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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도시공간에 색깔 입히는 남자
회색빛 도시공간에 색깔 입히는 남자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3.12.27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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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게으른 핑크 고래’ 신주욱 작가

소통라이브러리는 우리 사회의 소통문화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협력하는 코너로, 이종혁 광운대 교수와 함께 진행합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문화를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숨겨진 인물들이 인터뷰의 주인공입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회색빛 도시의 삭막함, 후미진 골목길의 불안감, 낡은 벽처럼 헐어버린 마음을 밝게 채색한다. 죽었던 공간이 색으로 그림으로 사람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일상 속 ‘게으른 핑크 고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신주욱 작가. 그가 그리는 삶의 모습이다.


서울 마포구 상수역 근처 주택가에 위치한 신주욱 작가의 작업실로 가는 길은 ‘동네’의 친근함 속에 뭔가 ‘특별함’이 있다. 비비드(vivid)의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거대한 벽화. ‘토끼나라 왕과 그를 호위하는 돼지 천사들’(?)을 연상케 하는 동화의 신비감이 순식간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신 작가의 작품이다.

“제가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어요. 앞집 옆집 모르는 동네 분이 없죠. 그래서 몇 년 전 담벼락 주인께 허락을 구해 작업했습니다. 해 놓고 보니 동네 어르신이나 아이들 반응이 꽤 좋았어요.(웃음) 무엇보다도 일단 밝잖아요.”

신 작가는 벽화로 삭막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활동을 하는 젊은 작가다. 동시에 삽화, 그래픽디자인, 캘리그래피, 일러스트, CI작업, 퍼포먼스 등 손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아트를 두루 섭렵한 ‘능력자’이기도 하다. 벽화작업으로 사회와 소통하게 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하는 일이 굉장히 많으신데요. 원래부터 만능 재주꾼이셨나요?(웃음)
사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계획하고 한 건 아니에요. 손이 좀 빠르다보니 벽화를 그려보지 않겠느냐 제의를 받은 거였고, 그림을 잘 그리니 삽화 해봐라, 또 글씨도 얼추 하니 캘리그래피 해보라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일로 확장됐어요. 저 개인적으론 ‘비주얼’이라는 하나의 작업을 계속해서 해 나가고 있는 건데, 다른 사람들 관점에선 서로 다른 여러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벽화작업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2006~7년에 스타트를 했어요. 제가 다니던 성당 신부님이 한 번 해보라고 하셔서 처음 벽화를 그리게 됐습니다. 이후 인천에 거주하는 정동준 기획자를 만나면서부터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벽화를 그리다 보니 생활공간이 바뀌는 변화가 있더라고요. 사회가 채울 수 없는 부분, 벽이나 계단에 감성을 부여하고 마음을 넣는. 그림으로 사회의 빈틈을 채운다랄까요?

좋은 의도라 해도 아무 곳에 가서 그림을 그릴 순 없잖아요. 작가로서 공간을 찾는 일이 필요할 텐데 먼저 제안을 하나요, 아니면 요청이 들어오나요?
다양해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고, 제가 먼저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하기도 하고. 오래된 동네, 위험할 것 같은 곳을 중심으로 밝게 채색합니다. 사실 벽화작업을 하다보면 그림 그리는 외의 작업이 더 많아요. 사전에 동네 분들과 얘기하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분들의 니즈를 그림에 반영시키려고요. 벽화장소가 생활공간이다 보니 그림 주제를 작가가 임의로, 작위적으로 하면 안돼요. 저야 작업하고 손 털면 그만이지만, 실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접하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주로 거주자들이 원하고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소재들로 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무료봉사인가요? 유료작업인가요?
제가 원해서 할 경우 봉사로 하고 있고요, 의뢰가 들어오면 재료비 혹은 인건비, 작품비 등의 차원에서 소정의 금액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공익적 차원의 일에는 비용을 청구할 수 없겠죠? 

벽화가 그려진 동네에 사는 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음, 우선 좋아하세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 공간이 색을 입게 됐으니까요. 예전에 인천 모처 후미진 곳에 대한 작업 요청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요, 주민 얘기를 경청하던 중에 한 아주머니께서 집에 화단이 없다며 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꽃을 그렸습니다. 알록달록한 꽃밭 위로 아이들이 뛰노는. 그랬더니 공간 자체에 생동감이 넘친다며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다른 곳에서도 우리 동네도 해주면 안되느냐는 말씀들을 종종 전해오세요.

벽화라는 게 어느새 부턴가 하나의 유행처럼 돼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시나 농촌을 아름답게 꾸미는…. 이런 흐름들은 어떻게 보시나요?
시·군에서 도시나 마을 미관을 위해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건 좋은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사는 사람들의 니즈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외관만 아름답게 바꾸는 건 일종의 폭력일 수 있습니다. 거주자들 입장에선 우리들 공간인데, 누군가 낙후하다며 그림으로 덧칠하려 하면 거부감부터 생길 수 있거든요.


중절모에 동그란 테 안경, 샛노란 티 위로 걸친 장미문양 가디건, 물방울을 묻힌 듯한 바지에 깔(색깔) 맞춤한 운동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강렬한 ‘패셔니스타’의 포스를 풍기는 신 작가의 첫인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작가는 패션디자이너 지망생이었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학을 공부했고, 실제 이상봉 디자이너 사무실에서 일하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군 전역 이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때 마주하게 된 것이 바로 벽화였다. 패션에서 생활미술·공공미술로 진로를 확 틀게 된 계기다.

신 작가는 스스로를 ‘레이지 핑크 웨일(Lazy Pink Whale·게으른 분홍 고래)’이라고 말한다. 일상에 파묻혀 피폐해지지 말고, 느리게(Lazy) 낭만적으로(Pink) 환상의 존재를 넘어(Whale) 인간답게 살자는 일종의 모토다. 벽화 등 작품 활동에도 LPW 정신을 녹여내고 있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또 개발이 어려운 주택가들을 그림으로 밝게 만들어주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며 “신 작가의 그림으로 재탄생된 공간이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청소년 비행과 범죄율 감소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페인트회사와도 같이 작업 하셨던데요. 어떤 인연으로 연결됐나요?

조광페인트 건물의 벽화 작업을 했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요. 회사 본사가 위치한 부산 사상구 삼락동은 공단지역이어서 다소 삭막합니다. 그래서 해가 지면 왠지 더 어두운 느낌이었죠. 조광페인트는 페인트회사답게 색으로 기업이미지를 바꾸고 싶어 했어요. 건물 담벼락의 낡은 느낌을 없애는 게 과제였죠. 주변으론 학교도 두어 곳 있었기에 그림으로 그 일대를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실제 벽화가 그려진 이후로 동네가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인천 지역을 비롯해 부산, 제주도 등 전국 여러 곳에서 색깔 있는 벽화를 선보이고 계시는데요. 그만큼 우리사회 곳곳에 ‘밝음’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의미인가요?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주거생활공간이 아파트 위주로 바뀌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파트 외 주변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거나 위험한 곳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저다운 방법, 그림으로 도시공간에 뛰어 사람들과 함께 일상공간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심리치료, 미술치료처럼 공간을 컬러풀하게 바꾸면 밝은 생각을 갖게 되고, 마을도 건강하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그림의 대부분이 화려한 색과 동화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죠. 

기업이나 단체에서 의뢰하는 경우 작품비를 받을 수 있지만, 개인들이 좋은 취지만을 갖고 벽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해온다면? 무조건 무료봉사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요.
저는 노(No)가 거의 없습니다. 좋은 취지, 의도로 제안해 오면 무조건 예스(Yes)예요. 비용 등 문제는 방법을 찾기 나름입니다. 개인 작품이라기보다, 공간에서 사는 우리 모두의 작품이니까 머리를 맞대면 묘안이 떠오르지 않겠어요? 설령 대가가 없다 하더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작업은 그냥 하는 편입니다. 허름한 벽, 초라하게 노출된 계단 등이 저에겐 하나의 스케치북이니까요.

해외에선 벽화뿐만 아니라 배수로나 맨홀뚜껑 등에도 예술을 접목해 변화를 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도 이런 걸 해보는 건 어떨까요? 가령 주택가 집집마다 어지럽게 나와 있는 가스배관을 예쁘게 칠하고, 더불어 가스안전 캠페인 메시지도 전해보는 거죠.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충분히 할 의향 있습니다. 공익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고, 저 개인적으로도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으니까….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네요!

일상 속에서 사회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회를 움직이는 예술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행동하는 아티스트가 되려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화이트큐브(미술전시관) 속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자기만족과 자기성취를 느낍니다만, 저는 화이트큐브 바깥에서 모두가 같이 즐기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방에 혼자 걸어놓고 보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예술을 생활에 내려놓는 것이죠. 아픈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면 낫듯, 소외된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분명 치유의 힘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도시라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실 건가요?
물론이죠. 거창할 것도 없어요. 그저 그림으로 피곤한 출퇴근길, 무거운 월요일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산뜻해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업, 단체를 통해서 혹은 개인적으로라도 계속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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