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 최영택 (admin@the-pr.co.kr)
  • 승인 2010.09.1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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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택의 PR3.0

요즘 상생(相生)이란 단어가 화두다. 상생정치, 상생경영, 상생협력 등으로 널리 쓰여지는 이 단어의 뜻은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하여 공존한다는 것으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親서민, 親중소기업을 정책기조로 천명한 이후 관료들도 경쟁적으로 대기업 총수들을 겨냥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을 강조하며 더욱 회자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 상편 2장을 보면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노자사상의 하나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는 항상 이분법적 사고에 따른 대립과 투쟁이 있어 왔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양반과 상민간의 반목의 역사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중소기업, 서민들과의 상생을 위한 보따리를 풀어 놓기에 바쁘다. 상생펀드를 조성하거나 금융지원금액을 늘리고, 상생협력 실천방안을 만들고, 지원을 2,3차 협력업체로 확대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연일 매스컴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상생협력부서는 특출한 아이디어 내기에 바쁘고, PR부서는 내 놓은 방안을 보도자료화 해서 언론에 크게 내느라 바쁘다.

매스컴은 이를 지면과 화면에 배정하느라 바쁘고 반골 언론들은 “대기업들 등 떠밀려 내민 ‘상생안’ 성공할까?”라며 비아냥 거리기에 바쁘다. 대통령의 등두드림에 용기를 얻은 중소기업 대표들이 기회를 놓칠새라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한(恨)을 잠시나마 풀어 놓지만 이는 지속적인 개선보다는 일시적인 ‘립서비스’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벌써부터 시큰둥한 반응들을 내 놓는다. 실제로 언론에 발표하는 내용 가운데 가장 핵심인 납품단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대통령의 권한은 아직도 막강한가 보다.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저렇게 벌벌 떨고 열심인걸 보면, 이게 후진국의 현상일까? 정부 관료들도 평상시 맡은 바 소임을 다했으면 이렇게 급작스러운 정책을 만드느라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되고, 대기업들도 갑자기 지원을 늘리고 펀드를 만들고 홍보하려 애쓸 것이 아니라, 평소 잘 해온 상생의 협력관계, 사회공헌활동 등을 소개하며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홍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감정적인 지시나 표현을 하기보다는 참모들을 통해 점차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도록 지시해야 하며, 언론도 덩달아 기업 몰아세우기에 치중하기 보다는 차분히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진정성 갖고 논 제로섬(non zero sum) 게임을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관계에 있어 본질적인 것은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갑·을 관계로 인식했지 성장의 혜택을 함께 나누는 파트너로 간주하는 인식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어느 대기업 외주담당자의 말처럼 ‘계약하기 전까지는 저들이 을이지만 계약하고 나면 오히려 갑으로 돌변한다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서는 오히려 협력사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하소연이 진실이 아닐까?

PR이론 가운데 게임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조직과 공중 간에는 한 쪽이 잃으면 한 쪽이 따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논 제로섬(non zero sum) 게임, 즉 협력과 협상을 통해 조금씩 양보하고 양자가 받아 들일 수 있는 의사결정을 이루어내는 서로가 윈윈(win-win)하는 게임에 기반을 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도 서로가 윈윈하는 상생협력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대기업의 일방적인 발표가 아닌 서로가 한 자리에 앉아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도록 정부가 장(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제도도 중요하고 지원도 중요하지만 서로가 적이 아닌 동반자로, 형과 아우로 생각하고 협상장에 마주하는 마음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에서 경쟁에 의한 원가절감과 납품단가 인하는 필수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래를 끊겠다고 협박하며 단가를 후려치거나 엄포를 놓는 대기업이나 1차 협력업체의 나쁜 행태는 제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며, 이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필요하다. 너무 무리한 원가절감을 추구하다가 부품 결함과 늑장대처, 그리고 위기관리PR의 부재로 브랜드의 추락과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 도요타 자동차의 사태가 이를 반증해 주며, 적어도 우리기업들은 이러한 실패사례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에는 아이폰4의 한국출시를 앞둔 미국의 애플사가 부품공급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긴 것으로 나타나 상생 모델로 떠오른 애플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고 있기도 하다. 이제 우리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와의 관계도 글로벌 기업답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기준과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차별화 되고 글로벌한 사회공헌 활동 펼쳐

그 동안 대기업들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회사를 늘리고 부를 창출했으며, 발생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쳐 왔으며, 이를 대외에 알리는데 PR부서가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PR이 가능한 사회공헌 활동 위주로 꾸미기도 하고, 지원받는 봉사단체의 개인들을 광고에 동원하기도 하며, 계열사끼리 홍보경쟁을 하는 우스운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남을 돕는 일은 원래 오른손이 한 일은 왼손도 모르게 실천하라는 말이 있지만, 홍보도 못하는 사회공헌 아이템에 왜 헛돈을 쓰느냐는 윗 분들의 꾸지람에 아예 꺼내지도 못하는 담당임원들이 많다. 최근 들어 우리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도 해외 선진국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전경련의 보고서도 있고, 사업성격에 따라 전략적으로 차별화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는 기업들도 많아졌으며, 사회공헌 영역의 글로벌화를 추진하는 대기업들도 많이 눈에 띤다.

지난 8월초 미국의 워렌 버핏 회장과 빌 게이츠 회장 등 미국의 갑부 40명이 자기재산의 최소한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기부서약에 서명했다고 밝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와는 다른 뿌리깊은 기부문화를 가진 미국사회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미국의 갑부들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사회로부터 존경 받는 이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아시아의 경우에도 홍콩이나 중국의 재벌들도 중화권의 기부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재산의 99% 기부를 약속한 워런 버핏은 점점 더 많은 부(富)가 세계로 퍼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으며, 앞으로 중국과 인도의 부자들도 이 대열에 참여시키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도 많은 개인재산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연예인들의 기부천사 선행도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개인기부문화는 왜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가?

모기업의 한 임원은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give & take 제도와 기부자를 존경하는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예전에 한 임원이 몰래 한곳에 기부했다가 나중에 그게 알려져 다른 단체들로 부터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본적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어려운 기부 실정을 토로했다. 기부도 사회공헌의 큰 수단이다. 미국의 샌퍼드 웨일 前시티그룹 회장 부부의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며 빈손으로 삶을 마감하겠다는 고운 뜻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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