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자 거부한’ PR학계 개척자들
‘대나무 자 거부한’ PR학계 개척자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12.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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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학회] 학계 원로와의 대화 이모저모

[더피알=이슬기 기자] “원로 교수님들 모시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국PR학회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한국PR학회의 ‘원로와의 대화’ 섹션 사회를 본 신호창 서강대 교수는 이 같은 감회를 전했다.

한국PR학회는 지난달 29일 이화여자대학교 ECC에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계, 업계를 이끌어 가는 전문가들의 논문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세션이 있었다. ‘원로와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PR학회 1대 학회장 윤희중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박기순 성균관대 명예교수, 최윤희 전 수원대 교수, 오인환 전 연세대 교수 등 학회와 한국PR학의 기틀을 닦은 원로들이 한정호 연세대 교수, 안보섭 숙명여대 교수, 박동진 한림대 교수, 조수영 경희대 교수 등의 후배들과 마주 앉아 PR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대화를 나눴다.

▲ (왼쪽부터) 사회자 신호창 교수, 안보섭 교수, 윤희중 교수, 박기순 교수, 최윤희 교수, 오인환 교수, 한창호 교수, 박동진 교수, 조수영 교수

“직선의 길이를 재는 대나무 자로 원을 잴 수 있겠는가. 원의 크기를 재려면 그에 맞는 줄자가 필요한 법이다. PR이 언론학회의 한 분과로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15년 전, 여기 교수님들과 학회를 발족하기로 했다. 사단법인을 등록하고 터 닦느라고 여기 박기순 교수는 내 연구실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괜한 오해를 받을까봐 연구실 문까지 열어두고 불철주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윤희중 교수의 너스레에 세션이 마련된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당시 PR이라는 새 분야에 뛰어든 학자들은 “논문을 게재할 때 좌절감과 모멸감마저 느낄 정도로 환경이 척박했다”며 말문을 연 윤 교수가 털어놓은 학회 발족 당시 에피소드다.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학회 설립은 생산적인 연구발표를 자신 있게 하려면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발족 당시 사단법인 등록 경비조차 교수들이 주머니를 털어 마련할 정도로 열악했던 상황을 회상하던 원로교수들은 현재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문 중 하나로 성장한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진학자들, 우리 환경 반영한 PR개론서 집필에 힘써야

또 PR개론서 집필에 힘을 쏟아온 최윤희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PR이란 학문 자체가 열악했지만 강의에 가장 어려운 요소가 책이었다. 책부터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발로 뛰면서 자료를 구했다”며 초기 집필을 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어 “미국에서 시작된 학문이다 보니 학계에는 우리 얘기가 많이 들어간 개론서가 필요하다. 신진학자들이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탄탄한 개론서를 잘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당부했다.

이에 안보섭 교수는 “저도 최윤희 교수님 책을 강의와 집필에 많은 부분 참고하고 있다. 그 시절에 이렇게 방대한 리서치를 하셔서 책을 지으셨다는 점에 감탄한다”며 선배 교수들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선배 교수님들이 안 오셨으면 안 교수랑 저랑 가장 원로가 될 뻔했다”며 말문을 연 한정호 교수는 “과거를 알아야지 현재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 또 과거부터 줄을 그어봐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며 화기애애한 자리의 의미를 되짚었다.

또 “지금 PR분야는 업계는 물론이고 학계도 여성 리더십이 대단하다. 그런 맥락에서 어려운 시절 여성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을 내오신 윤 교수님의 삶도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윤 교수는 “처음 이화여대에 부임했을 때, 내가 기가 안 죽는 편이라 미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37년을 지내며 모교만큼이나 정이 많이 들었고 훌륭한 제자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오늘날 이런 토대는 젊은 학자들의 피땀으로 만든 금광 같은 곳이다. 여러분들도 지속적으로 좋은 학문적 성과 많이 캐시길 바란다”며 신진학자들에게 덕담을 더했다.

현재 풍성한 학문 환경…선배들의 노고 덕분

선배들의 훈훈한 대화를 경청하던 박동진 교수는 “한국 PR학의 역사를 짚은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는 기분”이라며 “이 자리는 크게 보면 1, 2, 3대 학자들이 모인 자리인 것 같다. 앞서 학문 환경이 척박할 때 선배님들이 많이 하셔서 지금 이렇게 풍성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감사를 표했다. 또 “현재는 홍보학으로 진출하려는 제자들이 상당히 많고 학생들의 수준도 높아졌다”며 달라진 PR의 위상을 전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2008년 귀국했다는 조수영 교수도 “지금 미국에서는 한국학생들은 커뮤니케이션만 하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학문의 인기가 대단하다”며 “미국학회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한국 학자들이 많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청중석에서 지켜본 이주호 마콜커뮤니케이션컨설팅 대표는 “PR의 씨앗을 뿌리신 분들을 뵈어 영광이다. 학계가 PR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힘써주시길 부탁드린다. 업계도 열심히 뛸 것”이라고 말했다.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던 세션은 끝난 후에도 진한 여운을 남겼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조망하는 동안 짧은 시간에 다 담을 수 없는 감회와 뿌듯함이 참가자들을 감쌌다.

한편, 한국PR학회는 지난달 29일 추계학술대회를 개최, 총 19개 세션, 63개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진 총회에서는 김병희 서원대 교수가 15대 회장 취임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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