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광고는 미국인들을 어떻게 위로했나
9.11 테러 광고는 미국인들을 어떻게 위로했나
  • 신인섭 (admin@the-pr.co.kr)
  • 승인 2013.09.11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인섭의 PR 히스토리] 진정성 있는 공익광고의 저력

[더피알=신인섭] 불과 1시간 40여분 사이에 뉴욕, 나아가서는 세계 자유무역의 상징이기도 한 110층짜리 쌍둥이빌딩이 사라졌다. 미국이 공격을 당했다. 지난 2001년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튿날인 9월 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비인도적 테러 행위를 즉각 규탄했다. 유럽 증시는 1분의 묵도를 울렸다. 이날 10시 50분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 공격을 “전쟁 행위(Act of War)”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후속적으로 숱한 일들이 벌어졌다.

▲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빌딩을 무너뜨리며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 당시. (사진=방송사 화면 캡처)

문명의 충돌이라고도 불릴 만한 세계사적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전쟁이 시작됐다. 9.11 테러 주모자는 사우디 아라비아 부호의 아들인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그는 9.11 사건이 발생한 지 꼭 10년 뒤인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비밀 거처에서 미국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된 뒤 수장됐다. 그리고 아직도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난 뒤 열흘이 지나고 텍사스 오스틴의 중형 광고회사 GSD&M이 제작한 “아이엠 언 어메리칸(I am an American. 나는 미국인입니다)”이라는 공익광고 캠페인이 시작됐다. 이 캠페인은 미국 공공광고기구(Advertising Council. AC)가 주관했다.

‘아이엠 언 어메리칸’은 누구나 아는 평범한 네 마디다. 그런데 이 단순한 메시지가 미 전역에 퍼지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참극 속 열흘 만에 빚어낸 ‘기적’, “I am an American”

해당 광고의 아이디어는 GSD&M 사장 일행이 미 동부 매릴랜드에 갔다가 9.11 테러 후 모든 항공이 금지되자 자동차로 오스틴 본사로 가면서 생겼다. 테러 공격이 있은 뒤 혹시 아랍계 미국인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보복이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같은 참극을 당한 미국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결국 오스틴에 도착하자 사장이 AC에 전화를 걸어 광고제작의 동의를 얻어냈다. 각계각층, 다양한 인종이 모두 제작에 참여한 끝에 작품은 10일만에 완성됐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 9.11 테러 열흘 후 ‘i am an american’ 공익광고 캠페인이 전개됐다. 캠페인 영상은 모든 것을 초월해 하나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플루리버스 유넘(e pluribus unum. 다수로서 이룬 하나)’이라는 라틴어로 마무리되고 있다.


미국의 공익광고는 매체가 자발적으로 무료 제공하는 시간과 지면을 통해 집행되는데, 9.11 테러 이후 첫 3개월 간은 1500만달러, 이어 계속해서 1년 기간은 1억달러의 시간 및 지면이 제공됐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것을 초월해서 하나가 되는, 미국의 저력을 역력히 보여줬다.

광고 마지막 부분에는 미국기를 손에 든 흑인 소녀 사진이 있고, 미국의 표어로 익히 알려진 라틴어 ‘이 플루리버스 유넘(E Pluribus Unum. 다수로서 이룬 하나)’가 화면에 나왔다.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의 모든 방송은 즉시 오락이 있는 정규방송 및 광고를 중지했다. 당연히 방송국은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광고, 선전, 홍보, PR을 합친 그 이상의 가치

2001년 9월 11일이 있은 10년 뒤, 쌍둥이 빌딩이 서있던 바로 그 자리에는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돌담같은 기념물이 세워졌다. 그리고 첫 광고를 약간 수정한 ‘아이엠 언 어메리칸(I am an American)’이 재등장했다. 슬로건은 ‘어너, 리멤버, 리유나이트(Honor, Remember, Reunite. 명예, 기억, 재통합)’였다.

수많은 편지가 AC에 도착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쌍둥이 탑이 무너질 때 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나는 미국인입니다”는 공익광고를 보고는 울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최고의 공익광고를 방송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엠 언 어메리칸’은 틀림 없이 광고이다. 그러나 그것은 PR에 가깝다. 아니 모든 광고, 선전, 선동, 홍보, PR을 합친 개념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가져왔다. 네 낱말이 성경에 머금간다고 할 만큼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한국에는 110층 쌍둥이 빌딩도 없고 9.11 테러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 엠 언 어메리칸’ 광고도 없다. 다만, 멀리는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시작된 6.25 전쟁, 가깝게는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은 있었다. 
 



 


신인섭 교수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