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스러움’으로 소통 하기
‘바보스러움’으로 소통 하기
  • 안홍진 (admin@the-pr.co.kr)
  • 승인 2010.09.12 2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홍진의 노뮤니케이션 Nomunication

정거장을 막 출발하는 기차에 급히 올라타는 순간, 신발 한 짝을 떨어뜨리게 되자 나머지 한 짝도 벗어 던진다. 수행원들이 “왜, 벗어 던지십니까?” 하고 물으니 “가난한 사람이 내 신발을 주우면 나한테 남은 한짝은 쓸모 없지요.”
명동성당에 들어갈 때 ‘인간미’를 호소하는 걸인에게 천원짜리 한 장을 쥐어 주었는데, 밖으로 나올 때 또 그 걸인에게 천원을 준다. 동행하던 신자들이 “들어갈 때 주셨잖아요” 하고 물으니, “응~ 눈에 또 보이는 걸”이라고 말한다.
앞은 간디 이야기이고, 뒤는 필자의 성당 신부 얘기다. 이리저리 계산하지 않고 얄팍하게 숫자를 따지지 않는 사람, 직장에서 불평없이 우직하게 일만하는 사람,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모자랄까봐 더 주는 사람,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이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면 되지 않을까?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바보란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 실제 바보는 아이큐가 모자라고 판단력과 능력이 모자란다. 바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남으려면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이 세상에서 바보가 되더라도 살아남는 법’이란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굳이 그런 책 기다릴 필요 없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눈치 채게 될 것이다.

안다고 나대는 것이 진짜 바보?
얼마 전 회사 여성간부가 업무 보고하러 왔다가 “사장님! 저는 이제부터 바보처럼 살려고 해요.” “응 그래? 왜?”라고 내가 묻자, “바보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 안 받을 것 같아요.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바로 그거야… 바보처럼 살자.되도록 모자란듯이 사는 거야. 나도 남 차장한테 한 수 배워야 겠는데. 나도 좀 바보스럽게 살아야 겠어. 바보라고 생각해 보는 거야~! 바보는 무식하지만 열정과 뚝심으로 사는 사람이잖아.” 내가 큰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그 직원이 간 뒤 인터넷에서 ‘바보’라는 키워드 검색을 해봤다. 바보사랑, 바보마켓, 바보같은 연예인…바보000…. 바보라는 말이 수없이 나온다. 깜짝 놀랐다. 기업, 예술계, 스포츠, 종교, 연예계에 이렇게 많이 쓰일 줄 몰랐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바보를 자화상으로 만든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게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묻자 “내가 바보같이 안 보여요? 바보에 가까워요. 다같은 인간인데 뭐, 그리 제가 잘 났겠어요. 안다고 나대는 것이 바보지. 바보처럼 살았지 뭐, 난 바보야”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 세상은 ‘바보’가 많을수록 훈훈해지고 감동의 물결이 크게 다가온다. 어렵게 살면서 월급의 반을 불우학생 장학금으로 기부한 고물상하는 ‘바보 아저씨’,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을 구해준 ‘바보’… ‘바보’같은 사람들 이야기가 매일 언론보도의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 삶에 깊은 의미와 놀라움과 감탄을 안겨다 준다. ‘바보’는 손해 봐도 모른 체 하는 사람, 욕심은 없되 꿈과 집념이 아주 큰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한다.
80%가 여직원들인 회사라서 그런지 직원들끼리 별명이 하나씩 있다. ‘순진이’와 ‘긍정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두 명의 여직원. 이상하게도 둘 다 대학원 출신이다. 다른 여직원들과 저녁을 하며 이 두 여직원의 별명을 이렇게 지어준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1시간 일찍 회사에 오지요. 게다가 무슨 일을 시켜도 힘들다거나, 일이 많아 부담된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를 안대요. 바보같지만 바보가 아녜요. 순진이와 긍정이 좋잖아요? 호호호. 요즘 이런 후배들 어딜 가도 없어요”하고 설명했다. 가슴 뭉클해 오는 사안 아닌가?

먼저 내가 ‘바보’가 되어야 세상이…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바보~!”라고 놀리면 친구들간에 화를 내고 싸움이 벌어졌다. “내가 왜 바보냐?”고 말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바보’는 ‘바다의 보배’라는 속어로 쓰인다고 한다. 오히려 바보에 독특하고 뜻밖의 의미를 새겨 놓은 요즘 ‘초딩’들이 대견스럽다. 바보는 ‘가진 게 없는 사람, 모자라는 사람’일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모임에서 잘 난 체 하고 의식적으로 똑똑해 보이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만큼 갈등과 긴장이 많이 생긴다. 조찬 세미나 원탁 테이블 옆자리의 나이 지긋한 노(老)신사가 자기소개 차례가 되자 “빵 만드는 회사에 다녀요”라는데 알고 보니 유명 제과회사 회장이셨다. 넥타이를 맨 그분의 격식을 깬 친근감 넘치는 바보스러운 자기소개에서 오히려 인간다움과 품격의 고매함이 느껴졌다.
필자가 실제로 체험해 본 이야기 하나. 가족 중 아내나 성인이 된 아들 딸에게 느닷없이 집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보~!’라고 말해보라. 그리고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라. 그러면 십중팔구 웃으며 “내가 왜?”라고 물어올 것이다. 가족들은 서로를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바보라는 당신 말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두차례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갑자기 당신에게 ‘바보~!’라고 말한다면 과연 웃는 얼굴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의 마음이 넓으면 웃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분이라면 마음에 상처를 받아 언짢고 찡그린 얼굴을 하거나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칼 융 같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인간에겐 슈퍼맨같은 훌륭함과 바보같은 미성숙한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한다. 마음에 상처받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내 안의 바보스러움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 감사 외에 바보스러움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먼저 내가 ‘바보’가 되어야 가족이, 이웃이, 그리고 친구, 부하, 동료, 상사가 내게 가까이 올 것이다. ‘바보스러움’은 남이 나를 만나러 오는 문(門)을 낮춰 주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바보로 살아 보도록 힘써 볼 것이다. ‘부족하고 모자람을 인정하는 바보스러움의 소통’- 이것 또한 ‘노뮤니케이션’이 아닐는지….

안홍진

삼성그룹 22기 공채입사

삼성물산 판매및 마케팅팀 근무

삼성구조조정본부 홍보팀 이사, 상무

삼성전자 홍보팀 상무

그레이프 PR & 컨설팅CCO(현)

()온전한 커뮤니케이션 공동대표(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