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1위 국가의 허술한 자살예방대책
자살률 1위 국가의 허술한 자살예방대책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9.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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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분석·의지 없이 선전용 계획만 무성

[더피알=이슬기 기자]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와 각 지자체의 관심은 뜨겁다. 각종 캠페인과 계획이 우후죽순으로 발표되고 있다.

2010년 3월에는‘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도 제정했다. 이에 앞서 정부가 발표한 자살예방대책은 올해로 10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자살하는 이들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정부의 대책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우리나라 연간 총 자살자 수는 2011년 기준 1만5906명으로 하루 평균은 43.6명, 33분에 한 명꼴로 자살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자리도 오랫동안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0년 인구 10만명당 33.5명으로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 12.8명의 3배 가량을 기록해 비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Durkheim)은 경제적 지표와 사회정책 등과 자살과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자살이 개인의 유전적 요인, 심리학적 요인과는 별도로 사회적 원인과도 관련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13년 대한민국은 자살예방대책과 캠페인이 범람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제1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2009년부터 올해까지 제2차 종합대책을 세웠지만 여전히 자살률은 줄어들 줄 모른다.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의 허술함을 문제로 지적한다.

오진탁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장 겸 철학과 교수는 “정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럴듯하게 계획만 세워 발표해놓고 예산도 집행하지 않았고, 실행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했는지 살짝만 점검해도 빤히 보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33분에 한 명이 자살…캠페인은 범람하는데 실효는 미미

이는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유사한 입장이다. 번듯한 계획에 비해 빈약한 예산 수준만 봐도 정부의 의지가 가늠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예방 관련 정부예산은 2010년 7억원에서 2011년 14억원, 2012년 33.8억원 등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일본의 자살예방예산 124억엔(1450억원)에 비하면 0.5% 수준이다. 우리정부의 지난해 흡연예방 예산 225억원에 비해도 1/8수준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자살예방대책 기본계획이 부실할뿐더러 실행의지도 희박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유현재 교수는 “정부가 자살률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대책마련엔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묵살하는 언론의 보도 양태, 이를 방관하는 정부를 지적하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경향이 강해 뒤르켐이 주장한 ‘사회적 타살’의 측면을 놓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은 다양하다. 각 집단을 이해하고 자살 원인을 분석해 그에 맞는 대처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적 효과 탄력성이 더 높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모바일이나 웹툰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접근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반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년층에게 필요한 것은 세련된 메시지가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을 덜어줄 실질적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 자료출처=통계청, 사망원인통계

오진탁 교수는 지금처럼 알맹이 없이 슬로건만 외치는 캠페인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며 메시지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일단 자살을 고려하는 이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고 자살은 문제해결의 방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단호하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거기에 시간을 두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충동을 극복하고 삶에 힘이 생기도록 도와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몇 마디로 간단히 끝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말하자면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해서 마포대교에 ‘무슨 고민 있어?’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래’ 등 자살방지 문구를 부착하고 생명의 전화를 설치한다고 해서 자살자의 자살충동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일률적 구호보다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지난 7월말 정부는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위원회와 전문가 위주의 자살예방포럼을 구성하고 자살 예방을 위한 범국민 캠페인을 펼치며 언론매체와의 협약 체결, 인터넷 상의 유해정보 차단 등의 방안을 검토한다고 알리기도 했다.

핀란드의 경우 북유럽의 자살 천국이라고 불렸던 과거가 있다. 핀란드 정부는 198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자살예방프로젝트’를 시행했고 20년 만에 자살률을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자살률 줄이기가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서울 노원구의 경우 2010년 전국 최초로 생명존중문화 조성 및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자살 시도자와 자살 유가족 등을 병원·경찰서와 함께 돌봤다. 홀몸 노인, 실직 중장년층의 경우 구청직원들이 직접 관리하는 생명지킴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결과 노원구 내 자살자 수는 2009년 180명에서 2011년 145명으로,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2009년 7위에서 2011년 21위로 대폭 줄었다.

정부는 자살 사망률을 인구 10만 명당 20명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한다고 밝혔다. 보여주기식 정책 나열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어떤 행보로 그들의 의지를 표명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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