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자살보도, ‘베르테르 효과’ 악순환
묻지마 자살보도, ‘베르테르 효과’ 악순환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3.09.10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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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미디어 자살보도의 위험성

[더피알=유현재] 필자는 얼마 전 EBS 교육방송과 공동으로 자살만연의 심각성 및 미디어가 자살증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루게 될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핵심은 2004년 제정된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제언한 항목들을 적용한 TV 자살보도 4종을 만들어 각각 다른 그룹들에게 노출시키고 반응을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1번 그룹은 ‘자살에 대한 미화법을 사용하고, 자살이 개인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대한 선택적 대안이었다고 표현하는 보도’에 노출됐고, 2번 그룹은 ‘자살에 대한 미화법을 사용하고, 자살이 선택적 대안이었다는 표현을 하지 않은 보도’를 시청했다. 3번 그룹은 ‘자살에 대한 미화법 대신 팩트만 전달하고, 자살이 개인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있어 선택적 대안이었다는 표현을 포함한 보도’를 접했으며, ‘자살에 대한 미화나 자살이 개인의 선택적 대안이 되었다는 표현을 전혀 포함하지 않은 보도’가 4번 그룹의 몫이 됐다.

▲ 자료사진. ⓒ뉴시스

이때 자살보도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미화법으로서 실험에 선택된 표현은 ‘동반자살’이었다. 동반자살이란 용어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집단자살의 미화적 표현으로, 누군가 자살행위의 주도자가 되고 특정인은 자살을 타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하지만 만약 자살 행위의 주도자가 아빠이고 어린 아이가 함께 죽음을 맞는 경우, 실제로는 ‘자녀를 살해한 후 본인도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묘사일 수 있다. 실제 외국에선 그런 사건이 발생할 경우, 부모가 자녀들을 살해한 것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험에 활용된 또 하나의 변수는 ‘자살을 선택적 대안으로 인정하는 표현’으로,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지양할 것을 제안한 항목이다. 예를 들면, “김모씨는 생활고에 시달려 고민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안이 될 수 없는 자살을 마치 환경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흘리면 안된다는 권고 사항이다.

상기 변수들을 적용하거나 미적용해 임의로 제작한 4종의 자살보도를 보여준 다음 드러난 결과는 놀라웠다.

‘동반자살’…살해행위를 미화적 표현으로 포장

실험에 참여한 19세~30세의 젊은 성인 가운데 TV보도를 시청한 다음 “자살자를 이해할 수 없다” “자살자의 행동은 이기적이다” 등 자살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모방자살 상황인 ‘베르테르 효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룹은 4번째였다. 자살에 대한 미화법없이 팩트만 간략하게 전달했으며, 자살이 개인이 처한 특정한 상황에서는 선택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전혀 포함하지 않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최대한 수용한 보도에 노출된 그룹인 것이다.

반면 1번 그룹, 즉 동반자살 등 특정 표현을 동원한 자살미화와 자살이 선택적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포함한 보도를 시청한 피험자들은 비교적 자살에 대해 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자살자의 행동에 대해 “그럴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안됐지만 이해한다” “자살자의 상황을 이해할 것 같다” 등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결국 미디어가 이같은 표현을 포함해서 자살 관련 보도를 내보낼 경우, 사람들은 자살과 자살자의 행동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물론 특정 보도를 접하고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해서, 그들의 자살의도가 높아진다거나 하는 인과관계를 밝혀낼 수는 없다. 자살행위 자체가 대단히 복잡한 동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사안에 대한 선호도가 결국엔 관련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참고한다면, 현재의 자살보도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자살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하며, 혹시 발생시킬지 모를 부작용을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한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올해로 무려 8년째 OECD 국가 중 최고 자살율을 기록하고 있다. 통계적으로는 거의 30분 당 한 명이 자살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중 1위는 사고도 암도 아닌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다.

▲ 우리나라 미디어들은 대부분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무시하고 있는 가운데, 심지어 얼마 전엔 kbs가 성재기씨의 자살 상황을 중계방송하다시피 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당시 성재기씨의 자살장면을 방송사 기자가 촬영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트위터 사용자(@ve****) 화면 캡처.


언론의 경쟁적 자살보도, 권고기준만 있고 실행의지는 없어

헬스커뮤니케이션(이하 헬스컴)적 측면에서 반드시 토론해야 하는 명제는 ‘자살 증가와 미디어의 잠재적 악영향’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자살공화국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심각한 상황의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자살보도를 행하는 미디어에 대해 개선을 요할 수 있는 방법은 권고기준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권고기준은 자살보도의 내용에 포함시키지 말라는 사항들과, 반드시 포함했으면 좋겠다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자살의 방법, 장소에 대한 상세묘사, 미화법 사용, 선택적 대안으로 인정하는 표현 등을 자살보도에 포함시키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대신 자살예방 및 방지 관련 기관에 대한 정보, 자살은 정신적 감기와 비슷해서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 등을 포함시켜줄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헬스컴 연구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디어들은 그들이 지키겠다고 검토해서 발표한 권고기준 대부분을 무시하고 있다. 인터넷신문과 전통신문이 일정 기간 다루는 자살보도를 분석한 결과, 두 종류의 미디어 모두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심각하게 어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자살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함께, 자살예방 및 방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다. 지자체별로 특별기관도 운영하고, 자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사업들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디어의 자살보도에 대한 새로운 방안 모색이 시급한 사안이라고 판단된다.

자살보도가 차후의 자살을 만들어낸다는 인과관계도 정확하게 검증할 수 없고, 구독률과 시청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디어들이 자극적 콘텐츠로 자살보도를 제작하는 현실도 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혹시 발생할지 ‘자살부추김 효과’의 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우리사회는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통해, 미디어가 한 개인의 자살을 중계방송하다시피 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성재기씨의 자살이 미디어를 통해 너무나 상세하게 보도된 다음에는 어김없이 그를 따라하는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자살에 관해 취약하고 무방비 상태인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과거 높은 자살률로 고통받던 북유럽 국가들은 이제 미디어에서 ‘자살’ 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미디어들 역시 자체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기관의 단호한 결단과 미디어, 언론들의 자체적 결심이 너무나 필요한 시기이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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