 시스템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 23살 청년의 얘긴데요. 그는 알래스카에서 혼자살려고 했지만 비슷한 지방에서 고립돼 죽고 말아요. 죽기 직전에야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문구를 읽던 책에 남기죠. 그가 살아서 돌아왔으면 사람들이랑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요.”

행복은 나눌 때 진정 가치 있어

▲ 사이는 최근 저마다 직업을 가진 채 거주지를 시골로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남해의봄날>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그 즈음 근처에 혼자 살던 이웃이 동네를 떠났다. 몇 달이 지난 후 그 집에 간 사이는 마루에 덩그러니 앉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이유는 아직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곳이 황량한 숲으로 변한 광경 앞에서 망연해졌단다.

“자연 앞에 인간의 손길이라는 게 참 허무하구나 싶더라고요. 인간도 자연의 일부구나. 그때 비로소 느낀 것 같아요. 그 전에 생태주의를 고집할 때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서 인간은 미워하고 자연만 최고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었던 거죠. 알고 보면 인간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닌데 말이에요.”

마을의 한 이웃과 갈등도 불씨가 됐다. 사람의 본성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며 말을 꺼냈다. 일종의 위기감을 느꼈는데 그도 자신의 생각에 갇히고 외로우면 그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단다. 행복해지려고 시골에 왔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대단한 사람은 될지 몰라도 행복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미적거릴 여유가 없었다. 위의 책과 영화가 구절구절 인상 깊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착각>이 그때 만든 노래예요. 그 전까지 저는 스스로를 나름대로 굉장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자부심이 대단했죠. 나는 생태적이고 남들처럼 살지 않고.(웃음) 시스템에서 자유롭겠다고 귀촌을 했지만, 어느 순간 내 생각에 다시 갇힐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가만 보면 인간이 원래 미신에 빠지기 쉬운 존재인 것 같아요.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죠.”

그가 말하는 미신은 꼭 거대 담론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내가 하는 음악만 최고다. 다른 음악은 별거 아냐’라든가 ‘채식만이 아름다워’ 혹은 ‘생각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지’ 등 사소하지만 은연중에 우리를 지배하는 갖가지 근거 없는 믿음들을 아우른다. 그래서 그는 너무 원론적이고 도덕적인 말만하는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고. 암만 봐도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가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을 좋아해요. 작게 보면 각각 다르지만 크게 보면 비슷비슷하다는 거죠.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 다 고만고만하달까요.(웃음)”

사람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접고 조금 더 알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느꼈다. 자급자족과 생태주의를 고집하던 시절보다 조금 더 ‘자유’에 가까워진 모습일지도 모른다.

▲ 사이는 생태주의를 포기하고 기꺼이 타락한 이유에 대해 “행복해지려고 시골에 왔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대단한 사람은 될지 몰라도 행복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죠.”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대화 내내 그는 운이 좋다는 말을 자주 썼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름에 있다. 처음 음악을 하면서부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사이(Sai)’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게 쓰다 보니 어감도 예쁘고 언어유희를 즐기기에도 그만이라고. 우리 ‘사이’ 친구 ‘사이’ ‘사이’좋게 지내요 등등.

또 음악에 의지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간신히 통과한 소년이 지금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건 그간 ‘운 좋게’ 만난 인연과 그들을 통해 배운 것들 덕분이라고. 길거리밴드시절 친구들에게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걸 배웠고 산청에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스스로 구하는 방법과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의 거의 모든 것은 두려움이라고 봐요. 근데 이게 한번만 해보면 그다음부터는 점점 겁이 없어지더라고요.(웃음) 어떤 결정 앞에서 머뭇거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데, 그만큼 배우는 게 많고 재밌어요.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아요. 조심조심 살아도 마찬가지일걸요.”

‘권태를 모르는 내 굳은 권태 / 두려움을 모르고 달려가는 두려움’<반야심경>이라던 그의 노래 가사를 떠올렸다. 지금의 그는 권태 같은 건 모르는 이 같아 보여서. 아니나 다를까, 서울에 살던 시절에 만든 노래란다. 원래 권태는 잘 모르긴 했는데 특히나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6살 난 아들 느티 덕에 더 그렇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시골에서 빈둥대니 음악도 더 즐거워

▲ “시골로 옮기면서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어요. 그러다보니 여유가 생기고 음악이 즐거워지더라고요. 여유를 갖고 빈둥대다보면 그때부터 뭘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거든요.”

“전 시골에 와서 음악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홍대에서 노래할 때보다 많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붙었죠. 두려움이 없어지다 보니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사람이 두려움이 없어지면 여유를 갖게 되고, 그때부터 뭘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거든요. 서울에서 만약 직장 없이 빈둥대 봐요. 얼마나 불안해. 근데 그럴 필요가 없으면, 시골에서 빈둥대니까 노래가 만들어진다니까요. 나중에는 느티랑도 같이 밴드하는 게 꿈이에요.(웃음)”

‘새우깡 라깡 데리다 주고 어머니 앞에서 고백해 봐요 / 당근 밭에서 춤추고 있는 노을은 노을보다 아름다워라’<당근 밭에서 노을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노래가 도시에서 쫓기는 이에게서 나올 리 만무하다. 그는 삶 자체를 담박한 음악이 나올법한 모습으로 꾸리는 듯 보였다. 그러니 굳이 겉멋따위를 부릴 필요가 없다. 이런 그의 음악을 두고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은 “뮤지션이 혼자 건축하는 사운드로 사유하며 만들지 않고 함께 나누는 수다처럼 체득하고 만든 것이 특징이며 미덕”이라고 평했다.

충북 괴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이는 축제기획자로 나섰다. 올해로 3회째인 괴산페스티벌은 ‘돈보다 사람, 도시보다 시골, 기꺼운 불편함’ 등을 모토로 쟁쟁한 실력파 음악가들과 백여 명의 관객들이 정답게 어울린다. 그저 시골에서도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혼자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입소문이 심심찮다. 최근에는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남해의봄날>이라는 책에 공동 저자로도 참여했다. 그가 ‘귀촌 2세대’라고 표현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저마다 직업을 가진 채 거주지를 시골로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는 진화론자예요.(웃음) 어쨌든 다음 세대는 이전보다 나아진다고 봐요. 구체적으로 인디 씬의 움직임만 봐도 그렇고, 사회참여 면에서도 넓어지고 있죠. 저는 공연 다니고 사람들 만나면서 우리사회의 외양도 넓어지고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조금만 관심을 넓히면 새로운 세상이 보이죠. 그래서 우리는 사람도 다양하게 만나고 책도 많이 봐야하는 것 같아요.”

<착각>의 이어지는 가사를 곱씹어본다.
‘나는 빛나지 않는 별을 빛나게 하는 법을 알지 / 그건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 그렇게 말이야 / 긍정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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