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표(辭表) 얘기 좀 해볼까요?
우리, 사표(辭表) 얘기 좀 해볼까요?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10.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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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출판연대 ‘절망북스’

[더피알=이슬기 기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은장도처럼 은밀히 품고 있다는 사표. 차마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그 이름을 아예 표제로 한 책이 출간됐다. 사표에 드리운 어둠의 아우라를 걷어내고 싶다는 비정기간행물 <사표>, 벌써 두 번째 이야기로 지난해 나온 첫 번째 <사표>는 이미 절판돼 최근 전자책으로 재출간됐다. 이 발칙한 책을 만든 곳은 ‘절망북스’, 임프린트 ‘9여친북스’까지 거느린 소규모 출판연대다.

다양한 필자가 참여해 총 16꼭지로 이루어진 <사표:두 번째 이야기>(이하 <사표> 2권)는 사표를 종용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사표를 둘러싼 엄숙한 기운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감성 뚝뚝 떨어지는 어조로 사표 낸 사연과 고민을 털어놓다가도 ‘엄마가 ‘계’하지 말래서 인수인계도 안할 거예요’라며 사표 후 엄습하는 애매한 공기를 발랄하게 짚는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이직의 달인이 다가와 묵직한 조언을 건네고 떠난 자리에 사표 천재 이대리가 나타나 법조항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퇴직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리하여 에세이이자 실용서로도 손색없는 <사표>를 출간한 ‘절망북스’의 신미경(30), 이한나(26), 박영경(25) 씨를 만나 책에서 못다 푼 ‘썰’을 풀어봤다.

▲ (왼쪽부터)‘절망북스’의 멤버 박영경 씨, 신미경 씨, 이한나 씨.
‘절망북스’라니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데, 어떤 집단인가요?
한나 ‘절망북스’를 시작하던 즈음 <아프니까 청춘이다> 부류의 책들이 잘나가고 있었어요. 진짜 청춘들의 얘기는 빠진 수박 겉핥기식 청춘담론이 주입하는 막무가내 희망에 불만이 많았죠.(웃음) 그러다가 ‘그럼 우린 차라리 절망을 얘기해보자!’는 생각에서 의기투합하게 됐어요.

미경 그런 책들은 구조적 문제는 보지 않죠. 사실 절망이란 그게 여러 면에서 하강하는 사회를 살아야하는 우리세대의 현실이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우리시대의 절망을 말하고, 암울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가 직시하겠다는 뜻이기도 해요.
‘절망북스’는 느슨한 멤버십을 가진 모임인데요. 저희를 비롯해서 대부분 출판업에 종사하는 7~10명 정도의 구성원이 있어요. 각자 여력이 될 때 별도의 보수 없이 힘을 모으는 성긴 구조죠. 단, 하나의 책은 아이디어를 낸 한 명이 책임지고 제작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돌아가요.

영경 ‘9여친북스’는 ‘절망북스’ 임프린트예요. 일단은 저 혼자 하는.(웃음) 아직 할 말이 너무도 많은  9여친의 폭풍감성 에세이 <9여친1집>을 출간했죠.

표제로 정할만큼 사표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미경 <사표:첫 사표>(이하 <사표> 1권)는 제가 기획해서 발행했는데요. 일단 <사표> 1권을 내던 지난해에 제가 사표를 냈고요.(웃음) 진지하게 사표를 고려하면서 보니까 사표 자체를 직시하는 얘기는 없더라고요. 사실은 모두 고민하면서 아닌 척하는, 일종의 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번 재밌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보자 싶어서 시작했고 퇴직금 털어 제작했지만(웃음) 과정이 즐거웠어요.

한나 2권은 제가 발행인인데요. 저도 역시 2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기 때문에…(웃음) 1권이 미경언니의 색깔대로 발랄하게 갔다면 2권의 제 성향에 따라 약간은 진중한 스타일로 만들어졌어요.

영경 저는 두 권 다 필자로 참여했어요. 두 번 다 마침 사표를 내고 옮기고 나서 글을 쓰게 됐었는데요.(웃음) 그래서 할 얘기도 많았죠. 저는 사표를 쓸 때,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 살려면 일단 나가야겠구나. 이런 심정이었거든요. 근데 친구들이랑 얘기하다보면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같이 고민하는 건데 즐겁게 얘기나 한번 해보자, 이런 시도였어요.

▲ ‘절망북스’의 출판물과 지인이 그려줬다는 발행인들의 캐리커처 명함이 잘 어울린다. (왼쪽부터) 박영경 씨가 발행한 <9여친1집>, 이한나 씨가 발행한 <사표:두 번째 이야기>, 신미경 씨가 발행한 <사표:첫 사표>와 <사우스 이스트 런던에서 일주일을>.

<사표>를 받아본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미경 <사표>는 SNS로 사전 주문받은 분량을 직접 배달을 다녔어요. 다양한 사무실을 가봤죠.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 정도 되는 분들이었는데, 각자의 일상에서 살고 있지만 조금만 얘기를 나누다보면 결국 재취업, 사회적 안전망 등이 주제가 됐어요. 신기할 정도로 한곳으로 흘러가고 있었죠.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걸 함께 말할 기회가 없었구나 체감했어요.
또 재밌는 건 책을 낸 후 다른 세대들의 응답이었어요. 제가 <사표> 1권을 조용히 냈는데 전 회사 이사님이 <한겨레신문>에 나간 기사를 보고 전화를 주셨어요. 나에게도 3개의 사표가 있었다며 힘내라고 응원해주셨죠. 우리의 작업이 다른 세대들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그때 생각하게 됐어요.

한나 그래서 2권은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어요. 다양한 연령과 상황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모아 결국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죠. 아, 처음 책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표를 내라고 충동질할 거라고 예상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다소곳한 책이거든요.(웃음) 독자들도 마냥 충동질이 아니라서 좋다는 반응들이 많았고요.

<사표>를 만들면서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영경 대단한 메시지 그런 건 없었는데…(웃음) 제가 글에 쓴 것처럼 새로운 회사에서 면접 보면서 ‘수틀리면 나갈 거예요’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열심히 일하고 싶어서 어렵게 취직하는 건데 사표 내려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없죠. 전 이직이 좀 잦은 편이었지만 사표 내는 거, 아프거든요. 어떻게 보면 ‘절망북스’의 미덕은 자기감정에 주목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사회생활하면서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우리는 꺼내서 소리치는 거죠. 근데 그러고 나면 우리 마음에 다른 사람들이 대답을 해주는 느낌이랄까요.

미경 다들 없는 척하는데 사표를 낼 수밖에 없는 갈등구조가 있다는 거, 그게 현실이고 거기에 우리가 직시하는 절망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사표>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예요. 애초에 끝을 내려고 만든 책도 아니지만요. 아, 전 회사 사장님이 책을 보시고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넨 사표를 낼 수 있지만, 나는 사표도 못 낸다’고. 그래서 <폐업>도 기획해볼까 생각중이에요.(웃음)

‘사표를 내는 우리는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사표> 1권의 한 구절이다. 이들의 재기발랄한 수다에 적지 않은 이들이 공감한 이유가 담긴 구절이 아닐까. ‘절망북스’의 책들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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