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눈을 감은 사이, 세상이 성큼 다가온다
당신이 눈을 감은 사이, 세상이 성큼 다가온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10.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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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전시 ‘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더피알=이슬기 기자] “제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오세요.”

일상적 공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몇 명이나 소리에 의지해 그의 위치를 가늠할까? <어둠속의 대화>는 당연하다고 여겨온 오감을 리뉴얼하는 계기를 주는 전시(展示)다. 아니, 보는 것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결국 ‘어떤 것’을 보여주는 체험전시다.

캄캄한 어둠 속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관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하얀 지팡이와 길을 인도해주는 로드마스터, 허공을 더듬어 만지거나 간혹 소리 내어 위치를 확인할 일행뿐이다.

한걸음 내딛기가 이토록 조심스러웠던가. 막연함을 견디다보면 새삼 다른 감각들이 기지개를 편다. 손끝에 닿는 무엇의 질감에, 뺨을 스치는 바람에, 내 혀에 닿는 액체에 이만큼 집중해 본 적이 있었나 싶을 것이다.
 
간혹 손에 닿는 일행의 온기가 무척이나 반갑다. 시각을 내려놓았을 뿐인데 시공간이 한꺼번에 새로워지는 체험이 된다. 그 안에서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여럿이 함께 체험해도 반응은 제각각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갑자기 시력을 상실한 사회를 그린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를 기억하는지. 혼돈 속에서 서로가 신뢰를 회복하는 순간 기적처럼 눈이 떠지는 마지막 장면, 체험이 끝나는 순간 우리도 잊고 지낸 그 무엇을 하나쯤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시작한 <어둠속의 대화>는 전 세계 25개국에서 진행 중이며 이미 약 750만 명 이상이 다녀간 검증된 체험전시다.

올 초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방문객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주최 측의 관여 없이 무작위 추출한 관람객의 90% 이상이 만족했고 그 중 20대의 만족도는 100%로 나타났다. 가족, 친구, 동료 등 지인들과 함께하길 추천한다. 성인 3만원, 청소년 2만원, 신촌 버티고타워 9층, 문의 02-313-9977


 인터뷰
 송영희 엔비전스 대표
느려야 느낄 수 있는 감각과의 만남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독일 안드레아 하네케(Andreas Heinecke) 박사가 방송국에서 PD로 일할 때, 주변에 사고로 시력을 잃은 동료가 있었데요. 그 사람의 재활치료 과정도 지켜보고 하면서 직장으로 복귀해 그의 방식으로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똑같은 일상이지만 보지 않고 느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거죠. 처음엔 작은 창고에서 카페 콘셉트의 공간으로 시작한 게 입소문이 나서 전시의 틀로 자리 잡았고 전 세계 25개국에서 25년째 진행되게 됐죠.
한국에서는 2007년부터 단기로 몇차례 진행됐었고, 2010년에 상설전시장이 만들어졌어요. 운영을 맡고 있는 엔비전스는 시각장애인들의 문화예술지변확대도 함께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죠.

관객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떤 편인가요?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많이들 다르세요. 들어갈 땐 컴컴하니까 두려워하는 분도 계시고 성격 급한 분들은 짜증내고 답답해하기도 하시죠. 하지만 나올 땐 생각이 깊어져서 나오시는 것 같아요. 안에서의 경험들,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의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믿음도 있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면도 있으니까요. 자기 안에서 생겨나는 어떤 변화가 있는데, 대체로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실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봐왔던 것들을 반추하고 그러다보면 스스로를 다시 보고. 생각할 계기가 됐다, 의미있었다, 재미있었다는 분들이 많아요.
아, 재밌는 게 미국에도 같은 전시가 진행되고 있어요.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로드마스터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이 “당신 흑인인가요? 백인인가요?”래요. <어둠속의 대화>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계기도 되겠죠.

<어둠속의 대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바라는 바가 있을까요?

보통 우리는 마음이 너무 급해서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을 헤아리려는 시간을 갖기 어려운 것 같아요. 세상이 급하게 돌아가다 보니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지 않는 거죠. 보고 바로 판단하는 직관 같은 게 높게 평가되고요. 특히 사람을 볼 때 어떤 기준에 좌지우지되고 여유가 없어 바로 판단을 해버리죠.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기준을 의심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저희 전시를 통해서 주고 싶어요. 그 시각으로 누군가를 꼭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 소원했던 사람들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컴컴한데 사고가 나거나 위험한 일은 없었는지?

전 세계적으로 25년 가까이 전시가 진행됐지만 큰 사고는 한번도 난 적이 없어요. 서로 살짝 부딪치는 정도는 있지만. 그도 그럴게 굉장히 조심스럽게 천천히 걷거든요. 저는 그 속도가 느린 게 아니라 어쩌면 사람이 가진 다섯 가지 감각으로 내 주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속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너무 빨리 걸으면 온전히 세상을 느낀다기보다는 스쳐지나가는 편에 가깝다고 보거든요. 뭔가 만져지면 만져보고, 느껴보고, 생각하고, 느린 걸음으로 가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잠시 좀 느리게, 천천히 볼 수 있는 여유들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전시를 소개하는 이미지가 없다보니 호기심을 증폭시키는데요. 관객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다들 느끼는 부분이 너무 다르세요. 가장 중요한 건 각자 느끼는 게 다르다는 점이죠. 그 자체가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니까요. 잠깐 시간을 멈추고 세상을 차분히 볼 수 있는 시간, 자신을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90분이 정말 금방 지나간다고 느끼실 거예요. 아, 혹시 특별한 프로포즈를 원하시는 분들은 미리 귀띔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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