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쪽으로 한걸음, 사랑의 민낯
진실 쪽으로 한걸음, 사랑의 민낯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11.01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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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연극 <클로저>

[더피알=이슬기 기자] # 제발 진실을 말해달라고 그가 그녀를 몰아세운다. 거짓말을 할 수도 진실을 말할 수도 없다는 그녀의 대답이 처절하다. 집요하게 캐묻는 그에게 그녀는 결국 털어놓는다. 그가 원했지만, 그의 기대와 다른 진실을.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울부짖는 그에게 그녀는 사랑의 종말을 선언한다.

“보여줘. 사랑이 어딨는데? 난 어딨는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데. 아, 좀 들리기는 한다. 무슨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이제 네가 하는 그 말은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어.”

그는 그녀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횡단보도에 마주서 서로를 응시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그녀가 처음 그에게 건넸던 한마디, “안녕, 낯선 사람!”도.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었을 때 둘은 사랑에 빠졌다. 상대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사랑은 비릿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아니, 거기에 그런 게 있기는 했을까.

▲ 연극 <클로저>의 한 장면.

여기까지가 소설가를 꿈꾸며 부고기사를 쓰는 댄과 스트립댄서 앨리스의 이야기. 여기에 사진작가 안나와 의사 래리 등 4명의 남녀가 얽히고설켜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의 순간들을 그려나간다. 특정 장면을 짚어내긴 했지만 연극 <클로저>는 전반적으로 어떤 순간에 집중한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사랑을 키워가는게 보통의 판타지라면 작품은 그 거품을 쫙 뺀 현실의 순간들을 늘어놓는다. 너의 진실을 알고야 말겠다는 댄이 그랬듯 사랑의 민낯을 짚어보고 그 게임에 놀아나는 우리의 이기심을 직시하겠다는 시도로 봐도 무방하겠다.

<클로저>는 영국의 젊은 극작가 패트릭 파버의 작품으로 1997년 런던에서 초연됐지만, 우리에게는 2004년 마이클 니콜스 감독에 의해 제작된 동명의 영화로 친숙하다. 안나 역에 줄리아 로버츠, 댄 역에 주드 로, 앨리스 역에 나탈리 포트먼, 래리 역에 클라이브 오웬 등이 출연한 영화 <클로저>는 감각적인 화면과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지금까지 심심찮게 회자되는 작품이다.

▲ 연극 <클로저>의 한 장면.

무대로 돌아온 <클로저>의 가장 큰 볼거리는 쫄깃한 대사와 인물들의 팽팽한 감정선, 간헐적으로 터지는 유머는 덤이다. 오래 남는 명대사의 화수분이 될 만한 작품이다. 무대를 즐긴 후에는 제목 ‘closer’를 곱씹어 볼 필요도 있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관계가 근접해지지만(closer) 동시에 그로 인해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closer)이라는 중의적인 뜻에 대해.

앨리스 역에 이윤지, 진세연, 한초아, 댄 역에 신성록, 최수형, 이동하, 래리 역에 서범석, 배성우, 김영필, 안나 역에 김혜나, 차수연이 오른다. 12월 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3만원 ~ 6만원.


 


웃기다 못해 처절한 사랑의 코미디

연출자 입장에서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클로저>는 사랑에 관해 숨기고 싶은 기억들을 끌어내는데, 무엇보다 기가 막힌 대사들이 일품이다.

영화의 팬이 많은 작품으로 알고 있다. 연극만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점이 있다면?
연극 <클로저>는 코미디다. 사랑의 비극이 코미디라는 것. 남들의 비극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각 인물들의 선택이 납득이 가게 그리려고 노력했고, 상황이 잘 보이도록 무대 연출에 신경을 썼다.

감정선이 팽팽한 작품인데 이를 잘 살리기 위해 사용한 장치들은?
댄이 안나를 되찾기 위해 래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무대에 비가 쏟아지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도 비가 내리는데 무대에서 창문을 통해 비가 쏟아지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으려고 부질없는 노력을 해대는 인간의 나약함을 부각시키려 했다. 무대 위에서 인물들은 소리 지르고 비꼬고 울어대지만 어쩔 수 없는 무대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작품 이해를 돕기 키워드를 몇 개 꼽아준다면?
먼저, ‘사실과 거짓’. 각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때로는 사실을 집요하게 원하고 때로는 거짓을 강요하기도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 자기 위주로 때에 따라 사실이나 거짓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 앞에 진실하기를 맹세한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유심히 본다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또 ‘뉴턴의 요람’을 살피면 좋겠다. 앨리스는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한 두 남자에게 똑같은 선물, 뉴턴의 요람을 선물한다. 사랑의 진자가 오고 가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 클로저와 무슨 상관관계를 가질지 생각해본다면 작품의 미스테리함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클로저>는 사랑의 무엇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랑의 시작과 끝만을 이야기하거나 기억한다. <클로저>는 사랑의 과정을 유추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랑에 근접해 들어간다.

작품을 보러올 관객들에게 한마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 첫눈에 이끌리는 사랑을 해보고 싶은 사람, 사랑 때문에 바닥을 쳐 본 적이 있거나 그런 것에 판타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배우들의 연기에 이끌리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연극의 진미는 역시 무대 위에 펼쳐지는 배우들의 진솔한 연기일 것. 많은 기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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