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게 ‘매운 맛’을 보여라
소비자에게 ‘매운 맛’을 보여라
  • 김지헌 세종대 교수 (admin@the-pr.co.kr)
  • 승인 2013.10.1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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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의 브랜딩 인사이트

[더피알=김지헌] 필자는 얼마 전 오래 전부터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 담아두었던 방콕여행을 다녀왔다. 쇼핑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마케팅 교수라는 직업상 해외 도시를 방문할 때 꼭 가보는 곳이 그 지역의 유명한 쇼핑몰이다.

방콕은 마스타카드가 2013년 실시한 글로벌 여행도시 조사(Global Destination Cities Index)에서 1위로 선정될 만큼 세계에서 쇼핑과 먹거리의 천국으로 잘 알려진 도시다.  이 때문에 각별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 동안 방문할 쇼핑몰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 방콕 시내 쇼핑몰 '터미널21' 내부.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daina)

여행안내 책자에는 씨암역(Siam) 주변에 대규모의 쇼핑몰(씨암파라곤· 씨암센터·씨암디스커버리·마분콩 등)을 소개하고 있지만 필자는 대규모의 쇼핑몰보다는 아쏙역(Asok)에 따로 떨어져 있는 터미널21(Terminal 21)이라는 쇼핑센터에 더 눈길이 갔다. 공항터미널의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쇼핑몰이라는 소개글을 읽고 대규모의 쇼핑몰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차별화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곳이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터미널21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는 입장하는 고객들의 가방 검사를 하고 있었다.(태국, 필리핀 등의 동남아 지역에서는 지하철역, 쇼핑몰 등에 들어가기 전 폭발물을 확인하는 보안절차를 거친다) 보안검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흰색 파일럿 옷을 입고 있어서 마치 출입국 심사를 받는 듯 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화려했지만 메시지가 빠진 ‘터미널21’

또한 각층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입구에는 파란색 간판에 흰색 글씨로 특정국가의 출국장 또는 도착장(예, ARRIVAL AT LEVEL 1 TOKYO)을 표기해둬 각 층에 어떤 이색매장들과 이벤트들이 펼쳐질지 잔뜩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터미널21은 이름과 모양만 흉내를 냈지 실제 붕어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붕어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층별로 국가별 특색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조금은 느껴졌지만 소비자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필자의 눈에는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매장간의 유기적인 협력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터미널21이 비록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600여개에 이르는 매장의 대부분이 국내외 젊은 디자이너들의 독특한 디자인숍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은 기존 쇼핑몰들과 차별화된 다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지난달 TV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 일본 교토지역 무코(向日)시에 위치한 게키카라 상가는 매장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로 브랜드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었다. 게키카라는 격신(激辛)의 일본어 표기로 아주 매운 음식들을 파는 상점들이 몰려있는 상점가를 칭한다. 이 지역의 상점들은 현대식 대형할인 매장과 경쟁하기 위해 ‘매운 맛’이라는 독특한 브랜드 콘셉트를 개발해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 일본 교토지역 무코(向日)시에 위치한 게키카라 상가는 매장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로 브랜드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다룬 kbs 방송 화면 캡처.

브랜드 콘셉트가 결정된 후 모든 음식점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매운 메뉴를 개발했으며, 심지어 떡집조차 매운 맛을 단계별로 구분한 신메뉴를 만들어 판매했다. 또한 게키카라의 매운맛을 상징할 수 있는 고추모양을 한 캐릭터를 개발하고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면서 캐릭터모양의 인형 옷을 입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방문객과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소비자들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키카라 상가의 방문객들은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매운 메뉴를 주문할 경우 도장을 하나씩 얻게 돼 6개의 도장을 모아오면 휴대폰 고리와 같은 작은 기념품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매년 3월 개최되는 매운 음식 먹기 대회를 통해 게키카라 상가의 강력한 매운맛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게키카라는 이러한 매장들의 다양한 협력활동을 통해 관광자원이 전혀 없는 무코시를 관광명소로 만들 수 있었다.

대형 할인매장에 없는 일본 게키카라(激辛)의 ‘매운맛’

게키카라 상가가 터미널21과 달리 소비자의 뇌리에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강력한 콘셉트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소비자가 쇼핑몰에서 접하는 모든 브랜드 접점(개별 매장)에서 한결 같은 목소리(매운 맛)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터미널21에 있는 각 층의 매장들이 각층이 상징하는 국가의 독특한 이미지를 일관성 있게 커뮤니케이션 했다면 어땠을까? 또 꼭대기 층에 있는 푸드코트의 점원들이 승무원 복장을 하고 기내식 콘셉트의 음식을 제공한다면 어땠을까?

만약 각 층을 돌아다니며 세계 6개국 이상의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 중 만남의 광장 또는 이별의 다리에서 추첨을 통해 실제로 무료 비행기표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였다면 어땠을까?

다소 유치해 보이는 상상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터미널21의 브랜드 콘셉트를 지금보다는 더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매운 맛’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케키카라 상가에 대해 자발적으로 홍보를 해준 것처럼 말이다.



김지헌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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