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오로라에 미쳐, 생애 최고의 오로라를 찾아
어쩌다 오로라에 미쳐, 생애 최고의 오로라를 찾아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11.13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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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천체사진전문가 권오철

[더피알=이슬기 기자] 오묘한 색감의 섬광이 하늘을 출렁인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영화의 한 장면 인 것 같지만, 태양의 부스러기가 지구의 자기장을 만나 빚어내는 장관이다. 이 황홀경에 홀려서 잘 다니던 회사도 때려 치고 한 몸 던진 이가 있었으니, 천체사진전문가로 활동하는 권오철 작가다. 최근 <신의 영혼 오로라/씨네21북스>를 펴내고 지난여름에는 SBS 다큐멘터리 스페셜 <오로라헌터>에 출연한 그를 만났다.

▲ <사진제공 = 권오철 작가>

지구에 사는 이 많은 사람 중에 천체사진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열명이 채 되지 않는다. 산악사진가, 종군기자에 비해도 현저히 적은 수인데 그만큼 수요가 적다는 뜻이다.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동호인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척박하다. 그의 책 첫 장과 블로그 제목 ‘사진가로 살아남기’가 다시 보인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태형 교수의 <재미있는 별자리여행>을 읽으며 천문키드의 삶을 시작했다는 그는 대학에서 천문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이때부터 찍은 천문사진은 대학 졸업 즈음 개인전을 여는 수준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십여 년, 사진을 팔고 칼럼을 쓰기도 하며 천체사진가로 활동했지만 생계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던 차였다.

그 때, 오로라 여행을 가게 됐고 모든 건 오로라 여행에서 비롯됐다. 2009년 12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온다. 캐논과 캐나다 관광청에서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원정대 행사를 진행하는데 천체사진전문가로 함께 해달라는 것. 그로서는 자비를 들여서라도 갈 판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회사원에게 연말 일주일은 큰 공백이었고 돌아온 회사는 그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가뜩이나 고민이 많았는데 회사가 괴롭혀준 덕분에 ‘방아쇠는 당겨졌’다. 권 작가는 그길로 사표를 내고 이듬해 1월 1일부터 전업 사진가의 길을 걸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근무해온 그는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행복은 백 배 이상’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방아쇠는 당겨졌’지만 후회는 그날 밤부터 찾아오지 않던가요?(웃음)
원래 사표내고 나면 그날 밤에 온갖 잡생각이 다 들잖아요. 근데 그날 밤에 마음이 너무 편하더라고요. 아, 진작 했어야 하는 걸 이제야 하는 구나 싶었어요. 살면서 두 번째로 잘한 일이라는 느낌이 왔죠. 첫 번째로 잘한 일은 제 아내와 결혼한 거고요.(웃음) 그리고 일단 퇴직금 들고 평소 가고 싶었던 킬리만자로에 다녀왔어요.

오로라 여행의 어떤 점이 사표를 쓰게끔 했나요?
처음 오로라를 본 감흥은… 그냥 저게 오로라구나.(웃음) 함께 여행 갔던 사람들의 면면이 신선했어요. 전 22살 때부터 회사에 다니기 시작해서 15년 가까이 쉼없이 직장생활을 했거든요. 근데 거기 온 사람 중에 직장인은 저뿐이더라고요. 사진가, 만화가 블로거 등 다양했는데 월급을 안 받아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럼 오로라에는 언제 감동을 받으셨는지.
두 번째 오로라를 보러갔을 때 오로라 서브스톰(auroral substorm, 격렬한 오로라 활동)을 처음 만났어요. 하늘에 빛이 폭풍처럼 몰아쳐서 확 밝아지는데 땅 위 눈이 빛에 반사돼서 같이 빛나요. 위아래로 다 빛나는데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같달까요.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렇게 격렬한 오로라를 보고 있으면 어떤 느낌일지 짐작이 잘 안 되는데요.
남자랑 여자랑 감동하는 주파수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일단 여자 분들은 거의 다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이걸 라디오 방송 같은 데 나가서는 카타르시스라고 에둘러 표현하는데, 사실은 오르가즘이랑 가장 흡사해요. 기혼자들끼리 얘기해보니까 다들 그렇다고.(웃음) 지상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분을 하늘을 보면서 느끼는 거죠. 서브스톰은 엄청 세요. 감동이다. 뭐 이런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압도되죠.

아, 오로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아직까지도 밝혀내지 못한 게 있는데요. 극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은 아주 세게 오로라가 몰아치면 오로라 소리가 들린다고 말해요. 그 얘기를 한 지역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고 멀리 떨어져 교류가 없는 부족들도 공통적으로 하는 거죠. 과학자들이 아무리 마이크에 카메라를 설치해도 못 잡아내고 있죠. 근데 왜 일본에서 아이들이 포켓몬스터 만화 보다가 기절한다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변신할 때 막 빛을 쏘잖아요. 애들은 시신경이 아직 덜 발달했는데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와서 시신경에 부하가 걸려서 기절하는 거래요. 그런데 청신경이 시신경 바로 옆에 있다는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가장 신빙성 있는 학설은, 시신경 과부하로 인한 환청. 오로라를 볼 때 빛덩이가 막 춤을 추니까 시신경 자극이 폭주해서 과부하가 걸려서 청신경에 신호를 주는 게 아닐까, 환청 같은 현상 아닐까 추측하는 거죠. 아무리 마이크를 갖다 대도 안 잡히는데 사람들은 자꾸 들린다고 하니까. 흥미롭죠.

▲ 처음 만났던 오로라 서브스톰을 어안렌즈에 담았다. 30초 간격으로 촬영했는데도 굉장히 역동적이다. 가슴이 떨려 카메라를 미리 세팅해 두지 않았다면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진은 2010년 미국 nasa의 오늘의 천체사진(apod, 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선정됐다. <사진제공 = 권오철 작가>
그걸 두 번째 갔을 때 보셨어요? 그런 서브스톰은 자주 있나요?
캐나다 옐로나이프(오로라 관측 최적지)에서 한 1~2주 있으면 서브스톰은 볼 수 있어요. 근데 환청을 느낄 정도로 넋 빼놓는 건 일 년에 몇 번 안 되니까. 그걸 보려면 3대가 덕을 쌓거나 아예 거기 살아야…(웃음)

그런 걸 보실 때 사진가와 관측자로서의 입장이 충돌되진 않으세요?
오로라를 볼 때 항상 후회해요. 상황이 좋았을 때 왜 이렇게 밖에 못 찍었을까 싶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도 그렇게 됐으면 별로 후회가 없을 텐데, 예보도 별로 안 좋아서 장비 준비도 안하고 있다가 확 놓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 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데, 굉장히 아프죠. 최고의 순간은 언제나 짧거든요.

한 번은 비오고 날이 엄청 흐려서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엄청 센 서브스톰이 뜬 거예요. 부랴부랴 차를 타고 달려 나가는데 하늘에서 오로라가 막 쏟아지고… 일단 차를 세우고 고개를 박고 장비를 설치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그냥 봤어요.(웃음) 그리고 좀 센 서브스톰 앞에선 제 정신으로 셔터누를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별로 없어요. 일행들 상품 걸고 그래도 잘 못하더라고요. 워낙 압도적인 풍경이라, 저도 미리 설치해놓고도 늘 사진을 보면 아쉬워요.

그런 면에서 오로라는 저같이 좀 무딘 사람이 찍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형용사 없는 공돌이 감성이다 보니 웬만한 걸로는 감동이 별로 없거든요.(웃음) 

오로라를 여러 번 보셨는데 또 가고 싶으세요?
일단, 누가 그런 말했잖아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캐나다 옐로나이프에만 6번 갔는데 아직 목마르고요.(웃음) 오로라는 똑같은 색으로는 두 번 다시 안 나타나요. 볼 때마다 처음보는 오로라인 거죠. 구름이 그런 것처럼 지문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또 더 센 게 있고. 아직 봐야할 더 센 오로라와 별들이 많아요. 

죽기 전에 봐야할 세 가지 천문현상으로 개기일식과 대유성우, 오로라를 꼽으셨고 작가님은 다 보셨잖아요. 그런 풍경이 하나만 있어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최고의 순간은 항상 짧다. 할 수 있을 때 안하면 못하는 거다. 뭐 이 정도랄까요. 한 20년 천체사진을 찍으면서 매번 느끼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도 어떤 날 하늘이 진짜 좋다, 그런 맑은 날은 딱 하루밖에 안가요. 이틀 가는 경우가 거의 없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생이 굉장히 짧아요. 올 여름 엄청나게 더웠잖아요. 이렇게 더운 여름도 사실 몇 번만 지나면 훌쩍 50대가 되고 제 평생에 여름은 이제 한 40번밖에 안 남았어요. 그런데 제가 여름에 뭔가 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하면 기회는 더 적어져요. 제가 보통 카메라를 3~4대 들고 다니는데 체력 떨어지면 못하잖아요. 그렇게 보면 지금의 의지와 체력으로 제대로 살 수 있는 날이 정말 짧아요. 광대한 우주 속에서 아주 짧은 순간을 살다 가는데 후회 없이 살아야죠. 언젠가 별부스러기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주적 관점에서 현실의 어려움은 별로 안 느끼시나요?(웃음)
현실적 어려움은 항상 돈이죠 뭐. 천체사진이 수요가 워낙 적은 작업인데 장비값은 많이 들어가잖아요.(웃음) 올 초에 많이 힘들었는데 지난번에 방송촬영차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 파도에 맞아서 600만원어치를 해먹었거든요. 보릿고개 넘느라 엄청 힘들었어요. 그런데 돈이라는 게 없으면 안 쓰게 되니까, 일단 지금은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기도 하고. 제가 수입이 좋아야 아내도 그만둘 텐데요.(웃음) 돈도 안 되고 힘든 직업이에요. 힘든 직업.

그런데 왜하고 계세요?(웃음)
그러게요. 왜하고 있죠? 제가 형용사가 없는 삶이다보니까… 뭐, 그냥 거기에 별이 있으니까 보러 가는 거예요. (웃음)

▲ 2009년 12월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 원정대들과 한 컷. 맨 왼쪽이 권오철 작가.

형용사 없는 공대출신, 그가 책에 남긴 담담한 당부를 한 구절 옮겨본다.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려니 참으로 어렵다. 그대, 일생에 한 번은 오로라를 만나보라.” 마침 나도 오로라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에서 어떤 섬광을 본 것 같다.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려니 참으로 어렵지만, 그 눈빛을 본 순간 그가 출연한 방송 제목 ‘오로라헌터(aurora hunter, 오로라 사냥꾼)’에 절로 수긍이 갔다.

우리에겐 귀한 장관이지만 사실 극지방에는 오로라가 늘 있다. 태양의 활동에 따라 시기를 타는데 2년 전에 극소기가 끝나 앞으로 한 5년 정도는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은 극대기가 이어진다. 여름시즌과 겨울시즌 우리나라에도 오로라를 보기 위해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떠나는 상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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