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역사를 말하던 그들, ‘팟캐스트’ 세계에 발을 내딛다
만화로 역사를 말하던 그들, ‘팟캐스트’ 세계에 발을 내딛다
  • 이동익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3.09.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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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시백-남경태-김학원의 역사 수다 현장

[더피알=이동익 기자] 조그만 녹음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이크 두세 개. 글과 만화로 독자를 만나온 박시백 화백이 펜이 아닌 마이크를 잡았다. 조선왕조실록이 어느 사극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는 박 화백. 목소리로 책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에 어색해 하면서도 인문학자 남경태,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와 매회 조선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한두 시간 방송은 훌쩍 지나간다. 500년 조선사를 2만5000컷의 만화로 그려낸 것도 모자라 아저씨들의 수다 소재로 만들어버린 그들의 팟캐스트 현장을 찾아가 봤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팟캐스트를 출연진들. (왼쪽부터) 박시백 화백, 인문학자 남경태, 휴머니스 김학원 대표.

팟캐스트 소개를 보면 조선사 전문 수다 방송을 표방하셨는데요. 역사방송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시백 화백(이하 박화백) 사실 팟캐스트 방송은 제 의도였다기 보다는 출판사가 적극 추진한 결과인데요. 김학원 대표의 입김이 반영된 감이 커요.(웃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2077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엮어내보면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것처럼 ‘팟캐스트’ 조선왕조실록도 단순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김학원 대표(이하 김대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에 기초해 14세기 말 태조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서 20세기 초인 순종의 승하까지 500년에 가까운 조선의 정치사를 주로 다루는 역사 만화책인데요. 정사를 바탕으로 기록의 사실과 해석의 진실에 다가간 이 만화를 좀 더 흥미롭게 오디오 형태로 디지털 기록물로 만들면 일반인들이 오랫동안 두고두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습니다. 팟캐스트의 특성을 살려 좀 더 자유롭게 발언하면서 유익함에 기초해 재미를 더해보자는 취지로 만들게 됐죠.

남경태 선생님(이하 남선생) 13년이나 작업한 소중한 결과물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념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작업한 만큼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애착이 있었거든요.

▲ 인문학자 남경태.
여러 매체가 있는데 굳이 목소리로 전달하는 팟캐스트를 활용한 이유는요?


김대표 책은 결국 이야기인데 모든 이야기는 말로 전달하는 것이 설득력도 있고 재미도 있잖아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부담 없이 수다 떨듯이 이야기하려면 팟캐스트가 가장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공중파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 제약이 있으니 쉽지 않을 테고요. 40회라는 긴 분량의 조선사를 사실 어디에서 다뤄주겠어요?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담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목소리로 역사를 다루는 과정도 이에 못지않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를 통해 역사를 말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김대표 인디언들이 새로운 세대에게 조상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듯 앞선 세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역사의 차원만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고 나와 이웃, 세상을 잇는 삶의 가장 풍부한 자양분입니다. 말, 즉 목소리를 통해 화자와 청자가 하나가 되면서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우리의 지난 역사는 물론 현재와 미래의 삶과 역사 또한 훨씬 풍부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선생 시각 매체인 역사만화를 팟캐스트라는 청각 매체로 담아낸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더군요. 더구나 강의 방식도 아니고요. 그래서 역사적 분석이나 엄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역사를 재료로 삼아 여럿이서 토론보다는 수다를 떨면서 조선사 전반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에 의미를 뒀습니다. 그래서 만화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요, 지금에서 보면 적절했던 것 같아요.

조선왕조실록 같은 정사를 다루는 역사 방송은 지금까지 극히 드물었는데요. 지금까지 역사방송들은 야사나, 픽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로 인한 장단점들이 있을텐데 선생님께서 표방하시는 역사방송은요?

박화백 사실 요즘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예 픽션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사극이 그나마 낫다고 봐요. 정사를 바탕으로 말하는 정극이나 역사 프로그램들이 사실과 맞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이 방송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어버리는 게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죠. 제 방송을 통해 정사의 재미와 함께 사실을 기초로 한 역사를 제대로 아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김대표 우리 팟캐스트가 단순한 흥미를 넘어 역사를 읽는 눈과 맛을 선사하는 유익함과 재미를 겸비한 방송이 됐으면 합니다. 방송을 접한 분들의 사연을 접할 때면 아직은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아요.

남선생 오락을 내용으로 한다면 가급적 교양 있게 해야 하고, 반대로 교양이 내용이라면 가급적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 방송, 더구나 야사가 아니라 정사를 다룬다면 그 자체로 엄숙하기 때문에 굳이 방송이라는 형식에서도 그런 점을 지향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볍고 때로는 웃기는 역사 수다 방송을 표방했는데요. 내용만큼은 사실에 기초하고 진정성 있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 세 아저씨가 팟캐스트와 관련 즐거운 수다를 나누고 있다.

역사 팟캐스트를 접하는 청취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김대표 아직 시작단계라 신선하다 유익하다는 의견과 함께 산만하다는 지적도 있는 것 같아요. 조선왕조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역사를 접하는 유익함, 새롭고 다양한 시각, 재미 등이 결합되려면 좀 더 자유로워야하고 그런 점에서 다소의 산만함 역시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팟캐스트 방송, 목소리 소통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김대표 아무래도 다른 방송보다 자유로롭지 않을까요? 출연자들 역시 제약 없이 참여하고 대본에 구애 받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듯합니다.

박화백 사실 전 아직까지는 매력보다는 괜히 시작했다는 부담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데요.(웃음) 그럴 때마다 팟캐스트로 역사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곤 합니다.

남선생 텍스트는 엄정한 매체이기 때문에 정오의 문제가 중요하지만 목소리와 방송은 그보다 흐름이 중요한 것 같아요. 텍스트가 강의라면 방송은 대화입니다. 설령 경우에 따라 정오의 문제를 희생하더라도 방송에서는 대화와 토론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때로는 추측과 상상에 가까운 역사적 내용도 책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방송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같습니다.

▲ 김학원 대표.
역사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박화백 팟캐스트는 만화와 다르게 일단 녹음되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어 좀 더 신중히 하려고 합니다. 좀 더 제대로 준비하고 임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실수에 민감해졌다고 할까요?

김대표 1,2주일에 3시간 이상 녹음해야하는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아요. 오랫동안 책 만드는 일로 살아와서, 이 일 외에 무엇인가 새로운 게 추가되면 스트레스도 받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이상을 매진해온 박시백 화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고 대중성을 함께 겸비한 조선사 이야기와 남경태 선배의 입담을 직접 접할 수 있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선생 심적으로는 이런 매체도 있구나 하는 신기함과 재미가 있었고요. 생활적으로는 경제적으로 큰 이익은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몸이 더 힘들어졌다는 것?(웃음) 다만 처음부터 무기한이 아니라 40회로 한정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겠죠.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접하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도 평범한 지금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조선왕조실록은 그 시대와의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매개체인 것 같습니다. 팟캐스트 조선왕조실록은 어떤 소통의 장을 기대하고 계신가요?

박화백 팟캐스트로 기대하는 건 제 만화를 접한 독자들과의 또다른 소통입니다. 만화를 본 이들에겐 일종의 팬서비스로 받아들여졌으면 하고요, 아직 보지 않은 이들에겐 조선사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역할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대표 조선사 500년은 오늘의 우리를 만든 뿌리와 같아요. 하지만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조선의 역사는 너무 멀게 느껴지거나 너무도 다양한 야사들이 횡횡해서 사실적이고도 맥락적인 소통은 취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역시 우리가 지닌 세계적인 기록유산이지만 방대한 양으로 접근성이 떨어져 그 가치를 우리 스스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든요.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조선왕조실록의 가치와 함께 500년 조선왕조시대에 대한 생생한 이해가 높아졌으면 합니다.

남선생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겠죠. 그래서 기본 틀로는 조선 왕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되, 역사에서 오늘의 시사와 연관되고 접목될 수 있는 것은 팟캐스트를 통해 다룰 수 있다고 봤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매체’로 오늘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팟캐스트 하는 모습.

흔히들 지난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본다고 하는데요. 조선왕조실록이나 10여년의 작업 끝에 나온 만화 조선왕조실록, 또 팟캐스트까지 우리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소통할 수 있을지요?


김대표 지난 역사를 오늘, 그리고 미래의 자양분으로 삼으려면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겉으로 대략 보면 역사를 읽는 맛도 제 맛을 모를뿐더러 오늘과 연결된 가치의 발견도 쉽지 않습니다. 동일한 사건, 시대, 인물들을 놓고 그 시대적 맥락이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좀 더 깊게, 그리고 다양한 눈으로 보는 경험을 이번 팟캐스트를 통해 교감할 수 있다면 최상의 결과일 겁니다.

남선생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보려면 무엇보다 역사 비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잘못된 관행 가운데는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진 게 많은데요. 예를 들어 지금 대학입시나 고시, 공무원 임용시험, 승진시험 등 시험 만능주의가 횡횡한 데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과거제가 천 년 이상 관리 임용제도로 통용되었기 때문이죠. 역사를 거울삼아 오늘을 비추려면 비판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단문형태의 SNS 소통이 주가 되고 목소리가 사라진 시대에서 목소리 소통, 더군다나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역사를 들고 나오셨는데요. 목소리 소통이 가지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또 요즘 시대의 소통에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시는가요?

김대표 거듭 말씀드리자면, 이야기의 핵심은 조금 더 긴 호흡, 한발 더 깊은 이해와 탐구, 폭넓은 시야의 확보와 맥락에 대한 관찰 등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거두절미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건 그 사람과의 소통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됩니다. 왜곡과 오해만을 낳죠. 선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가 아니라 좀 더 깊고, 좀 더 넓게 볼 줄 아는 이해의 과정이 이 시대의 소통법에서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남선생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소통이 필요없다고 여기는 개인과 집단이 많은 것 같아요. 소통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태도는 대개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됩니다. 종교적 근본주의, 정치적 극우나 극좌 이념 같은 게 그런 예죠. 역사적으로 봐도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 자들, ‘경전’을 가진 자들은 항상 소통을 무시하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사회 진보를 위해서도 소통이 중요하지만 그런 오만을 꺾기 위해서도 소통은 중요합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출연진 are... 

박시백 화백
   KBS 역사드라마인 <왕과비>를 통해 조선사의 재미를 느끼게 된 그는 2001년 다니던 신문사를 돌연 그만두고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엮어보자는 거창한 포부로 조선왕조실록 작화에 매진하게 된다. 조선시대 사관의 심정으로 글로 된 역사를 만화로 풀어 쓰는 이 작업은 10여년만에 20권의 책으로 완성됐다.
남경태 선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남경태 선생은 ‘제국주의론’, ‘공산당선언’ 등을 번역하며 사회과학 출판을 시작한 이후 현재는 역사와 철학 분야의 책들을 집필, 번역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학자다. 130권의 번역서와 저서가 있으며 방송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학원 대표  현재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대표이사로, 1992년 인문사회과학출판사인 새길에 입사하며 출판계에 입문했다. 전문 편집장의 육성에 초점을 둬 인문, 역사, 청소년, 어린이, 교양만화 등 5개 출판 부문에서 책임편집자 제도를 도입해 역사만화서적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 300여종의 교양서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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