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출판사, 그래서 더 튀는 소통법
작은 출판사, 그래서 더 튀는 소통법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4.01.0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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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더피알=이슬기 기자] 바쁠 땐 독자들의 손을 빌린다. 독자들은 마감이 임박한 원고의 교정도 봐주고 박스세트 포장도 해준다. 그것도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선 보수도 없이 즐겁게. 얼마 전엔 제주도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저자가 아닌 출판사 대표가 가진 전국 순회 독자 미팅의 일환이었다. ‘마포 김 사장’이란 이름으로 그가 직접 운영하는 북스피어 출판사의 블로그 이름은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다. 이름에 걸맞게 이 블로그에는 재밌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급기야 마케팅 비용을 독자 펀드로 조성해 출판계의 전설이 된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를 만나봤다.

○ 북스피어는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인데요. 구체적으로 ‘장르문학’은 어떤 것들인가요?
● 쉽게 말해 규칙이 있는 문학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미스터리, SF, 무협 등 범위는 넓은데, 저마다 규칙을 가지고 변주하죠. 해외에서는 이미 뿌리가 깊은 분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즈음부터 드라마나 영화가 장르문학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출판사들의 관심이 커졌죠.

○ 재미있는 이벤트가 워낙 많으시던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소개해주신다면?
● 보통 소소한 이벤트를 끊임없이 만드는 편인데요. 반신반의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독자 펀드였죠. 지난해에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안주’로 5000만원을, 올해도 그녀의 ‘그림자 밟기’로 8000만원을 모금했어요. 마케팅을 좀 제대로 해서 더 팔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출판사를 좋아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어디까지 해주실 수 있을지도 궁금해서 진행하게 됐죠. 원래 사무실로 먹을 거나 이런 거는 많이들 보내주셨거든요.(웃음)

그래도 돈을 주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모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참여도가 높아서 좋았죠. 기금은 라디오 광고, 온라인 광고, 오프라인 매대 등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했어요.

○ ‘마포 김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채널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 일단은 저희 회사가 4명으로 이루어져서 온라인 마케터를 따로 뽑을 여력이 없고요.(웃음) 일종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려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글을 계속 제공해야 하잖아요. 소위 ‘오프더레코드’로 할 수 있는 얘기들, 또는 어떤 사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들 이런 걸 꾸준히 올렸어요. 2년 정도 지나니까 정기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독자분들도 특이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사장이 직접 쓰는 게 흔한 경우는 아니니까요. 사실 채널운영을 직원들과 같이 해본 적도 있는데요.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하는 것보다 검열이 많아지고 그러면 무난한 글밖에 쓸 수 없게 되죠. 제 경우는 제가 책임지면 되니까 더 편안하게 쓸 수 있으니 내용도 흥미로워지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죠.

또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제가 책임지면 되니까요. 한 5~6년 전에 만우절 이벤트를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함께 했었는데요. 신간이 나온다고 책소개 이런 거 다 똑같이 꾸며놓고 주문버튼만 안 눌리게 했죠. 책이 없었으니까요. 근데 한 독자 분께서 주문을 하시려다 안 돼서 전화를 했는데 직원이 웃어버린 거예요. 그게 기분이 상하셨는지 일이 커져서 공식 사과문을 낸 적도 있어요. 근데 그런 것도 그냥 제가 미안하면 될 일이니까 직원들에 비해서 부담이 훨씬 적죠.

○ 자체 온라인 채널 운영의 이점을 직접적으로 느끼시나요? 
● 출판사가 자기 채널을 갖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요즘엔 좋은 책이 팔리는 게 아니라 팔리는 책이 팔리거든요. 서평이나 신문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채널에만 의존한다는 건 너무 위험한 발상이죠. 상업적 의도가 뻔히 보이는 판에 박힌 SNS도 좋은 방법은 아니고요.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적어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스스로 얼마든지 퍼뜨릴 수 있는 분들이니까요. 이들이 계속 모일 수 있게 재밌는 것들을 생산해내야 했죠. 제 경우는 그걸 굉장히 즐기는 편이에요.

전 글쓰는 속도도 느린 편인데,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온라인에서 글쓰고 댓글 달면서 같이 놀고 이런 것들이 적성에 맞아요. 댓글도 전부 직접 다는데 쓰나마나하는 소리는 안 해요. ‘즐거운 하루…’ 뭐 이런 얘기들 있잖아요.(웃음) 그러려면 생각도 많이 해야 하는데, 전 그게 좋아요. 이벤트 상품 같은 걸 발송해도 꼭 직접 쓴 메모를 동봉해요. 이렇게 하다보면 내적 진정성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오랜 시간을 들여 쌓아가고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는 우리는 여기서 재미있게 놀 테니 맞는 사람은 와서 함께하고, 싫음 말고가 제 콘셉트예요. 블로그에 자연스럽게 이런 제 성향이 드러나게 되죠. 이렇게 맞는 이들과 함께 가는데 신간이 나왔을 때 고정 독자층의 힘을 느끼기도 해요. 저희가 제작하는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Le Zirasi)’를 보려고 신간을 샀다는 얘기도 심심찮죠. 또 온라인 서점에 판매수치가 매일 확인되는데, 저희 블로그에 신간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 바로 두어 배로 뛰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 박세진 피니스 아프리카에 대표, 김일권 씨엘북스 대표 등 장르문학 출판사 대표들과 함께한 콘셉트 사진이다. 김홍민 대표는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그림자 밟기>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사진제공=북스피어)

○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이벤트를 만들려면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 그렇죠. 똑같은 이벤트는 다시 안하거든요. 새롭고 재밌는 것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그때 그때 떠오르는 건 아니라서 고민하다보면 점점 스케일이 커지기도 하고. 점점 부담스럽긴 해요.(웃음) 지금까지는 TV를 보다가 콘셉트를 따오기도 하고, 수다를 떨다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출판관련 강의도 많이 다니는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많이들 궁금해 해요. 그런데 때론 질문 자체에 이미 ‘우리는 할 수 없다’는 속내가 들어있죠. 저는 기본적으로 안되면 말지 싶은 생각으로 일단 하거든요.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될 텐데, 우선 저희 이벤트는 근본 없는 마케팅이거든요. 재밌긴 한데 격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죠. 그래서 다른 출판사들은 비슷비슷한 이벤트로 중간쯤 하는 거죠. 또 저희는 열악해서 돈 적게 쓰고 눈에 띄는 걸 계속 연구해왔거든요.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하는 것들과 다른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 ‘안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대차게 망한 이벤트도 있으셨나요?
● 최근에 제가 차에 신간을 홍보하는 도색을 했어요. 이걸 원래는 한 10명~15명 정도 독자들 차에도 해주고 같이 차끌고 놀러 다니면 멋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거든요. 전 다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웃음) 딱 2분 계셨는데, 운전을 별로 안하시고 세워만 두시는 여성분들이… 아무래도 차에 대한 애착이 커서 그런 것 같아요. 차를 경품으로 주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 장르소설 독자들이 그간 소외되고 박해당했다고 표현하시던데요. 그래서 커뮤니티가 더 끈끈할 수 있을까요?
● 제가 학창시절에 무협지 읽다가 맞아본 경험이 있거든요. 아마 장르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들 그런 경험들 있으실 거예요. 낯선 자리에서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을 물으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정도는 나와 줘야지 <퇴마록>을 재밌게 봤다고 하기는 어렵거든요.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는 취향인데 그걸로 출판사를 운영하니까 지켜야겠다는 의무감이나 애착들이 발동하긴 하는 것 같아요. 약간의 동지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 같고. 물론 저희의 모든 활동이 책을 팔기 위한 술수라는 걸 숨기지는 않아요.(웃음)  

▲ 미야베 미유키의 <눈의 아이> 홍보를 위해 3개월 동안 몸을 만들어 직접 모델로 나섰다. 책보다 파격적인 광고 콘셉트로 더 유명세를 탔다는 후문, 여성모델과 사진을 촬영한 작가 모두 독자다.(사진제공=북스피어)

○ 종횡무진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고 계신데, 일선의 홍보 담당자들에게 조언을 한마디 해주신다면?
● 저는 기본적으로 PR하는 사람은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저희 사무실 앞에 돈까스 집이 하나 있는데, 가게도 허름하고 반찬도 직접 가져다 먹어야 되고 그런데 사람들이 엄청 많이 오거든요. 저는 그들이 많이 오는 이유가 캐릭터에 있다고 봐요. 그 집이 김밥천국이었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왔을까요? 뭔가를 팔고 홍보할 때는 그 단일 상품에 대한 식견, 철학 같은 게 있어야죠. 김밥천국식 좌판은 될 수가 없어요. 교육도 하나만 잘하는 아이들을 두고 보지 못하는데,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라고 봐요. 과감하게 선택과 집중을 해서 전문가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내적 진실성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성의를 보여주고요.

○ 마지막으로 장르소설의 매력은 뭘까요?
● 어린 시절에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경험은 굉장히 중요해요. 처음부터 <태백산맥> <토지>를 시작하면 끝내기 어렵죠. 하지만 장르소설은 특성상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읽은 경험들이 쌓이면 <죄와벌>도 읽고 하는 거죠. 책 읽는 습관을 다지는 데 가장 좋은 텍스트라고 봐요. 읽지 않는 게 문제지 읽어서 문제가 되는 책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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