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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보다 더 잔인한 언론보도
살인사건보다 더 잔인한 언론보도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3.09.25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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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저널리즘의 실종? 선정성 도 넘어

[더피알=강미혜 기자] ‘‘인천 모자 살해’ 차남 “형 무거워 토막냈다”’

귀가길 포털 기사를 훑어 보다 경악할 만한 타이틀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손가락이 해당 기사를 클릭하고 있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존속 살인 사건에 관한 <세계일보>의 기사다. 실종됐다 한 달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이른바 ‘인천 모자 살해 사건’. 어머니와 형을 죽인 범인은 다름 아닌 차남이었다. 도박빚 때문에 가족을 죽였다는 살해동기도 기막히지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잔인한 살해방법은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

▲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인천 모자 살해 사건’과 관련, 대다수의 언론들은 자극적・선정적 타이틀을 앞세워 독자클릭을 유도하는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사진은 인천 모자 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언론들의 보도 행태. (포털사이트 다음 뉴스 일부 화면 캡처)

현실 속 이야기라고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패륜적 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의 펜 끝은 무섭도록 냉정하면서 부담스럽게 교묘했다. 살해과정에서 ‘비닐과 이불에 싸인 채 여행용 가방 안에서 발견된 시신은 3등분으로 절단돼 있었고,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는 경찰의 설명을 가감 없이 인용보도 했다.

여기에 자극치를 최대로 끌어내는 제목을 달았다. 사실 범인인 차남은 형이 무거워 토막냈다는 발언을 직접 하진 않았다. 어머니와 달리 왜 형의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도저히 들 수 없어서 그랬다”고 답한 것이 기사에선 그리 표현된 것이다. 왜곡은 아니지만 클릭을 부르는 유도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언론의 보도 행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천 모자 살인사건’ 차남 구속..어머니·형 토막살해’(MBC뉴스), ‘‘인천모자 피살’ 피서객 몰리는 하천 인근서 토막난 채 모래에 묻혀 발견’(뉴시스), ‘인천 모자 살인사건, 차남이 장남 토막살해’(연합뉴스), ‘[화보]인천 모자살해 사건 피의자 ‘인상 매서웠다’’(뉴스1) 등 수십여개의 관련기사들이 봇물을 이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자극적인 타이틀을 앞세웠다.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보도인 것인지, 클릭률 올릴 언론권리를 앞세운 꼼수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에게 끼치는 해악으로 따지자면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막장보도다. 청소년의 드라마 시청은 부모가 제재라도 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손안으로 들어오는 언론기사는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언론이 선정성을 끼얹는 식이다. 더욱이 피해자의 남편이자, 가해자의 아버지가 돼버린 나머지 가족의 비통함을 헤집는 인권유린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싶다.

요즘 언론의 묻지마식 보도가 도를 넘어서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온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 보도. 공직자의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한 언론의 역할이었다고는 하지만,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몰아붙이는 기사가 연일 지면을 도배하는 것에 대해 언론권력의 오만함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던 게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장단에 맞춰 <동아일보>는 지난 17일자 신문에 ‘채동욱 아버지 前上書(전상서)’라는 제목의 ‘창작칼럼’을 실었다가 “한국 신문 사상 최고의 문제작”이라는 오명을 썼다. ‘칼럼’이라고도 표현하기 민망한 수준의 해괴망측한 ‘창작’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KBS>는 지난 7월 고(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투신 퍼포먼스를 보도하려다 공교롭게 자살을 생중계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덕분에(?) <KBS>는 언론윤리를 실종한 대표 사례로 널리 회자되며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망신을 샀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는 “언론의 자살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하며, 혹시 발생시킬지 모를 부작용을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비단 자살 관련 보도뿐만이 아니다. 모든 언론보도는 그에 따를 수 있는 ‘부작용’을 반드시 해당 언론사와 편집국, 담당 기자가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를 불러일으킨 일련의 굵직한 언론보도들을 보면 부작용을 제대로 망각한 듯하다.

살인사건 보다 더 잔인한 언론보도. 문득 대학시절 배웠던 ‘저널리즘의 가치’가 아련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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