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과 무관심을 깨운 ‘안녕들’ 열풍
불통과 무관심을 깨운 ‘안녕들’ 열풍
  • 명재곤 기자 (sunmoon@the-pr.co.kr)
  • 승인 2013.12.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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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곤 세상토크] 타인의 안위를 걱정하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더피알=명재곤 국장] 한 대학생의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가 일종의 신드롬으로 한국사회를 뒤덮고 있다. 대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활자에서 동영상으로, 대학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정치권으로까지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안녕들 하십니까’ 형태로 확대 재생산중이다.

이 현상이 단발성으로 끝날지, 추가 동력을 얻어 또 다른 소통채널로 자리매김할 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안녕들’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통’과 ‘무관심’에 경각심을 던졌다는 평가는 유의미하겠다.

▲ 고려대학교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전국적으로 이어지며 한국사회를 뒤덮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16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캠퍼스에 붙은 대자보를 학생들이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주현우(27)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의 생각을 묻고 싶은 마음에 대자보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는 철도노동자들 직위해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및 부정선거의혹, 밀양 송전탑 건설사태, 비정규직 문제등을 거론하면서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고 주위에 되물었다. 이 물음에 대한 응답이 각계 각층에서 다양하게 나오면서 ‘안녕들’ 열풍이 마른 들판 불붙듯이 일었다.

정치 이슈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안녕들’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개인적 문제도 ‘안녕들’ 틀에 담아 얘기하는 등 새해 들어서도 ‘안녕들’은 대자보로, 벽보로, 손팻말로, SNS상에서 문답을 이어가는 추세다.

‘안녕들 하십니까’에 ‘안녕하지 못합니다’는 세태

“일요일 오후, 안녕들하십니까. 하얀 종이가 뿌려집니다. 비폭력 상징인 하얀 비둘기처럼 땅으로 내려옵니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절박하게 뿌립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정규직으로 한국지엠에서 일해온 6년동안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안녕했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네요” “우리 예비교사는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을 만들고 알바 교사를 뽑으려는 대통령님 때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데 제대로 해장하지 못해 안녕하지 못합니다” 등 ‘안녕들 하십니까’의 질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자보들이 적지않다.

국내에 유학온 외국인 학생의 영문 대자보도 나왔다. 한 외국인 학생은 ‘Hi, How's it going?’으로 시작하는 대자보를 통해 “서로가 정말 안녕한지 물으며 불만을 표출하는 한국 청년들의 글을 읽고 직접 내손으로 써보게 됐다”면서 대통령 선거,국정원 문제등을 적시하면서 한국사회를 꼬집기도 했다.

야권 정치인들은 때를 만난듯 ‘안녕들’을 앞세워 현 정권을 질타하고 있다. “국민들께서는 안녕하지 못하고 대통령 심기를 걱정하는 측근들에 의해 오직 대통령만이 안녕한 것이 아닌가”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는 1년, 그래서 국민들은 ‘안녕들 하십니까’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 상태가 됐다” “모두에게 안녕을 묻는 젊은 이들에 대해 누구도 안녕하다는 대답을 할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이처럼 ‘안녕들’현상이 반 정부적 시각을 주로 노출하자 보수성향 인사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들은 사실관계가 왜곡됐다며 대자보의 불순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코레일 파업 참가자 직위해제가 해고로, 철도민영화 의혹은 철도 민영화로, 검찰이 수사중인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은 국정원 선거개입으로 둔갑해 반정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합리적 청년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한 인터뷰에서 “대자보 열풍은 청년들이 시작했지만 그 인화성 물질이 청년 아젠다가 아니라는 것이 큰 문제”라며 “청년들의 고단한 삶과 철도 민영화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녕들’신드롬은 진보와 보수의 논쟁거리로 거듭나면서 영국 BBC 보도를 통해 세계에 전파됐다.

▲ 한 대학생의 반문형 외침이 대학가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자는 ‘공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14일 ‘안녕들’ 오프라인 모임 현장. ⓒ뉴시스

대자보 ‘안녕들’ 열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중국 문화혁명시기 대자보는 당권투쟁을 벌이는 정치세력간 특정인 비평을 주 목적으로 활용됐지만 비평이상으로 당시 충격적인 것은 그것이 내걸린 방식 자체였다. 정부나 당 조직에 정식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앞에서 특정인을 개별적으로 고발하고 공격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반감을 직접 일반들에게 표시하는 수단이 되면서 대자보 바람이 불었다.

대체로 사회변혁기 과정에서 대자보는 강한 비판과 주장 명령 설득을 담고 있다. 일방적이고 직선적이며 조정과 중재가 없는 공격의 칼날이었다.

하지만 ‘안녕들’은 언어방식이 달랐다.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연대하려는 ‘공감’ 유도 소통법을 활용했다.

‘안녕들’이라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를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성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러저런한 상황에서 아픈데 당신은 어떻습니까’라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배려의 장치가 주효했다. 또 사회적으로 누적되어온 불만을 ‘안녕들’이란 평범하고 익숙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끔 첫 물꼬를 텄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기성 보수언론에 대한 반감도 ‘안녕들’열기에 작동한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등학생:안녕들하십니까? / 언론:김정은 눈썹 왜 밀었나.
노동자:안녕들하십니까? / 언론:로드먼 북한도착.김정은과의 만남 주목.
시민:안녕들하십니까? / 언론:국방부장관,"내년 1~3월 北도발 가능성 높다”


SNS상에 나도는 해학성 ‘안녕들’시리즈 일부이다.

‘안녕들’ 단초가 된 철도파업은 국회에서 철도산업발전소위 구성을 합의함에 따라 철회절차를 30일 밟고 있다. 치킨게임으로 치닫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철도파업이 일단락된다고 해서 배려와 연대의 ‘안녕들’열풍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닐 게다. 불통과 소외에 대한 반발이 자연스럽게 ‘안녕들’문화를 낳았다는 걸 우리는 경험했다.

‘안녕’은 평안을 기원하는 단어이다. 2014년에는 일상 생활어인 ‘안녕들 하십니까’가 사회언어로 차용되는 ‘하 수상한 시절’과 거리가 멀기를 바란다. 




명재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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